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한 사람들과 떠나는 낯설지 않은 여행
고속도로 위를 달리는 관광버스를 보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장면이 있다.
버스 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알록달록한 옷차림, 복도로 흘러나오는 트로트 멜로디,
창밖을 바라보는 곱슬머리 실루엣.
그 안엔 시골 마을 어르신들의 단체여행이 있다.
관광지마다 어김없이 마주치는 모습,
단출한 일정표, 가벼운 차림.
언뜻 보면 단조롭고 투박하다고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몇 해째 이 여행을 함께 준비하다 보니
그 단조로움 속에서만 느껴지는 어떤 단단함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여행이란 꼭 새로운 것을 발견하러 가는 일만은 아니었다.
어르신들의 여행은 어쩌면 잠시 숨을 고르고 삶의 리듬을 되찾는 방식인지도 모른다.
---
매년 봄과 가을이면 어김없이 전화벨이 울린다.
"올해는 어디로 가볼까?"
대부분 시골 마을의 이장님이나 노인회
총무님들이다.
농번기 전이나 추수가 끝난 늦가을 즈음
정확히 걸려오는 이 전화는 '떠나고 싶다'는 말보다는 '쉬고 싶다'는 마음의 표현처럼 들린다.
이 여행은 언제나 익숙한 이웃들과 함께다.
어제까지 같은 밭에서 일하고 명절이면 반찬을 나누던 얼굴들.
장소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여수든, 통영이든.
정작 중요한 건 "올해도 하루 잘 다녀왔다"는 그 말 한마디다.
이 여행엔 소비의 흔한 흥청거림이 없다.
휴게소에선 체인점 커피보다 누군가 타서 돌리는 믹스커피가 더 인기고,
관광지에서는 기념사진보다 서로의 짐을 챙겨주는 손길이 먼저다.
다리가 아파 관광을 포기하더라도 버스에 남는 사람은 혼자가 아니다.
과일을 까서 건네고 미리 싸 온 찰밥과 김치를 나누며 "이게 최고지" 하는 웃음이 흐르는 곳.
그곳에서는 '내 것'보다는 '우리 것'이
더 자연스럽다.
한때는 이 하루짜리 여행을 가볍게 생각했다.
"○○마을 한 팀 잡혔습니다."
전화기 너머의 목소리를 단지 숫자로만 듣던 때가 있었다.
여행 당일에도 손수 반찬을 만들고, 음식을 싸온다는 사실도 이해되지 않았다.
하루쯤은 외식해도 될 텐데 굳이 그 번거로움을 감수하는 모습이 '절약' 혹은 '아낌'으로만 느껴졌다.
그런데 매번 같은 광경을 마주하며 문득 깨달은 것이 있다.
그 정성은 누군가 소외되지 않게 하기 위한 배려였고, 늘 해오던 방식대로 공동체를 돌보는 습관이었다.
그건 어르신들이 살아온 삶의 방식이었으며
이동 중인 버스 안에서도 그대로 이어지는
'함께 사는 법'이었다.
이 하루는 어르신들에게 '위로'에 가까운 날이다.
묵묵히 계절을 견뎌낸 자신과 이웃에게 조용히 내미는 격려 같달까.
관광지보다 중요했던 건 익숙한 사람들과 낯선 장소를 공유하는 그 시간.
그 여정은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는 힘이 된다.
가장 느린 속도로 달리는 관광버스 안에서
나는 종종 가장 단단한 삶의 방식을 본다.
소리 내어 말하지 않지만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손길, 누구도 뒤처지지 않게 돌아보는 마음.
어르신들이 관광버스를 타는 이유는
세상 어딘가 낯선 곳을 만나기 위해서가 아니라
익숙한 자리로 무사히 돌아오기 위해서 인지도 모른다.
그 하루가 지나면 또 한 해를 살아낼 준비가 된다.
"이번엔 어디로 가볼까?"
그 질문의 대답은
여전히 중요하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