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묵히 달리는 것들에 대하여

이름 없는 동행

by 오마롱

우리는 늘 무언가를 타고 어딘가로 향한다.

버스든 지하철이든, 자동차든—몸을 싣는다는 행위는 삶의 방향을 정하는 일과 닮아 있다.

정해진 시간, 정해진 경로를 오가는 통근버스처럼 우리의 하루도 한정된 틀 안에서 반복된다.


우리 회사는 전세버스를 운영한다.

표면적으로는 여행사지만 정확히 말하자면 '사람의 시간과 공간을 연결하는 일'을 한다고 생각한다.

결혼식장, 장례식장, 수학여행지, 출퇴근길—

버스는 특정한 순간의 이동을 가능하게 한다.

그 안에 담긴 사연은 각기 다르지만, 이동이 있다는 건 선택과 결정, 혹은 감정이 있다는 뜻이다.


신차가 입고되는 날이면 나는 차체를 한 번 손으로 쓸어본다.

반들거리는 외장 표면은 새것의 냄새와 다가올 시간의 기운을 동시에 머금고 있다.

어떤 아이는 이 버스를 타고 학교에 다닐 것이고,

어떤 이는 매일 같은 좌석에 앉아 출퇴근을 반복할 것이다.

수천 번의 정차와 출발, 그 속에서 이 차는 사람보다 더 많은 계절을 기억하게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버스는 오래 일할 수 없다.

영업용 차량엔 '연식 제한'이 있어 일정 시간이 지나면 법적으로 운행이 불가능해진다.

기계 상태와는 상관없다.

연식이 다한 버스는 대게 폐차되거나, 캠핑카로 개조되거나, 해외로 수출된다.


우리의 첫 차량도 그렇게 떠났다.

누군가는 "이제 고물 하나 치웠다"라고 말했지만,

그 버스를 통해 지난 수년간 수백 명의 이동과 시간을 목격해 온 나로서는 단순히 기계 하나를 떠나보낸 기분만은 아니었다.


몇 해 전, 동남아시아의 어느 도로에서 낯익은 차체를 보았다. 옆면에 적힌 'ㅇㅇㅇ관광'이라는 상호는 그대로였다.

우리 회사 차량은 아니었지만 그 이름 하나만으로 가슴이 잠시 멈칫했다.

그 나라에서는 버스를 수입해 사용하면서도 한글 상호를 그대로 두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멀고 낯선 거리에서 그 버스는 마치

익숙한 책갈피를 다시 펼쳐본 느낌을 주었다.

나는 버스가 지나온 시간과 사람을 알고 있었고,

그것이 지금도 어딘가에서 다른 이들의 하루를 실어 나르고 있다는 사실이

이상하리만큼 단단하게 다가왔다.


생각해 보면 우리는 얼마나 많은 '말 없는 동행들'과 함께 살아가는가.

버스처럼 묵묵히 제 자리를 지키는 존재들.

일상 속에 스며 있어 오히려 눈에 띄지 않는 것들.


그런 것들은 낡고, 사라지고, 문득 다시 마주쳤을 때 비로소 의미를 남긴다.

기억은 자주 그런 방식으로 작동한다.


나에게 버스는 생계 수단이기도 하지만

그보다 먼저, 어떤 시간을 함께 통과해 온 매개였다.

그것은 누구에게나 있다.

버스가 아니어도, 누구에게나.


우리는 종종 특별한 순간을 좇는다.

하지만 일상을 지탱하는 것은 늘 조용한 것들이다.

감사하지 않아도 곁에 있어준 존재들,

이름조차 붙이지 않은 채 지나쳐온 것들.


버스는 그저 수단이다.

그러나 그 수단 위에서 오간 감정들과 사연들이, 어쩌면 삶의 구조를 이루는 또 다른 층위인지도 모른다.


다음 정류장에 도착하는 일—

그건 생각보다 많은 '이름 없는 것들' 덕분에 가능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