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산화탄소 아니고요, 일산화탄소입니다

고객들은 생각보다 잘 알지 못한다

by 오분레터

출근 전 아침은 늘 전쟁 같았다. 택배 박스를 쌓아두고 테이프를 붙이며, 그날 발송해야 할 물건들을 정신없이 포장했다. 한눈팔 겨를도 없이 송장을 출력하고, 운송장 번호를 확인하며 다시 박스를 봉인했다. 점심시간이라고 해서 여유가 생기는 건 아니었다. 회사에서 집으로 부리나케 뛰어오듯 이동하며, 남은 짧은 시간 안에 택배를 추가로 싸야 했다. 그렇게 한숨 돌릴 새도 없이 하루의 대부분을 보냈다.


퇴근 후가 되어서야 비로소 본격적으로 사업에 몰입할 수 있었다. 책상 앞에 앉아 판매할 만한 제품을 찾기 위해 키워드 분석을 밤늦게까지 이어갔다. 스스로도 놀랄 만큼 집요하게 검색어를 뒤지던 어느 날, 마침내 운명 같은 키워드를 발견했다.


바로 ‘이산화탄소 경보기’였다. 공장이나 산업현장에서나 쓸 법한 이 제품이, 개인 소비자들에게 관심을 받는다는 사실이 처음에는 의아했다. 그런데 연관검색어에 ‘일산화탄소 경보기’가 나오는 것을 보고 무릎을 쳤다.

일산화탄소(CO)는 무색무취의 치명적인 가스로, 불완전 연소 시 발생한다. 산소가 부족하면 연료가 완전히 타지 못하고 일산화탄소가 생기는데, 이걸 마시면 순식간에 목숨을 잃을 수 있다. 반면 이산화탄소(CO₂)는 완전연소의 부산물로, 농도가 지나치게 높아질 경우 질식 위험은 있지만 상대적으로 무해하다. 뉴스에서 흔히 보는 캠핑장 가스중독 사고의 주범은 대부분 일산화탄소였다.


그런데 소비자들은 두 가스를 쉽게 혼동했다. 특히 겨울철, 텐트 안에서 난로를 사용하는 캠핑족들이 ‘이산화탄소 경보기’를 찾고 있었다. 이유를 추적해 보니 금세 답이 나왔다. 캠핑을 하며 난방 기구를 사용하는 사람들은 불안했다. 혹시라도 잠든 사이에 가스중독으로 목숨을 잃을까 봐 경보기를 찾았던 것이다.


2020년, 코로나19로 모두가 답답해진 시절이었다. 사람들이 몰려간 곳은 바로 캠핑장이었다. 너 나 할 것 없이 자연으로 탈출해 장박(텐트를 오랫동안 설치하고 지내는 것)을 즐겼다. 하지만 밀폐된 공간에서 난로를 피우면 위험이 뒤따른다. 매년 캠핑장에서 일산화탄소 중독으로 사망하는 사건이 끊이지 않았다.


나는 공대 출신이었고, 조선소에서 엔지니어로 일한 경험이 있었다. 이산화탄소와 일산화탄소의 차이를 분명히 알고 있었다. 그러나 고객들은 잘 알지 못했다. 바로 그 틈새를 공략해 보기로 했다. 도매 사이트에서 가격이 저렴한 경보기를 찾아냈다. 원가는 2,000원 정도밖에 안 됐지만, 소비자 판매가는 15,000원에 형성되어 있었다. 상세페이지를 그럴듯하게 꾸미고 사진을 다듬었다. 제품명은 ‘이산화탄소 경보기’로 달았다. 실상은 일산화탄소 경보기였지만, 이미 경쟁이 치열한 일산화탄소 키워드보다 ‘이산화탄소’를 검색하는 사람들을 노리는 편이 더 효과적이라 판단했다.


이 전략은 내 예상보다 훨씬 강하게 먹혔다. 주문량이 눈에 띄게 늘었다. 매출이 불어날수록 리뷰도 쏟아졌다. 그러나 기쁨은 오래가지 않았다. 제품의 불량 문제가 터졌다. 너무 조악한 중국산 제품이었기에, 불량률이 높았다. 부실한 경보음, 허술한 마감, 허위 성능까지… 제품 하나에 쏟아진 불만이 내 발목을 잡기 시작했다. 싸게 들여와 비싸게 팔던 구조의 허점이, 결국 드러나기 시작한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문은 꾸준히 들어왔다. 그러나 불량 문제는 결국 해결해야 할 구조적 문제였다. 고객 불만을 방치한 채 판매만 이어가는 것은 지속 가능한 사업이 아니었다. 고민 끝에 나는 새로운 제품을 소싱하기로 결심했다.


소싱 기준은 명확하게 세 가지로 정했다. 첫째, A/S가 원활한 국산 제품일 것. 둘째, 캠핑장에서 텐트 내부에 쉽게 걸 수 있도록 전용 고리가 달려 있을 것. 셋째, 이동과 보관이 편리하도록 전용 파우치가 포함될 것.


이 조건을 충족하는 제조사를 찾기 위해 수없이 검색했다. 네이버와 구글을 샅샅이 뒤지고, 특허청 자료까지 훑어보며 키워드를 바꿔가며 탐색을 이어갔다. 머릿속에는 ‘안전’과 ‘신뢰’라는 두 단어만 맴돌았다. 허술한 제품으로 고객을 실망시키지 않겠다는 다짐이었을까.


며칠을 매달린 끝에 마침내 조건에 맞는 국산 제조사를 한 곳 찾아냈다. 작은 승리 같았지만, 그 순간의 안도감이 참 짙었다. 이제 문제는 어떻게 컨택할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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