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오자의 품격

낙오는 한국인의 '정'을 타고

by 오마롱


단체여행에는 묘한 규칙이 있다.

함께 가는 길인데 누군가는 늘 앞서고

누군가는 꼭 늦는다.

화장실 줄에서 가장 오래 걸리는 사람,

간식 하나 고르느라 버스를 놓칠 뻔한 사람,

그리고 아주 가끔은 —

정말로 버스를 놓치는 사람이 생긴다.


가끔 단체로 무언가에 홀린 듯한 날이 있다.

그날이 그랬다.

휴게소에 멈춘 버스기사는 안내방송을 한다.

"20분입니다. XX시 XX분까지— 돌아오세요!"


사람들은 제각각 분주히 움직인다.

커피를 사고, 핫바를 입에 물고,

찌뿌둥한 몸을 스트레칭하며

여독을 잠시 풀어본다.

그리고 시간에 맞춰 모두 제자리로 돌아온다.

단체의 인솔자는 인원수 확인을 마치고

기사에게 출발 신호를 보낸다.


버스는 다시 고속도로에 올랐다.

에어컨 바람과 함께 분위기는 평온하게 가라앉았다.

그런데 5분도 지나지 않아 한 승객의 외침이 터졌다.


"기사님! 우리 일행 한 명이 아직 휴게소에 있대요!"


정적.

고개들이 돌아가고, 휴대폰이 울리고, 공기가 혼란스러워졌다.

낙오다.


이미 고속도로에 진입한 버스가 다시 돌아가려면 시간이 한참 걸린다.

당황한 분위기 속에서 낙오자가 전화를 걸어왔다.


"제가 어떻게든 갈게요. 고속도로 어딘가에서.. 잠깐만 기다려 주세요!"


그 말이 신호였다.

갑자기 한 편의 예능 프로그램이 시작된 듯했다.

남겨진 그는 곧 히치하이커가 되었다.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정중하게 사정을 설명했고

'' 많은 누군가가 그 부탁을 흔쾌히 받아들였다.


역시 한국인의 '정'이라는 말이

괜히 생긴 건 아니었다.


버스는 가까운 간이휴게소에 멈췄다.

사람들은 창밖을 바라보았다.

"진짜 오긴 올까?"

"이게 무슨 일이람.."

누구도 확신할 수 없었지만

기묘한 기대가 조용히 피어올랐다.


그리고 마침내 —

한 대의 SUV가 미끄러지듯 도착했다.

뒷문이 열리고 낙오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양손엔 여전히 간식 봉투가 들려 있었고

얼굴엔 민망한 듯 어쩔 줄 모르는 웃음이 번졌다.


순간 버스 안에서는 환호와 박수가 터졌다.

누군가는 핸드폰을 꺼내 영상을 찍었고

누군가는 외쳤다.

"주인공 왔네, 왔어!"


그는 머쓱한 얼굴로 말했다.

"제가 버스 한 대를 통째로 기다리게 해 봤네요."


그 순간 그는 누락된 승객이 아니라

그 여행의 주인공이 되었다.


단체여행은 혼자였다면 절대 겪지 못할 일을 만든다.

그중 어떤 건 피곤하고, 어떤 건 불편하고,

어떤 건 이렇게 오래도록 회자된다.

마치 함께한 사람들의 수만큼 기억이 겹쳐진 앨범처럼.


낙오도 추억이 된다.

단, 누군가 기다려줄 때에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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