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쯤이면 괜찮아

마흔을 앞둔 나에게 필요한 문장

by 오마롱

서른을 넘길 땐 뭔가 될 줄 알았다.

마흔을 앞두니 그냥 되는 대로 살아가고 있다.


스무 살엔 막막한 미래가 불안했고,

지금은 별일 없는 오늘이 괜히 불안하다.

눈 뜨자마자 커튼을 걷고, 익숙한 자리에 앉아

'또 하루가 시작되는구나' 생각한다.

어제도 오늘 같았고 내일도 오늘 같을 것이다.


한해의 절반이 지나는 시점에 문득

내 나이쯤 되면 무언가 이룬 게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을 때- 곁을 돌아보니 익숙한 회사, 조용한 집, 무탈한 하루가 있었다.


늘 같은 길로 출근하고, 늘 함께하는 사람이 곁에 있고, 비슷한 시간에 돌아와 현관문을 열면

불 켜진 집 안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

그 평범한 풍경이 내 곁에 남아 있다는 사실이

오히려 귀하게 느껴졌다.


남들이 알아줄 만한 성취는 없을지 몰라도

매일 아침 이불을 걷어내고, 함께 밥을 먹고,

십 년째 한 직종에서 일을 하고, 마음을 다치지 않으려 애쓰며 보낸 하루들이 있다.

그 시간을 생각하면 지나온 날들을 후회하진 않는다.


그냥 지금을 더 잘 살아보자는 마음이다.

그래서 글을 쓰기 시작했다.

아무 일 없는 날에도 마음이 복잡할 수 있고,

별다를 것 없는 일상에서도 반짝이는 순간은 있으니까.


예전엔 그냥 넘겼을 법한 글에도 눈이 멈춘다.

월간지에 실린 누군가의 소소한 일상이야기였다.

버스정류장에 마중 나온 할아버지를 반갑게 마주한 할머니의 모습을 보고,

"나도 저렇게 나이 들고 싶다"라는 글이었다.

누군가의 짧은 고백이

그날 하루 내 마음을 다 채워주었다.


성공보다 중요한 건
그렇게 살아내는 태도 아닐까.


요즘 나에게 자기 계발서는

거창한 성공비법서가 아니다.

삶의 조각을 건져 올려

하루치 마음을 건네는 누군가의 고백,

그 소박한 진심이 더 깊게 스며든다.


그리고 그런 글들이

무너지는 나를 조용히 일으켜 세운다.


/때로는 그 수확이 너무 작고

볼품없게 느껴지는 순간이 있을 것이다.

그럴 땐 고흐의 말을 떠올려보자.

해가 뜨거울수록 수확은 풍요로워진다./


나와 같은 생각을 지나온 누군가의 문장이

나를 다독인다.


어제 같은 오늘을 보내고,

오늘 같은 내일이 오겠지만

삶은 여전히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뜨거운 국물처럼 속을 데우는 문장 한 줄이 있다면, 누군가의 작은 진심이 마음에 내려앉는다면.


이쯤이면 괜찮은 삶 아닐까.

행복의 기준이 낮아졌다는 건

어쩌면 삶을 더 깊고 너그럽게

받아들이고 있다는 뜻일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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