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증은 그렇게 어쩌다 찾아왔다

출산 우울증

by 오분레터

"여보, 나 임신했나 봐."

아내의 이 한마디는 우리 부부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 놓았다. 결혼한 지 몇 개월 되지 않은 시점에서 찾아온 아이는 우리 계획에 없던 선물이었지만, 결국 우리는 기쁨으로 맞이하기로 했다. 나는 33살이었다. 적지 않은 나이였기에 아이를 빨리 낳아 키우고 싶다는 생각이 컸다. 반면, 아내는 신혼을 좀 더 즐기고 싶어 했다. 그러나 신이 주신 축복을 외면할 수는 없었다.



2014년 10월 1일, 우리의 첫 아이가 건강하게 태어났다. 출산을 옆에서 지켜보는 것은 나에게도 고통스러운 일이었지만, 출산을 직접 겪는 아내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그녀는 끝까지 버텨주었고, 아이도, 아내도 건강했다. 감사한 일이었다. 나는 우리가 이 행복을 오래도록 누릴 줄 알았다. 하지만 그것은 착각이었다.



찾아온 우울증


출산 후 3개월쯤 지났을 무렵, 아내의 모습이 변하기 시작했다. 그녀의 눈빛은 점점 초점을 잃어갔고, 눈꺼풀은 힘없이 감겼다 떴다를 반복했다. 얼굴에는 더 이상 생기가 없었다. 침대에 누워 있는 시간이 늘어났고, 아이가 숨이 넘어갈 듯 울어야만 마지못해 아이를 돌보았다.



"여보, 나 왜 이러지? 내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어. 나 좀 살려줘."

아내의 그 한마디는 내 심장을 철렁 내려앉게 했다. 우리는 서둘러 동네 정신 의학과를 찾았고, 아내는 산후 우울증 진단을 받았다. 약을 처방받았지만, 효과가 있는 듯 없는 듯 알 수 없었다. 상태는 점점 더 악화되었고, 결국 아내는 하루 종일 침대에서 나오지 않는 지경에 이르렀다.



내 부모님은 일찍이 돌아가셨고, 장모님도 이미 수년 전 세상을 떠난 터라 우리는 의지할 곳이 없었다. 결국 나는 육아휴직을 결심했다. 당시만 해도 육아휴직을 쓰는 남자 직원은 거의 없었다. 아니 전무했다. 사회는 육아휴직을 장려한다고 말했지만, 현실은 달랐다. 그래도 나는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부장님, 저 육아휴직 좀 내야겠습니다."

사정을 설명하고 며칠 후, 나는 1년간의 육아휴직을 시작했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아내와 아이를 돌보기 시작했다.



육아와 간호, 그 끝없는 하루들


말이 좋아 ‘돌봄’이지, 사실상 하루 종일 집안일과 육아를 도맡아 했다. 밥을 차리고, 청소하고, 빨래하고, 아이에게 분유를 먹이고, 기저귀를 갈고, 재우고, 안고… 그렇게 하루하루가 흘렀다. 덕분에 아이의 첫 이유식도 내가 시작하게 되었다.



아이와 함께하는 시간은 생각보다 즐거웠다. 하지만 아내의 상태는 나아지지 않았다. 차려준 밥을 겨우 한 숟가락 뜨는 것도 힘겨워했고, 물조차 마시지 않았다. 하루가 다르게 마른 그녀의 모습이 두려웠다. 씻지도 못하니 몰골은 점점 말이 아니었고, 하루 종일 누워 있어도 잠을 이루지 못했다. 숨은 쉬고 있었지만, 사람이 살아가는 모습은 아니었다.



그녀를 옆에서 바라보며, 나는 결심했다. 이렇게 무기력하게 그녀를 지켜보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우리는 더 많은 병원을 찾아가 보기로 했다.



(다음 이야기: 찾아간 병원만 다섯 군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