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르는 물 위로 작은 돌멩이를 던지면 파문이 길게 퍼지듯, 한 번의 말실수는 내 마음 깊숙한 곳에 오랫동안 울림을 남긴다.
“그때 그 말을 꺼내지 말았어야 했는데, 왜 그랬을까” 하고 자책의 파도가 며칠 밤 나를 휘감는다. 이미 뱉어버린 말의 불빛은 찰나에 스러져 버리지만, 그 실수에 남은 후회의 그림자는 긴 그림자를 드리운다.
매번 그럴 때마다 나는 다짐해본다. 다음에는 좀 더 조심해야지, 천천히 내뱉어야지, 아니면 차라리 입을 굳게 다물고 기다리자고. 그래야 혹시라도 다시 찾아온 말실수를 피할 수 있을 것 같기에.
하지만 언제나 그래왔던 것처럼, 다짐이 채 가시기도 전에 나는 또 같은 실수를 되풀이한다. 나의 입술은 생각보다 한 박자 빠르게 놀아난다.
'타짜' 형님이 말씀하셨듯이 손이 눈보다 빠르다면, 차라리 손이 입보다 빨라서 이미 튀어나온 말들을 재빨리 붙잡아 다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래야 어쩌면 불쑥 튀어나온 말들이 공기중에 훝뿌려지지 않고 손끝에 걸려 부드럽게 잠길 테니까.
말은 때와 장소가 중요하다. 때가 아닌데 말을 서두르는 것은 성급함이 되고, 마땅히 해야 할 말을 삼키는 것은 숨김이 되며, 상대의 안색을 살피지 않고 내뱉는 말은 눈뜬 장님과 같다. 그런 사람이 되지 않으려 노력한다.
사실 입 밖으로 내뱉었다고 다 말이 되는 건 아니었다. 말에도 나름의 숨 고르기와 리듬이 있다. 마치 춤을 추듯 한 걸음씩 순서를 밟아 나가야 했고, 순간의 분위기에 맞춰 조화를 이뤄야만 진짜 말이 가슴에 여운을 남긴다.
무엇보다 상대의 기색을 살피는 눈치가 없다면, 진심은 메아리처럼 흩어져 버리고 만다. 그 모든 것을 챙겨가며 한마디 한마디를 내놓는 일은 촛불 속에서 바늘구멍에 실을 꿰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일이다.
도대체 말을 잘하고 싶다는 건 무슨 의미일까. 나는 가끔 그 의도를 들여다본다. 어쩌면 그 말 끝에 상대에게 ‘잘 보이고 싶다’는 작은 욕망이 숨어 있을지 모른다.
이해받고 싶고 무시받고 싶지 않다는 간절함도 그 안에 녹아 있을 수 있다. 단호하게 “나는 그런 마음조차 없었다”고 되뇌어 보지만, 솔직히 그 속마음마저 부정할 수는 없다.
그런 마음으로 시작된 말들은 실처럼 서로 엉키며 비참하게 시들어버린다. 결국 그 끝에는 어설프고 초라한 잔해만이 남는다.
말을 잘한다는 것은 결코 기술이 아니다. 진심이 담겨 있을 때 비로소 말은 힘을 얻는다. 내 말 한 마디가 상대의 가슴에 닿아 상처가 아니라 온기 어린 손길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녹아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내 입에서 나오는 말은 그저 허공만 맴돈다.
나는 아직도 말을 잘 못한다. 어설프고 서툴며, 공감을 전하는 힘도 부족하다. 그래도 요즘은 딱 한 가지를 꼭 기억하려 애쓴다.
언제나 말보다 먼저 마음을 전해야 한다는 것, 필요할 땐 입술을 꼭 다물고 마음의 소리에 귀 기울여야 한다는 것. 그렇게라도 작은 다짐들을 모으며, 언젠가는 좀 더 따스한 말을 건넬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