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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dame Byun Jan 27. 2022

"감당하실 수 있겠습니까, 어머니?"

자식이라는 이름의 가성비


전형적인 이과 출신 공대남 남편은 자주 가성비를 따진다.

그리고 그 셈법은 자식 양육에도 적용된다.


"가성비 안 나오는데 그 학원은 보내지 마. 가성비 생각하면 그 돈 아꼈다 나중에 돈으로 주는 게 낫겠네."  


나는 소비에 있어 가성비 보다 마음의 움직임 따르는 편이라 이런 얘기를 귀담아듣지 않았다. 더구나 자식 앞에 가성비라니 덧정 없이 느껴지곤 했다.  

하지만 시간이 수록 그 말이 허투루 들리지 않고 있다.

일명 '돈 잡아먹는 구신' 우리 집 청소년에게 들어가는 돈 갈수록 불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중고등 아이를 둔 가정이라면 지출 1순위에 꼽히는 교육비부터 용돈과 수시 잡비까지, 항목도 각양각색이다.

검정 트레이닝을 하복, 동복으로 구비하여 일 년을 나는 친구도 있건만 폼생폼사인 딸은 과 화장 등 치장에 목숨을 건다. 거기다 폭넓은 오지랖과 인싸력을 겸비한 덕에 친구의 생일 및 각종 경조사를 그냥 넘기는 법이 없다.

이렇다 보니 목돈이 들어오는 새해가 면 만수르가 되어 여기저기 지갑을 열고 다니다가, 채 석 달이 지나지 않아 

죽는소리를 다. 오직 오늘만 사는 소비습관을 바로잡기 위해 용돈 관리 내가 는 걸로 합의 봤지만 쩐지 나가는 지출엔  변함이 없다.

쇼퍼홀릭

바로 스케일이 다른 학원비 때문이다.

학년이 오를수록 학원비는 인상되추가해야 하는 과목들은 늘다. 주변 고등 엄마들은, 중등 학원비야 말로 고등 때를 대비해 아껴야 한다니 앞으로 얼마를 쏟아부어야 하는 건가 싶다.  

전업 엄마들학원비 때문에 단기 알바라도 뛰어야 한다는 얘기가 푸념 삼아 그냥 하는 소리는 아닌 것이다. 실제로 예체능 준비하는 딸을 위해 시간제 가사도우미 알바를 자처하는 엄마를 보았고, 학원 셔틀 승하차 지도는 맘들의 경쟁이 치열해 아무나 못하는 자리라고 들었다. 자식 교육에 있어 투자한 만큼의 이득을 기대하기 때문인가 하면 그런 것도 아니다. 하면 잘해서, 못하면 못하기 때문에 영혼까지 끌어모아 뒷바라지한다.


못 먹고 못 살던 시절에는 대여섯쯤 되는 아이 중에 가장 똘똘한 놈에게 선택과 집중의 뒷바라지를 하고

후에 성공한 자식이 가족을 부양하는 수순이 흔했다. 말 그대로 가성비 생각한 자식농사였지만, 요즘의 부모들은 가성비 따져 한 자식에게 몰빵으로 지원하거나, 부양의 짐을 지우지도 않는다.  

그저 탈 없이 건강하게 자라주길, 학령기엔 공부 잘하고 친구관계 원만해 주길, 성인이 돼서는 좋은 대학 졸업해 번듯한 직장 취업해주길, 오직 자식 잘 되라는 이유로 물심양면 헌신한다.

부모에게 돌아오는 것은 보람과 기쁨, 뿌듯함이 전부이기에 유일무이한  아가페적 사랑 같기도 하다.  사랑은 한없이 자애롭고 순결하지만 때 강렬한 욕망과 결합하 '사랑이라는 '으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기도 한다.

  

일명 대치동 캐슬

몇 년 전  전국 엄마들의 화제작이었던 <스카이캐슬> 여기서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딸 예서를 S대에 보내기 위해 악마 같은 김주영 에게 영혼까지 팔았던 예서 엄마의 이야기에 빠져들었던 건 우리의 모오버랩되었기 때문이다. 결국 서 엄마는 본인이 만든 욕망의 덫에 걸려 파국으로 치닫지만 일면 짠한 마음이 들었던 도 비슷한 이유에서였다.

완벽하다 믿은 자식에게 뒤통수 맞은 부모, 자신이 못 다 이룬 욕망을 자식에게 투영하는 부모.

단지 극 중에서 나오는 설정뿐이었겠는가.

자식이 잘 되길 바라는 부모의 마음이 바람을 넘어 욕망이 되 자칫, 욕망 화마가 되어 모든 걸 집어삼기도 한다.


러니, 부모는 사랑도 바치고 돈도 바쳐야 하는 와중에

내 사랑이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는 건 아닌지 수시 점검이 필요하다. 자식을 향한 바람은 나의 욕망이나 자존감과 별개라는 것을 구분할 수 있어야 하고 자식은 나와 다른 한 사람의 타인이라는 것을 끊임없이 인식하고 경계해야 한다.


하지만, 이쯤 되면 좀 억울하다.

수지타산의 잣대로 본다면 야말로 된통 뒤집어쓰는 장사 아닌가. 남는 걸로 따지자면 가성비가 아닌 가심비에 가 양육이지만 기쁨과 만족감만 주는  아 분노와 좌절까지 제공한다는 성이 있다.

특히 사춘기의 상황은 여러모로 최악이다.

들어가는 돈을 보면 가성비는 쫄딱 말아먹고, 가심비는 눈 씻고 찾아봐도 없다.

눈 맞추며 방긋 웃던 그 미소에 내 모든 사랑을 바쳤는데 느새 미소 대신 맹수의 눈빛으로 응답하는 아이를 보면 속은 문드러지고 본전 생각 난다.  못난 모습만 콕 집어 닮은 걸 보면 아주 환장한다.


"학원비가 얼만데 너 이따구로 하려고...!"

"너만 보면 속 터져서..."

"마, 내가 널 어떻게 키웠는데!!"


어디서 많이 들어봤으면서 이젠, 내가 대물림처럼 아내는 레퍼토리가 줄줄이 나오기 시작한다. 자식은 어느새 걱정과 화병만 떠 안기는 존재가 되어 있다. 그렇게 전전긍긍 노심초사 아이의 꽁무니만 쫓다 보면 식이 기쁨이고 보람 일리가 없다.


하지만 잊어선 안된다.  기쁨과 위안과 행복을 나누는 관계라는 것을.

비록 가심비 황의 시기인 사춘기이지만 이 시기를 잘 넘겨 보자.  몇 년 후, 너무 높고 넓어져 버린 자식의 등짝을 바라보며 그때..  내가 맘껏 후려칠 수 있던 그때가 좋았어하며, 리워말고 지금의 시간을 여유롭게 품어보자.

살스러워 죽겠어도 가만 보면 내 품에 안겨 까르르 웃어대던  그 미소가 아직 남아 있다.


그래야 그나마 있는 가심비라도 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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