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글공장

불효자가 부모가 되었다

by 오분레터

어린이날이 지나고, 어버이날이 다가왔다. 해마다 돌아오는 날이지만, 해가 갈수록 그 의미는 점점 깊어졌다.

어릴 적, 학교에서 색종이로 카네이션을 만들어 어머니 가슴에 달아드렸던 기억이 아직도 선명하다.


잘 접히지 않는 종이를 조심스레 다듬고, 풀을 바르던 작은 손. 서툴지만 진심은 또렷하게 담겨 있었고, 그날의 공기와 어머니의 웃음까지 아직 마음속 어딘가에 남아 있다. 수많은 어버이날이 있었지만, 유독 그날만이 기억나는 건 어쩌면 그때가 가장 솔직했던 사랑의 순간이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성인이 된 후로는 부모님께 선물도, 용돈도 드리지 못했다. 너무 이른 나이에 두 분 모두 세상을 떠나셨기 때문이다. 해마다 5월이 되면 사람들은 말한다. “이번 어버이날엔 뭘 드리지?”, “용돈은 얼마나 드려야 할까?”


그 고민조차 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이 처음엔 조금 편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생각은 이내 마음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쓸쓸함에 밀려났다. 드리고 싶어도 드릴 수 없는 마음이 남긴 공백은, 시간이 지나도 쉽게 메워지지 않았다.


아마도 부모님은 자식이 건네는 작은 봉투 하나, 쑥스러운 한 마디를 단 한 번도 받아보지 못하고 떠나셨다. 내가 느끼는 아쉬움보다, 그들이 안고 떠났을 마음이 훨씬 더 클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매년 이 날을 조용히 보낸다. 유난히 말수가 줄고, 옛 앨범을 꺼내보게 되는 날. 살아계셨다면 어떤 하루를 보내드렸을지 상상하며, 내 안의 불효를 되새긴다.


그런 나에게 올해도 두 아이가 어버이날 선물을 건넸다. 첫째 아들은 손에 쥔 카네이션을 등 뒤로 숨기더니 “짠!” 하고 내밀었다. 예상한 장면이었지만, 그 안에 담긴 마음은 전혀 예상 밖이었다. 삐뚤빼뚤한 글씨로 쓴 손 편지는 어딘가 부족하고 서툴렀지만, ‘뭐라고 써야 할까’를 고민했을 아이의 표정이 떠올라 한 글자, 한 문장이 모두 사랑스러웠다.


둘째 딸은 미술학원에서 만든 카네이션과 효도 쿠폰을 내밀었다. 매년 받는 쿠폰이지만, 나는 제대로 써본 적이 없다. 바쁘다는 이유, 민망하다는 핑계로 서랍에 넣어두기 일쑤였다. 하지만 올해는 다짐했다. 하루에 한 장씩 꺼내 써보자고. '아빠를 위해 해주는 거야'라는 마음이 담겨 있으니까.


딸에게는 손 편지가 없었다. “딸, 오빠는 이쁜 손편지도 써줬는데, 넌 안 썼어?” 하고 묻자, 딸은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응, 없어. 근데 엄마 거는 있어.” 그렇다. 딸은 엄마를 더 좋아한다. 나는 그저 물주의 역할을 충실히 할 뿐이다. 무인매장처럼 조용히 필요한 걸 내어주는 존재, 편의점 같은 아빠.


조금은 서운했지만, 그 감정은 오래가지 않았다. 아이들이 오늘을 위해 마음을 써준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아이들의 눈빛과 손끝에 담긴 진심이 나를 녹였다. 어린 날의 내가 그러했듯, 지금은 아이들의 기억 속에 나의 모습이 천천히 스며들고 있을 것이다.


오늘, 나는 아이들에게 부모가 되었다. 그리고 다시 한번, 나를 길러주신 분들을 깊이 그리워하게 되었다.

누군가의 사랑이 그리운 날, 또 다른 누군가의 사랑이 되어간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삶의 낙이 없다던 그 사람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