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양원에도 아침이 와요
내 글, 매거진 제목이 '요양원에도 아침이 와요.'인데 사실은 그동안 아침이 올 것 같지가 않았다. 현재 평가를 준비하고 있고 요양원에서의 평가는 글쎄 뭐라고 표현하면 좋을까요? 아마 2,3년 밀린 숙제를 한꺼번에 검사를 받는다고 해야 할까?
그런데 그 검사로 시설장은 알고 지내던 많은 지인들, 직원들, 보호자들에게 부끄러움을 당할 수도 또는 그 반대로 A등급을 받아 자랑스러운 상황에 펼쳐질 수도 있다. 나쁜 상황이라면 이런 숙제검사를 좀 더 자주 받게 되기도 더 최악이면 영업에 문제가 생길 수 있으니 꽤나 긴장감 높은 숙제다.
그런데 그 평가가 몇 달을 괴롭히는 중이다.
몇 달 전 조금만 더 시간을 달라는 마음에서 지금은 왜 아직도 안 오느냐로 바뀌는 중이다. 2분기라는 통보만 받은 채로 이제 5월 말로 달리고 있으니 직원으로서 죽을 맛이긴 하다.
어느 새벽에 문득 이제 아침이 오는 구나라는 강렬한 영감을 받아 이제 모니터 앞에 앉아 본다.
나는 커피를 참 좋아한다.
사실 맛을 알고 좋아하는 것이 아니다. 마시는 순간의 여유랄까. 잠시 차를 마시면서 쉬는 시간이라는 그 느낌을 좋아한다고 해야 할까?
억지로 믹스커피를 끊어버리고 아메리카노로 바꿨는데, '평가를 준비하느라 바쁘다.' '스트레스받는다.'라는 핑계가 붙으면서 아침에도 한잔. 점심에도 한잔. 열정적으로 프로그램 마치고 나서 또, 한잔 하루 3잔은 마시게 된다.
믹스커피를 내 돈 주고는 절대 마시지 말아야지라고 생각하면서 억지로 끊었지만, 왠지 모르게 믹스커피를 마시고 바로 '띵~!'하고 정신이 돌아오는 느낌은 아메리카노를 마시는 것과는 또 다른 맛이다.
사무실에 오후 4~5시에 전화 한 통이 울린다.
“여보세요. 네~ 정**어르신.” “네~~ 커피 마시러 오라고요.”
정~ 바쁜 일이 아니면 생활실에 올라가 봐야 한다.
생활실에 올가면 “커피 한잔하고 가.”라고 부르신다.
자전거도 타시고 워커를 밀고 웬만큼 생활이 가능하신 어르신이, 개인사물함에서 직접 커피를 꺼내주신다.
처음에는 아 저 컵이 없네요.라고 핑계를 대고 다음에 와서 먹을게요 했더니 이제 종이컵까지 마련해 두시고 “커피 한잔하고 가.” 자꾸자꾸 부르신다는 것이다.
이게 믹스커피를 끊지 못하는 또 한 가지 핑계가 되었다.
'저 안 주셔도 돼요. 저 말고 요양보호사 선생님 주세요. 저 말고 선생님들한테 더 잘해주셔야 돼요.'
'아드님이 힘들게 사다 주셨는데 이렇게 다 나눠주시면 속상해하셔요.'
당 조절해야 하는 어르신들도 옆에 계시고, 또 각자 형편이 다르니 커피믹스를 어르신들 다 계신데 홀짝거리고 마시기도 민망해서 핑계를 대 보지만, 어르신이 불러주면 가서 또 한잔을 마시면서 한숨 돌리고 내려오게 된다.
자꾸 한잔해 한잔해 하시더니 이제는 아주 사무실로 전화를 하는 지경이 되었다.
평가준비로 바빠서 마시지 못하고 한포씩 받아다 나른 게 사무실 한편에 꽤 모였다.
어르신이 가보면 별 이야기도 없으신데. 방에 있는 와상어르신이랑 다툼이 있던 이야기를 하기도 하고 요양원 오시기 전에 살던 이야기를 해 주시기도 하신다.
'싸움대상도 안 되죠. 힘이 세신대, 그냥 봐주세요.' 하면 본인이 힘이 세고 건강하다는 이야기로 끝이 나니 그나마 다행이다.
걱정 근심이야기를 어찌나 진지하게 하시는지 어느 때는 알아듣기 힘들 때도 왕왕 있지만 고개 끄덕이고 잠시나마 상담자가 되어 주곤 한다. 잠시나마 시간을 내어달라는 표현으로 들려 거절할 수가 없다.
오늘은 어르신이 병원에 갔는데 병원에서 예약을 펑크내서 오히려 어르신이 바람을 맞고 오는 황당한 일이 생긴 상황이 되었다. 꼭 고집하고 다니던 병원의사 선생님이 펑크를 낸 것이다. 노인이라 부당한 일을 당했다면서 화가 머리끝까지 나신 어르신한테 가서 한동안 억울한 사정을 듣고 내려왔다. 화가 나신 상황이라 먼저 일어날 수가 없어서 한동안 기다렸는데 화가 풀리셨는지 오늘은 컵라면까지 한 개 꺼내주셨다.
일하면서 탕비실에서 봉지로 쓱쓱 저어서 마시면서 오가는 TMI들이 씁쓸한 직장생활 중에 한 가지 달달함인데, 우리 어르신이 그 맛을 제대로 아시는 어르신인 거 같다.
"어르신 저 퇴사하기 전까지 꼭 건강하셔야 돼요. 커피믹스 때문이 아니라. 저의 잠깐의 휴식타임 어르신 지켜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