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배 좀 싸고 오겠습니다

by 오분레터

해외구매대행으로 시작한 내 쇼핑몰은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사입 형태로 바뀌어갔다. 해외구매대행은 노트북과 핸드폰만 있으면 어디서든 주문을 처리할 수 있었다. 재고도 필요 없고, 포장도 필요 없었다. 고객이 상품을 주문하면, 나는 곧바로 해외 사이트에서 주문을 넣고 배송만 연결하면 끝이었다. 본업이 있는 나에게는 최적의 구조였다.


주문이 많아질수록 고객들의 배송 독촉은 계속 이어졌다.
“배송되고 있는 거 맞아요?”
“내일까지 받아볼 수 있을까요?”

심지어 오늘 주문하고 내일 받을 수 있냐는 고객도 있었다.

"고객님 이 제품은 해외배송이라 하루 만에 배송은 어렵......"


로켓배송, 새벽배송에 익숙해진 탓에 빠른 배송을 원하는 고객이 점점 늘어났고, 나는 결국 물건을 미리 들여와서 직접 포장하고 발송하는 방식으로 방향을 틀었다. 다시 말해, 재고를 쌓고 박스를 포장하고 택배를 직접 부치는 ‘진짜’ 장사를 시작한 것이다. 그 모든 수고는 단 하나의 이유, 배송 때문이었다. 대한민국은 무조건 빨라야 했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전날 밤 들어온 주문 확인이었다. 거래처에서 받은 제품을 창고처럼 쓰는 작은 방에서 하나씩 꺼내 재고를 체크하고, 상품별로 분류했다. 크기에 맞는 박스를 꺼내 조심스럽게 물건을 넣고, 에어캡을 감싸고, 테이프를 둘러 붙였다. 한 손엔 커터칼, 다른 손엔 테이프 디스펜서. ‘사각사각’ 박스가 접히고 ‘찍찍’ 테이프 소리가 반복되었다.


박스들이 하나둘 쌓이면 품에 안고 집 앞 편의점으로 향했다. 편의점 미닫이 문위에 달린 싸구려 종이 요란스럽게 울리는 순간, 알바생과 눈이 마주쳤다. 처음엔 “안녕하세요” 하고 인사를 건네주던 그가, 어느 날부턴가 표정이 달라졌다. 내 손에 든 박스 무더기를 바라보며 눈썹을 추켜올리고, 무표정한 얼굴로 말없이 시선을 피했다.


몇 번쯤 더 갔을까. 하루는 내 뒤통수를 스치는 말투가 유난히 거슬렸다.
“또 택배예요?”

나는 애써 웃으며 “네, 오늘은 좀 많네요...”라고 대답했지만, 목소리는 점점 작아졌다. 그날 이후 집 앞 편의점은 피하게 됐다. 차에 박스를 한가득 실어 놓고, 동네 편의점 여러 곳을 돌며 분산해서 택배를 보내기 시작했다. 알바생 눈치를 보며 택배를 ‘숨기듯’ 맡기는 내 모습이 마치 무슨 밀수꾼 같았다.


하루의 시작이 그렇게 끝나면, 나는 대충 씻고 회사로 출근을 했다. 오전 근무를 마치면 다시 또 집으로 달려갔다. 점심시간 1시간은 나에겐 전쟁 같은 시간이었다. 시계가 12시를 가리키는 순간,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사무실에서 주차장까지 3분 동안 빠르게 걸었다. 주차해 둔 자전거에 올라타고 숨을 몰아쉬며 페달을 밟았다. 회사에서 집까지는 자전거로 5분. 컴퓨터를 켜고 한숨 돌리는데 2분이었다.


컴퓨터가 부팅되는 동안 손은 이미 재고 박스를 열고 있다. 주문 건을 확인하며 필요한 상품을 찾아 꺼내고, 박스에 넣고, 테이프를 감고, 운송장을 등록했다. 땀이 이마에 맺히고 팔에는 박스 가루가 붙었다. 땀을 닦을 틈도 없이 다시 박스를 품에 안고, 또다시 차를 몰고 편의점으로 향했다.


편의점 미닫이 문위에 달린 싸구려 종은 어김없이 요란스러웠고 나는 또 한 번 알바생 눈치를 살폈다.

"택배 좀 보낼게요"

다른 말은 필요 없었다. 모든 일을 마치고 다시 회사로 돌아가는 길, 여름이면 셔츠가 땀에 절여진다. 사무실에 들어서면 동료가 묻는다.

“야, 너 뭐 하다 왔길래 이렇게 땀을 흘려?”
“집에 급한 일 좀 있어서 갔다 왔어..."


나의 투잡은 힘들었지만 한편으론 이상하게도 이 일이 재미있었다. 열심히 사는 내 모습을 보고 '나 쫌 열심히 사는 것 같네?'라며 스스로 자화자찬을 하기도 했다. 그렇게까지 하면서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애를 쓰나 싶었다. 용돈 10만 원이 그렇게 간절했던 걸까.


그전까진 내가 장사를 하게 될 거라곤, 더군다나 온라인으로 물건을 팔게 될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직장생활밖에 모르던 나에게 이 쇼핑몰은 또 다른 세상을 열어주었다. 한 번은 이런 생각을 하기도 했다.

‘어쩌면, 정말로 회사를 그만둘 수도 있겠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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