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에서 행복 줍기
여름이면 우리는 어김없이 수박을 산다.
나는 수박을 썰고 남편은 옆에 앉아 씨를 걷어낸다.
내가 수박씨를 싫어한다는 걸 그는 안다.
말없이 씨를 발라낸 가장 붉고 달콤한 조각을 골라 내 입에 넣어준다.
그 자연스러운 손놀림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문득 생각한다. 이게 사랑이지.
사랑이라는 단어는 너무 많은 뜻을 가졌고,
그래서 자주 길을 잃는다.
불꽃같은 감정이나 눈물겨운 헌신,
드라마 속 뜨거운 고백들 사이에서
우리의 사랑은 배경처럼 존재해 왔다.
별다른 연출도, 특별한 장면도 없이.
하지만 매일 함께하는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건
그 사람의 리듬을 기억하는 일이다.
그가 더위를 얼마나 싫어하는지,
어떤 음식에서 어떤 재료를 남기는지,
말은 안 해도 지금 어떤 기분일지.
그의 하루에 내가 어디쯤 있어야 할지를
조금씩 알아가는 일이다.
여기에 필요한 건
거창한 희생이나 감정의 증폭이 아니라 '조율'이다.
어긋나지 않게 듣는 법,
서로를 지나치지 않게 속도를 맞추는 일.
물론 매일이 조화롭진 않다.
사랑도 때때로 파열음을 낸다.
서로를 잘 안다고 믿었는데
어떤 말 한마디에 마음이 서걱거리고,
의도치 않은 침묵이 상처가 되기도 한다.
그럴 땐,
"역시 우린 안 맞아." 하고 돌아서다가도
"그래. 일부러 저러는 게 아니지." 하며
있는 그대로의 서로를 받아들이는 쪽을 택한다.
그는 여전히 말수가 적고,
나는 여전히 감정이 많다.
그는 정확하며 나는 자주 깜빡한다.
그는 무던하고 나는 예민하다.
우리는 닮지 않았다.
하지만 서로의 다름을 덜어주려 애쓴다.
그는 내가 흘린 물건을 조용히 챙기고,
나는 그의 말 없는 피로를 눈치챈다.
그는 보일러 온도를 조절하고,
나는 그의 약봉투를 미리 꺼내둔다.
언제나 말보다 손이 먼저 움직인다.
그러고 보면
우리의 일상 자체가 사랑의 방식이었다.
계절처럼 밥처럼
너무도 익숙해서 특별함을 느낄 틈조차 없이
생활의 구석구석에 깔려 있었다.
그래서 자주 잊는다.
그가 오늘도 내 컵에 물을 채웠다는 것과,
내가 또 얼음을 얼려두었다는 것을.
그렇게 하루하루 쌓인 손길이
얼마나 서로를 향해 있었는지를.
그러다 아주 사소한 순간에,
이를테면 수박 한 조각 앞에서
불쑥 깨닫게 된다.
그가 아직도
내 수박의 씨를 걷어주고 있다는 사실을.
그리고 그 사실 하나만으로
오늘 하루가 충분히 달콤하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