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와 대화하는 일이 나는 참 어렵다. 매일 수많은 말을 주고받았지만, 정작 대화를 잘한 기억은 많지 않다. 들으려 노력하기보다는 말을 잘하려고 애썼고, 머릿속에서는 늘 반박할 논리를 짜느라 바빴다. 상대방의 말을 들으면서도 듣지 않았고, 그 말에 마음을 두기보다는 내 차례를 기다리며 속으로 대답을 준비했다. 그럴듯한 말, 정리된 문장, 논리적인 근거를 떠올리느라 귀는 열려 있어도 마음은 닫혀 있었다.
대화는 그렇게 자주 어긋났다. 상대는 분명히 말을 하고 있었지만, 그 말은 내 안에 머무르지 못했다. 스쳐 지나가는 말들은 공감도 이해도 남기지 않았다. 서로 얼굴을 마주 보고 있어도, 중심은 달랐다. 우리는 같은 장소에 있었지만, 서로 다른 시간을 지나고 있었다.
특히 가족과의 대화에서 그 어긋남은 더 두드러졌다. 딸이 하루 동안 있었던 일을 들려줄 때면 나는 어느새 다른 생각에 빠져 있었다. 이야기의 맥락보다 다음에 할 말을 더 중요하게 여겼고, 가끔은 말줄임표가 끝나기도 전에 조언부터 꺼냈다. 아들이 즐겨하는 게임 이야기를 들을 때는 더 심했다. 나와는 전혀 다른 세계의 언어였고, 흥미 없는 대화는 쉽게 흘려들었다. 들은 것 같지만 남는 건 없었다. 이야기를 들어주는 시간이 아니라, 내가 견디는 시간처럼 느껴졌다.
친구와의 대화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상대가 꺼낸 고민보다 내가 해줄 해결책이 더 앞섰고, 때로는 경청보다 충고가 먼저였다. 말을 듣는 대신 판단했고, 공감하는 대신 조언하려 했다. 진심을 다해 들어야 할 순간에, 나는 이미 머릿속에서 결론을 내리고 있었다.
그러다 어느 날 문득 깨달았다. 내가 그토록 말하고 싶어 했던 것들은, 사실 들었어야 했던 이야기였다는 것을. 대화는 나를 드러내는 일이 아니라, 먼저 상대를 받아들이는 일이라는 것을. 듣는다는 건 단순히 귀로 소리를 받아들이는 게 아니다. 그 사람의 말에 나의 시간을 내어주고, 마음속 공간을 열어주는 일이다. 그 이야기 안에 내가 들어가고, 내 하루 속에 그 사람이 들어올 수 있도록 자리를 마련하는 일이다.
그래서 요즘 나는 연습하고 있다. 대화할 때 마음을 잠시 비우는 연습, 판단하지 않고 듣는 연습, 끝까지 귀 기울이는 연습을. 말로 채우려 하지 않고, 그 사람의 이야기가 끝날 때까지 기다리는 연습을.
물론 쉽지는 않다. 여전히 말이 먼저 떠오르고, 조언하고 싶은 마음이 고개를 든다. 하지만 알게 되었다. 진짜 대화는 말로 시작되지 않는다는 것을. 입이 아닌 귀에서, 주장보다 공감에서 자라난다는 것을.
듣는다는 건 마음을 내어주는 일이다. 그 사람이 나에게 머물 수 있게, 그의 말이 내 안에 쉴 수 있도록 자리를 내어주는 일이다. 그 태도가 쌓이고 쌓여, 언젠가 서로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관계로 자란다.
오늘도 나는 다짐한다. 누군가의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주는 사람이 되겠다고. 내 말보다 그의 말에 먼저 귀를 기울이겠다고. 입보다 귀가 먼저 열리는 순간, 어긋났던 마음들이 다시 천천히 맞닿기 시작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