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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세’보다 ‘출구’를 고민해라

by 오분레터

승진의 끝에서 마주친 허무


많은 사회인들의 직장생활 목표는 ‘출세’다. 더 높은 직위, 더 많은 연봉, 더 넓은 방. 하지만 정점에 선 순간, 이 모든 것들이 허무하게 느껴진다고 말하는 이들이 많다. 그 자리에 도달한 사람들조차 다시는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고 털어논다. 매일 회의로 시작해 보고서로 끝나는 삶. 가족과는 멀어지고, 건강은 무너졌다. 무엇을 위해 그렇게 달려왔는지 묻고 싶다고 한다.


한 대기업 임원은 퇴직 3개월 후 건강검진에서 심각한 당뇨 판정을 받았다. 퇴직 후 하루에 두세 번씩 병원을 드나들며 “나는 무엇을 위해 그렇게 살았던가”라는 자책을 반복했다고 한다. 그는 말년에야 깨달았다. ‘직장의 출세는 내 삶 전체의 출세가 아니었다’는 사실을.


출세는 고지로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출구를 준비하는 길 위에서 완성되어야 한다. 결국 우리 모두는 언젠가 그 직장을 떠나야 한다. 문제는 떠나는 방식이다.




인생 2막은 퇴직 전에 설계해야 한다


퇴직은 언젠가 닥쳐올 예고된 현실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퇴직을 준비하지 않는다. 어쩌면 ‘그날’이 오지 않기를 바라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퇴직은 예상보다 빨리, 그리고 생각보다 갑작스럽게 온다. 구조조정, 조직개편, 혹은 건강 문제로 그날이 앞당겨질 수도 있다. 모든 것은 내 뜻대로 되지 않는다.


인생의 후반전을 준비하는 가장 현실적인 방법은 ‘미리 생각하는 것’이다. 어떤 삶을 원하는가? 어느 곳에 살 것인가? 무슨 일을 하며 살 것인가? 무엇이 나를 살아 있게 만드는가? 이런 질문을 퇴직 1년 전에 던진다면 미안하지만 당신은 이미 늦었다. 적어도 50대 초반, 빠르면 40대 중반부터 이 질문을 곱씹고 답을 찾아야 한다.


은퇴 후 삶의 만족도는 ‘은퇴 직전의 직급’이 아니라 ‘은퇴 이전의 준비’에 비례한다. 연금 설계, 주거 계획, 관계 망 정비, 건강 관리 등은 시간과 관심을 들인 만큼 안정감을 준다. 현실은 은퇴 준비를 한 사람과 하지 않은 사람의 삶의 질이 극명하게 갈린다는 사실이다.




당신의 출구 전략은 무엇인가


출세에는 전략이 필요하다. 출구에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대부분은 출세 전략만 있고, 출구 전략은 없다. 부장이 되고, 임원이 되는 방법은 셀 수 없이 준비했지만, 그 다음을 고민한 적은 드물다.


출구 전략은 단순히 퇴사 이후 무언가를 하는 것이 아니다. ‘어떻게 떠날 것인가’, ‘떠난 뒤에 무엇으로 살아갈 것인가’를 포함한 인생 제 2막의 설계도다. 그 전략에는 다음 네 가지가 포함되어야 한다.


첫째, 정체성의 재정의다. 이제부터는 직함이 아닌 이름으로 불릴 준비가 되어 있는가? 둘째, 일의 지속이다. 나를 필요로 하는 일을 찾아낼 수 있는가? 셋째, 재정의 독립이다. 퇴직 후 최소 20년 이상을 감당할 재정적 기반이 있는가? 넷째, 관계의 정비다. 직장 기반의 인간관계가 사라졌을 때, 나를 지탱해 줄 네트워크가 존재하는가?


워런 버핏은 말했다. “퇴직은 은퇴가 아니라 자유다. 진짜 자유는 준비된 사람에게만 허락된다.” 출구 전략은 그 자유를 확보하는 길이다.




직장이 아닌 나에게 투자하라


직장은 삶의 전부가 될 수 없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그 사실을 자주 망각한다. 직장은 월급을 주고 명함을 준다. 하지만 그 외의 모든 삶은 스스로 책임져야 한다. 출세만 바라본 이들은 퇴직 후 아무것도 남지 않은 자신을 바라보게 된다. 이들이 퇴직 후에는 내 이름을 밝힐 곳도 없고, 연락할 사람도 없고, 갈 곳도 없다. 모두가 바쁘고 나만 한가하다.


그래서 50대에는 반드시 ‘나에게 투자하는 삶’으로 전환해야 한다. 업무 외 시간을 활용해 배우고, 쓰고, 정리하고, 연결해야 한다. 취미를 넘어선 기술, 기술을 넘어선 소득, 소득을 넘어선 의미. 그것을 찾아야 한다. 유튜브를 시작하는 60대, 글을 쓰는 50대, 상담사가 된 55세 전직 임원들처럼.


직장이 사라져도 ‘나’는 남는다. 그 ‘나’를 위해 지금 준비하지 않으면 안 된다. 지금 자신에게 쓰는 시간은 가장 확실한 미래 자산이 되어 줄 것이다.




‘존재’로 남을 것인가, ‘직위’로 사라질 것인가


퇴직 후 어떤 이는 더욱 바쁘고 활기찬 삶을 산다. 반면 어떤 이는 급속히 무기력해진다. 그 차이는 무엇일까? 그것은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질문에 직위가 아닌 존재로 답할 수 있었는지 여부에 달려 있다.


직위로 존재를 설명한 사람은 직위가 사라지는 순간 정체성을 잃는다. 그러나 존재로 살아온 사람은 직위가 없어져도 빛을 잃지 않는다. 김연아는 은퇴 후에도 ‘전설’로 남았고, 유홍준은 교수직을 내려놓은 후에도 ‘문화 해설가’로 더 큰 사랑을 받았다. 이들은 직함이 아니라 이름으로 승부한 사람들이다.


존재로 남는다는 것은, ‘무엇을 했는가’보다 ‘어떤 사람인가’로 기억되는 것이다. 50대는 그 존재를 단단히 다질 수 있는 마지막 기회다. 출세보다 중요한 것은, 어떤 퇴장으로 기억될지를 결정하는 일이다.



출세에는 끝이 있다. 그러나 출구는 시작이다. 누구나 은퇴한다. 그러나 아무나 준비하지는 않는다. 50대는 그 출구를 고민할 수 있는 마지막 골든타임이다. 고지로 올라가는 것보다 중요한 건, 어떻게 내려올지를 생각하는 것이다. 내려오는 길이 곧 다음 삶의 시작이기 때문이다.


“인생의 후반부는 준비된 자의 것”이라는 말은 진실이다. 50대, 출세보다 출구를 고민하라. 당신의 다음 삶이 지금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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