면회 대환장파티
2019년 12월 코로나 바이러스가 처음 보고된 후 2020년 3월 WHO가 코로나 팬데믹으로 선언했다.
2023년 중순, 팬데믹에서 벗어났다고 선언하기 전까지는 우리나라뿐 아니라 전 세계가 바이러스에 대응하느라 그야말로 야단이었다.
특히나 요양원에 계신 어르신들은 취약계층이다 보니 경계가 심할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어르신이나 직원 모두 코로나에 걸리지 않고 모두 건강히 잘 지나가나 싶었는데, 내가 있는 요양원도 결국 코호트가 됐다. 초반 정책이 우왕좌왕한 상황이 있긴 했지만, 지금은 면회도 자리가 잡히고 불안감에서 벗어나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직원들은 매주 2,3회 코로나 검사를 진행해야 했고, 초반에는 보건소에 직접 가서 추운데 근무시간에 가서 검사를 해야 하기도 했다.
“예방을 하자는 겨? 얼른 한 번 걸리고 지나가라는 거야?”
불평이 쏟아졌다.
그 당시 온 나라에 의료진들이 얼마나 고생을 했었는지 떠올려보시길.
‘그래도 지나가고 나면 지금 이런 일을 이야기하는 날이 올 거야.’
우리는 서로를 다독였다.
병원, 요양원 모두 면회가 금지되어 생이별이었다. 기간이 길어지는 통에 많이 힘들었다.
직원들은 출퇴근이라도 하고 연락이라도 편히 하지만 어르신들의 갑갑하기가 말로 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매주마다 자녀가 해주는 반찬을 꼭 받아와서 먹는 어르신이 있었는데 바로 아래층에 와도 얼굴을 못 보니 애가 끓어 가슴팍을 때리며 힘들어하셨다. 영상통화를 하면 많이 나아지기는 했지만 답답하니 어르신들의 중얼거리는 것이나 배회도 심해지고 불안증세가 심해지는 어르신도 있고 정신적으로나 신체적인 건강상태에도 영향이 있었다.
제한적인 면회가 가능하게 되어 면회도 예약을 받고 진행하게 되었다.
이때 면회시간은 업무 중단시간이었다.
가족은 가족대로 어르신은 어르신대로 눈물 파티 직원들은 실시간 이산가족 상봉 중계에 면회시간이면 눈물 대환장파티였다.
유리문 사이에 두고 하는데 면회를 하는 상황에도 답답하니까 어르신이
‘이리 들어와, 어서 이리 들어와.’
손을 저으시는데 어떻게 눈물을 참느냔 말야~
우리 할머니가 요양원에 계셨을 때, 당시 예비신랑이었던 남편과 인사차 갔었던 날이 마지막 면회였다.
결혼할 때 이불이라도 해가라고 만 원짜리를 몇 장 주셨다. 나에게는 그날이 오버랩이 되었는지 ‘환장적’인 눈물사태가 기억에 남는다.
그러니 당시로서는 옹색한 비대면면회를 보면서 눈물 꽤나 쏟았다.
코로나 검사를 하며 보건소 앞에서 떨며 했던 말처럼
“이 또한 지나가리라.”
지금 편안히 면회하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다. 글을 읽고 계신 분도 그때를 기억하고 한번 더 찾아뵙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