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이 없던 교실
그 교실엔 계급이 있었다.
보이진 않지만 누구나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분명했던 건—
그 안엔 잘못된 행동을 중재해 줄 어른이 없었다.
어린 나이에도 그것만은 분명히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지금 다시 떠올려도 다르지 않다.
반의 중심에 있던 그 예쁜 아이는 늘 인기가 많고 주목받았으며 동시에 '뒤에서' 온갖 질투와 험담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엄마가 자주 학교에 오는 것부터 아이들에게 무심한 담임이 유독 그 아이만 편애한다는 사실까지—
반 아이들 사이에 퍼진 불편한 정서는 이미 익숙한 공기처럼 퍼져 있었다.
열한 살짜리 아이가 그렸다고 보기엔
너무 섬세하고 완벽했던 미술 숙제.
"저건 분명 엄마가 그려준 걸 거야."
아이들 사이에 도는 소문은 늘 절반은 사실이고
절반은 시샘이었다.
무엇보다 아이들은 알고 있었다.
그 아이가 누구에게 다정한지를.
일명 '급'이 맞는 친구들에게만 웃음을 보이고
자기보다 아래라고 판단한 친구들에겐 돌아가며 무안을 주고 함께하는 놀이에서 배제시켰다. 역시나ㅡ 어떤 이유는 없었다.
하지만 누구도 그 아이의 행동을 지적하지 못했다.
교실은 작지만 위계는 견고했다.
그리고 그 위계를 바라보는 어른은 아무 말이 없었다.
담임은 중년의 남자였다.
학급 전체에 대한 관심은 없었고 임원들과 눈에 띄는 아이들 몇 명만 챙겼다. 그 외의 아이들에게 그는 늘 무관심했고 때론 냉담했다.
반 남자아이들이 특정 아이를 괴롭히는 건
비밀도 아니었다.
쉬는 시간마다 책가방을 뒤지고,
소지품을 빼앗고, 때로는 책상 아래로 발길질을 하던 풍경.
그 모든 걸 선생님이 정말 몰랐을까?
나는 확신한다.
몰랐던 게 아니라, 알고도 외면했던 거라는 걸.
어느 날 단체사진 비용 2000원을 가져오지 못한 아이가 있었다.
늘 따돌림을 당하던 그 아이였다.
모두가 있는 교실에서 담임은 그 아이를
큰소리로 꾸짖었다. 왜 돈을 안 냈는지, 부모는 뭐 하는지, 얼굴을 붉히며 추궁했다.
그 장면을 지켜보던 우리는
어린 나이였지만 알 수 있었다.
그건 혼날 일이 아니었다.
그 아이는 아무 말도 못 했다.
아마 말해도 소용없다는 걸 알았을 것이다.
그 순간 나도, 그 교실도
돌이킬 수 없을 만큼 잘못되어 있었다.
어른이어야 할 사람이 어른답지 못했기에
우리 모두가 조금씩 망가졌다.
우린 외면했고, 그는 방관했다.
그리고 그 사이에서 너무 어린 나이에
누군가는 친구를 줄 세우는 법을 배웠고,
누군가는 자기를 지키는 대신
숨기는 법부터 익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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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관은 중립이 아니다.
아이들 사이의 부조리는
어른이 모른 척하는 순간, 비로소 공고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