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제조사와의 만남

by 오분레터

찾아낸 국내 제조사는 인천에 있었다. 우리 집과는 차로 2시간 거리였다. 가까운 거리는 아니었다.

'어떻게 연락을 해야 하지...' 고민 끝에 제조사 홈페이지에는 이메일 주소와 전화번호가 있었다. 웹페이지는 투박했지만 정성스럽게 만들어진 느낌이 들었다. 제품 소개 페이지에 올라온 사진들은 전문적이지 않았지만 진실함이 느껴졌다. 마치 직접 스마트폰으로 찍은 것 같은 소박한 이미지들이 오히려 신뢰감을 주었다.


'이메일을 보내볼까? 아니야 그냥 전화해 보자' 나는 잠깐의 망설임 끝에 전화번호를 누르기 시작했다. I성향의 나에게는 꽤나 큰 용기였다. 손가락이 떨리며 번호를 누르는 동안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전화를 걸기 전 거울 앞에서 한 번 더 자세를 정리하고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마치 면접을 보러 가는 것처럼 긴장되었다.


"따르릉, 따르릉..." 신호음이 울렸다. 세 번째 신호음이 끝나갈 무렵 전화가 연결되었다.

"안녕하세요, ooo입니다." 중년 남성의 목소리가 들렸다. 생각보다 친근한 목소리였다.

"대표님 안녕하세요, 저는 온라인에서 oo쇼핑몰을 운영하는 000이라고 합니다. 대표님 회사의 제품에 관심이 있어서..." 나는 미리 준비한 대본을 읽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사실 제조사는 이런 전화를 많이 받는다. 귀찮기도 할 정도로 말이다. 나는 그중에 한 명이 되었을 뿐이었다. 그러나 대표님은 다행스럽게도 나의 전화를 진심으로 받아주셨다. 지금 생각해도 고마웠다. 내가 한 마디를 하면 대표님은 3마디 4마디를 하셨다. (죄송하게도) 말씀이 많으신 분이었다. 훗날에서야 그 이유를 알았다. 대표님은 본인의 제품에 대한 자신감이 대단하신 분이었다. 직접 설계하고, 제조까지 하시는 능력 있는 분이셨다.


전화 통화는 예상보다 길어졌다. 처음에는 단순한 문의 전화였지만, 대표님의 열정적인 설명을 들으면서 나도 모르게 빠져들었다. 그분은 제품의 작동 원리부터 시작해서 재료의 특성, 심지어 경쟁 업체들의 단점까지 자세히 설명해 주셨다. 마치 대학 강의를 듣는 것 같았다.


"저도 대표님의 제품이 참 좋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런 부분은 좀 개선이 되었으면 하는데 가능할까요?"

"아, 그거요? 그거 우리가 이미 시도해서 다 제작이 되어 있죠" 대표님의 목소리에 자부심이 가득했다.

내가 필요했던 조건 하나가 바로 충족되었다. 그건 바로 텐트 상부에 걸어서 사용할 수 있는 고리가 필요했는데 이미 대표님의 제품엔 반영되어 있었다. 마치 운명처럼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내가 원하는 것을 이미 누군가가 만들어놓고 있었다니. 이런 우연의 일치가 비즈니스에서도 일어날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대표님 너무 좋습니다. 아이디어 좋으시네요. 또 한 가지가 있는데요, 혹시 전용 가방이 있을까요?"

내 질문에 대표님의 속사포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아, 전용 가방은 없어요. 우리 제품은 주로 아파트나 신축 건물로 나가는 제품이라 가방이 필요 없거든요. 그렇지만 캠핑용으로 들고 다니려면 파우치가 있으면 좋긴 하겠네요. 한 번 생각해 볼게요."

"네 대표님 감사합니다. 저도 고민해 보겠습니다. 제가 실제 제품을 한번 보고 싶은데 한 번 찾아봬도 될까요?"

"그럼요. 언제든 오시면 됩니다."


대표님의 답변은 예상보다 흔쾌했다. 처음 통화하는 사람에게 이렇게 쉽게 공장 방문을 허락해 주시다니.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대표님은 자신의 제품에 대한 자신감이 워낙 강하셔서 누구든 오면 자랑하고 싶어 하시는 분이었다.


그날 나는 조금 이른 퇴근을 하고 인천으로 달렸다. 평소보다 30분 일찍 퇴근하기 위해 점심시간을 줄이고 커피 타임도 건너뛰었다. 동료들에게는 개인 업무가 있다고 둘러댔다. 아직은 누구에게도 온라인 쇼핑몰을 운영한다는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인사위원회에 불려 가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오후 4시에 회사를 나서니 벌써 차량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고속도로는 이미 차들로 꽉 막혀있었다. 2시간 거리를 3시간이 넘게 걸려서야 도착했다. 차 안에서 라디오를 들으며 시간을 보냈는데, 평소라면 지루했을 교통체증이 오늘은 그리 나쁘지 않았다. 곧 만날 대표님에 대한 기대감과 새로운 비즈니스에 대한 설렘이 마음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도착한 곳은 인천 주안국가산업단지 내에 있는 작은 건물이었다. 주변은 온통 공장들과 창고들로 가득했다. 회색빛 건물들 사이로 하나 둘 조명들이 켜지기 시작했다. 산업단지 특유의 기계 소음과 화학 냄새가 공기 중에 섞여 있었다. 처음 가보는 곳이라 내비게이션에 의존했지만, 비슷비슷한 건물들 때문에 헷갈렸다.


건물 앞에 도착하니 'ooo'이라는 간판이 소박하게 걸려있었다. 3층 건물의 2층에 위치한 사무실이었다. 1층에는 다른 업체가 들어와 있었고, 3층은 비어있는 것 같았다. 건물 외관은 오래되어 보였지만 깔끔하게 관리되고 있었다.


근처 편의점에서 비타 500 한 박스를 사들고 사무실을 방문했다. 빈손으로 갈 수는 없다는 생각에 뭔가 들고 가야겠다고 생각했는데, 편의점에서 고민하다가 선택한 것이 비타 500이었다. 딱히 특별한 이유는 없었다. 그냥 실용적이면서도 부담스럽지 않을 것 같았다.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서니 대표님과 아내분이 몇 명의 직원과 함께 운영하는 작은 회사였다. 사무실은 생각보다 아담했다. 10평 남짓한 공간에 책상 서너 개가 놓여있고, 한쪽 벽면에는 제품 샘플들이 진열되어 있었다. 공간은 작았지만 정돈되어 있어서 답답하다는 느낌보다는 아늑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나를 반갑게 맞이해 주셨는데 두 분의 인상이 참 인상 깊었다. 대표님은 50대 중반으로 보이는 분이었다. 검게 그을린 피부와 굵은 손이 오랜 세월 제조업에 종사해 온 장인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대표님 아내분은 온화한 미소를 지으시며 차를 끓여주셨다. 가족 경영의 따뜻함이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이산화탄소 아니고요, 일산화탄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