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 본 새에 실력이 많이 느셨네요?”
다니던 암장에서 오랜만에 보는 분이 한 말이다. 한 달 만인가?
작년 크리스마스 때부터 본격적으로 시작한 클라이밍은 올해 가장 잘한 일 중 하나이다.
늦바람이 무섭다고 그전까지 운동이라곤 걷기, 오르막길 걷기, 내리막길 걷기 정도가 전부였던 내가 지금은 주에 적어도 세 번, 많으면 네 번 정도 암장을 다니며 열심히 운동하고 있다.
다시 생각해보니 ‘열심히’라는 부사를 쓰기엔 부적절 한 것 같다.
‘열심히’라고 하니까 뭔가 능동적인 느낌이 있다. 그렇다기보다 재밌어서 계속하다 보니 습관이 되었고 매일 가고 싶으나 관절 이슈로 중간중간 쉬어주는 느낌이다.
그러니까 주에 세, 네 번 정도 일부러 쉬어주고 있다고 해야 맞겠다.
아무튼 대략 열 달 정도 몸을 움직이다 보니 눈에 띄는 변화가 몇 개 있다.
우선 체지방률이 시작할 때와 비교하여 4.5%가 감소했다.
그런데 체중에는 큰 변화가 없고 근육이 약간 늘고 지방이 약간 빠졌다.
그리고 전완근이 커졌다. 사실 인바디에서는 하체에 근육이 더 붙었는데 눈에 띄는 것은 전완이었다.
마지막으로 ‘상처’가 늘었다.
실력과 상처가 비례 관계에 있는지 나의 실력이 느는 동안 몸의 상처도 부지런히 늘었다.
주변을 봐도 클라이밍을 오래 한 고수 분들은 대체로 팔 다리 여기저기에 상처들이 덕지덕지 새겨져 있다.
아무래도 어려운 문제 일수록 그것을 풀어낼 때 실수하게 되면 부상의 위험이 크기 때문인 것 같다.
그런데 이번 주 아시안 게임을 보면서 한 가지 놀라운 점을 발견했다.
클라이밍 고수들과 달리 클라이밍 선수들은 몸에 상처가 없다..!
선수들의 깨끗한 팔다리를 보면 적어도 1년 이상은 상처를 입지 않은 것만 같다.
선수들이 하나같이 강철 피부를 가져서 그런 것은 아닐 것이다.
선수들도 훈련과 단련의 과정 속에서 숱한 상처를 입지 않았을까?
무수히 많은 어려운 문제들을 풀어나가면서 계속 상처를 견디며 성장하다가 결국 실패하더라도 더 이상 상처 받지 않는 몸이 되어버린 것이 아닐까?
이렇듯 상처가 성장의 그림자와 같다면 이것을 애써 물리치기보다 스스로 물러가기를 기다리는 것이 낫겠다.
물론 어떤 상처는 흉터로 변하기도 하겠지만 달리 생각하면 흉터도 피부에 음각된 기억이라는 점에서 타투와 유사하다.
따라서 이것을 흉이든 길이든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주인의 몫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것은 비단 몸에만 해당하는 것이 아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