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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뜬구름 Sep 18. 2015

나는 왜 일을 하는가

프리랜서로 산다는 것은...

어제 모임에서 한창 이야기를 주고받는 중간에 ‘바쁘세요?’라는 문자를 받았다. 문자를 보낸 사람은 최근 함께 일하고 있는 번역회사 이사다. 나는 잠시 답장을 망설였다. 바쁘냐고 물어보는 건 바쁜 일이 있는데 지금 당장 처리해 줄 수 있냐는 질문이며, 조금 더 확장시켜 해석하면 지금 하고 있는 일을 멈추고 ‘롸잇 나우’ 집으로 돌아가 회사의 바쁜 일 좀 처리해 달라는 무언의 압박이기 때문이다. 밑 보이면 가차 없이 잘리는 프리랜서 세계에서 나는 안타깝게도 갑의 요구에 기분 내키는 대로 거절할 수 있는 ‘슈퍼을’이 아니다. 내가 무슨 답장을 보내야 할지 고민하는 사이 또 다시 문자가 날아왔다. ‘통화 가능하세요?’ 힘없는 ‘을’의 신분을 자각한 나는 즉시 답장을 보냈다. ‘네 통화 가능합니다’. 


집으로 돌아온 나는 가볍게 씻고 책상에 앉자마자 새벽 3시까지 단체 채팅창을 열어놓은 채 쉬지 않고 일을 해야 했다. 채팅이라는 건 원활한 커뮤니티 수단의 하나로, 주로 친구들과 수다를 떨거나 남 뒷담화나하며 스트레스를 푸는 공간이라고 생각했다. 회사에서 일은 하기 싫은데 대놓고 놀지는 못할 때나 쓰던 심심풀이 땅콩 같은 것이었는데, 어제는 이것이 은근한 감시와 통제의 수단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유레카! 고용주 입장에서는 정말 엄청난 유레카일 것이다. 회사를 운영하는 사람들은 매출과 거래처가 달려 있기 때문에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일을 한다. 이 번역회사 이사도 마찬가지다. 언제 잠을 자는지 도통 모르겠다. 채팅창에서 천천히 하라는 지속적인 독려는 역설적이게도 최대한 빨리 처리해 달라는 압박으로 다가온다. 그렇게 나는 일하는 기계처럼 ‘철컥 철컥’ 내 두뇌와 손가락을 움직였다.


오늘 아침, 나는 일어나자마자 500ml 생수 한 병을 들고 책상 앞으로 가서 밤새 날아온 이메일을 확인했다. 당일 오전까지 처리해 달라는 메일이 도착해 있다. 메일은 어제 내가 막 컴퓨터를 껐을 시각, 03시 14분에 도착한 것이다. 일반적으로 오전이라 함은 출근하는 시간인 8~ 9시부터 점심을 먹기 전인 12~1시 정도다. 하지만 내가 받아들이고 그들이 원하는 오전은 메일을 보낸 새벽 3시 14분부터 점심시간이 시작되기 전에 상대방이 메일을 확인하고 피드백을 줄 수 있는 시간을 넉넉히 포함해 1~2시간을 뺀 시간을 의미한다. 메일 끝에 달린 ASAP라는 작지만 선명한 문구가 내가 생각하는 그 ‘오전’이 틀림없다고 못을 박는다. 그렇게 또 나는 오전 10시 30분까지 10통의 메일을 주고받으며 일을 했다. 


폭풍 같은 하루가 아니라, 폭풍 같은 오전이 지나가고 다시 책상 앞. 나는 글을 쓰며 생각한다. 인간은 왜 일을 하는가? 아니, 나는 왜 일을 하는가? 20대 때는 워커홀릭을 꿈꾸며 일에 파묻혀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는데, 지금은 ‘나는 왜 일을 하는가?’를 묻고 있다. 단지 돈을 벌기 위해서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게 전부가 아닌 것은 확실하다. 뭐든 전부가 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자, 그럼 다시 ‘나는 왜 일을 하는가?’. 쉽지 않다. 조금만 더 생각해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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