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따와 왕따 사이
한때 나는 중심에 있었다.
반에서 가장 활달한 무리 속에 내가 있었다.
그 자리가 얼마나 덧없는 것인지 알게 된 건
한 학기도 지나지 않은 봄의 끝자락 즈음이었다.
어느 날 아침 평소처럼 교실에 들어섰을 뿐인데
공기의 결이 달랐다.
익숙하던 얼굴들이 나를 외면했고
내가 던진 인사는 허공에서 맴돌았다.
점심시간에도 아무도 자리를 내주지 않았다.
처음엔 내가 예민한 줄 알았다.
혹시 뭔가 실수를 했던 걸까?
아무리 생각해도 이유가 떠오르지 않았다.
하지만 이틀, 사흘.
묘한 어색함은 어느새 확신으로 굳어졌다.
나는 밀려난 것이다.
그 중심엔 그 아이가 있었다.
학기 초 먼저 다가와 웃어주었던 아이.
단정한 옷차림, 상위권 성적, 어른스러운 말투.
선생님과 친구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던 아이.
그 아이가 어느 순간부터 나를 보는 눈빛을 바꾸었다.
말은 없었지만 명확히 들려왔다.
"이제, 넌 여기 아니야."
다른 아이들은 말없이 그 눈치를 따랐다.
누구도 이유를 묻지 않았고 나 역시 따지지 못했다.
공기가 이미 말하고 있었으니까.
내가 소속되었다 믿었던 무리에서
나는 조용히, 그러나 분명히 밀려났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 교실엔 이미 정해진 '왕따'가 있었다.
매일 같은 옷, 마른 어깨,
말수가 적고 그림자처럼 조용한 아이.
선생님조차 이름을 불러주지 않는 존재.
나는 그 아이보다 한 칸쯤 위에 있었다.
인기 그룹에선 밀려났지만
교실의 바닥까진 아니었다.
어색하게나마 나머지 다른 아이들과 어울렸다.
그리고—
나 역시 그 아이에게 말을 걸지 않았다.
마주 보면 미안할 것 같았다.
다가가면 나까지 함께 가라앉을 것만 같았다.
결국 나는 끝내 외면했다.
지금 돌아보면 부끄러운 일이다.
사실 그때도 알고 있었다.
그건 내 생존이었고 동시에 조용한 방조였다.
나는 '선택하지 않는 선택'을 하고 있었다.
누군가를 외면함으로써
나 자신을 간신히 지키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때 뿌려진 죄책감의 씨앗은
지금도 불쑥 고개를 든다.
문득 그 아이의 얼굴이 떠오를 때마다
나는 그 침묵을 다시 마주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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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속에서 밀려나는 순간
아이는 어른들이 가르쳐주지 않은
생존법을 배웁니다.
그리고 어떤 죄책감은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이름을 갖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