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사랑받고 싶다.
한 방은 입구부터 인상을 쓰고 계신 어르신이 복도를 바라보는 방향으로 앉아계신다.
내가 다른 어르신이랑 인사만 해도 인상을 쓰시고 역정을 내신다.
내가 다시 돌아가서 어르신한테 인사를 하니까 갑자기 웃는 표정으로 바꿔로 인사를 하신다.
나는 그 어르신에게 ‘질투의 화신’이라는 별명을 지어드렸다.
절대 그 방에서는 <다른 어르신께 “먼저” 인사하면 안 된다.>는 비밀을 알아차렸다.
입구부터 어르신께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드리고 손도 잡아드리고 이야기 더 들어드리고 난 다음에 다른 어르신께 볼일을 봐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 그 방에서 웃으면서 조용히 내 일을 보고 나올 수 있다.
나는 내가 커피를 좋아하기 때문에 먹기 전에 눈치를 한 번 본다.
어르신 자리에 커피믹스가 있길래 “어르신도 타 드릴까요?”라고 물어봤는데 나는 커피 한봉도 아까워서 못 드신다며 화를 내셨다.
어르신들끼리 자녀들이 가져오는 소모품 전쟁이다.(이 글을 읽는 독자들, 참고하세요~~)
자주 드시는 반찬부터 과자, 두유, 요플레, 커피믹스, 사탕, 이런 게 어르신들 사유재산이자 자랑거리다. 이 방에는 커피믹스가 그것인데 내가 자극해 버렸다.
어르신께 한 주먹 갖다 드리고 총총총 물러나왔다.
자극이 됐는지 화를 많이 내긴 하셨는데 며칠째 분을 풀지 못하셨다.
약한 어르신이 신체적으로 나타나셨는지 병원까지 가게 됐다.
어르신 형편이 좋지 않았다. 자녀가 아예 없는 분이셨다.
그러니 옆에 어르신이 웃으며 ‘아이고 예뻐, 아이고 예뻐’ 뭐든지 예쁘다고 하는 말도 참기 힘들어하셨다. 자녀가 일주일이 멀다 하고 수육에 잡채에 재깍재깍 대령하는 딸, 며느리가 드나들었다.
어르신이 화가 나는 게 싫기도 하지만, 그 기분이 어쩐지 이해가 돼서 그 방에서 1번으로 인사하고 뭘 해도 첫 번째로 볼일을 보고 나서 다른 일을 보기로 작정하게 되었다.
“그럼 어르신 커피 같은 것 말고 먹고 싶은 거 한번 말해보세요. 제가 사다 드릴게요.”
했더니만, 어르신은 “콩물”을 선택하셨다.
콩물? 마침 얼마 전에 어느 떡방앗간 콩물이 맛있다는 소문을 들어서 두병을 사다 드렸다.
한 병은 아무도 주지 말고 어르신만 드시고, 한 병은 드리고 싶은 분한테 선물하세요 했더니 아주 좋아하셨다.
옆방에도 고함치는 어르신이 계신다.
가까이 가면 팔을 휘두르는데 잘못하면 한 대 얻어맞기도 하고 어쩔 땐 꼬집히기도 한다.
꼬집히면서도 요양보호사 선생님들은 어르신이 예쁘다고 해주신다.
무슨 매력이 있으신가 하고 봤는데 어르신이 몸부림을 치시는데 무슨 말인가 들어보니, “나 이뻐?”하신다.
잘 못 들었나 했더니만, 진짜 "나 이뻐?"
머리카락도 한개도 없고, 이도 없으신데 진심, 답을 원하는 얼굴이다.
나는 주머니에 있는 사탕을 드리면서 “네, 어르신이 제일 예뻐요.”라고 대답한다.
아이처럼 되는 어르신들이 많지만 아이 같다는 건 돌봄이 필요하다는 것과 그리고, 솔직하다는 것이다.
“이리 와, 이리 와~~~” 부르는 어르신이 있다.
들어가 보면 왜 이제 왔냐고 마치 진짜 손주한테 얘기하는 것처럼 얘기하신다.
“나는 여기서 자면 돼, 오늘 저녁에 애들 데리고 여기 아랫목에서 자고 가.”
앗, 어쩐다.
내가 조금 물러나려고 손을 움찔하면 가지 말고 놀다 가라고 고함을 친다. 어찌나 목청이 크신지 난감하다.
치매 어르신들은 시간이 고정돼 있는 것 같다. 과거로 돌아가는 어떤 자기만의 시간이 있다.
누가 이야기를 들어줘도 끝이 날 것 같지 않아 곤란해진다.
“어르신, 밥 차려 주고, 아이들 데리고 다시 올게요.”
그러자 얼른 다녀오라고 손을 풀어주신다. 빨리 갔다 오라고 손으로 말씀하신다.
젊은 시절부터 사랑이 얼마나 많았었는지 자주 고함치고 힘들게 하는데도 사랑이 느껴지는 참 아리송한 어르신이다. 요즘 고함소리도 길어지고 선생님들한테도 힘들게 하니 몸이 점점 쇄약하고 계시는 것 같아 걱정이 된다.
내가 색칠도안을 가져다 드리러 가도 생활실에서 자기 먼저가 아닌 게 화가 나는 어르신이 계신다. 나는 이방에도 질투의 화신이 있구나 하고 원하는 대로 해드린다. “어르신 1번.” 하면서 드리는데 어쩌면 모든 사람은 사랑을 받고 싶어 하시는지
사랑받고 싶은 어르신이 없으신지 한바탕 돌고 하루 일과가 시작된다.
그냥 인사 한번, 악수 한 번도 "사랑 약"이 되기 바란다.
사소하든 아니든 소외감 느끼는 어르신 없이 하루가 마무리되면 좋겠다 정도로 하루를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