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길, 어둠이 슬며시 도시를 덮기 시작할 무렵이었다. 탁구채 가방을 어깨에 메고 탁구장으로 향하던 그때, 전화벨이 울렸다. 딸이었다.
“아빠, 오늘 몇 시에 와?”
특별할 것 없는 질문인데, 목소리 끝에 조심스러운 기대가 묻어 있었다. 딸은 종종 이런 식으로 말한다.
“응, 아빠 탁구 레슨 끝나면 8시 반쯤 도착할 거야.”
잠시의 정적 뒤에, 아이의 목소리가 다시 이어졌다.
“아빠, 오늘은 좀 일찍 오면 안 돼?”
“무슨 일 있어?”
“자전거 타고 싶은데, 바람 넣어야 해서…”
그 말을 듣는 순간, 아차싶었다. 최근 들어 자전거를 배우고 싶다고 조심스레 말하던 아이었다. 마침 아내가 지인에게서 자전거를 얻어왔다는 소식을 들었다. 아이는 그저 신이 나 있었다. 세상을 전부 받은 것 같은 목소리로.
나는 발길을 돌려 집으로 향했다. 아이의 자전거에 바람을 넣고, 짧은 인사를 건넨 뒤 다시 탁구장으로 떠났다. 그리고 다시 집으로 돌아왔을 땐, 해가 완전히 저물어 있었다. 아파트 공원에서 두 아이가 자전거를 번갈아 타고 있었다. 딸은 놀랍게도, 이미 제법 능숙한 자세로 페달을 밟고 있었다.
“딸~언제 이렇게 배웠어?"
뒤에서 잡아주는 아빠의 손, 넘어질까봐 조심스레 따라가는 장면. 나는 그런 순간을 연출하고 싶었지만, 딸은 이미 혼자 힘으로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반면, 아들은… 조금 달랐다. 아들은 초등학교 5학년이다. 이미 또래 아이들은 거리에서 픽시 자전거를 자유자재로 몰며 바람을 가른다. 자전거를 좋아하는 아빠로서, 아들과 함께 타는 상상을 수없이 해봤지만 현실은 생각보다 더디기만 했다.
5분쯤 지났을까. 아들은 이내 짜증이 잔뜩 밴 얼굴로 핸들을 놓아버렸다. 오른발을 페달에 올리고, 왼발을 올리기도 전에 자꾸만 넘어졌다.
“아들, 오른발로 먼저 페달을 밟아. 그 힘으로 앞으로 나아가면서 왼발을 올려보는 거야.”
나는 조심스레 조언을 건넸지만, 균형은 늘 그보다 먼저 무너졌다. 운동신경이 조금 부족해서일까. 아니, 진짜 문제는 그게 아니었다. 너무 빨리 포기해버리는 마음, 그것이었다.
“아들, 아무도 처음부터 잘하진 않아. 네가 좋아하는 게임도 처음부터 잘하지 않았잖아. 그래도 연습하니까 점점 잘하게 됐고. 자전거도 마찬가지야. 연습하면 돼.”
나는 가능한 따뜻하게 말하려 애썼다. 포기하는 습관이 아이의 삶을 지배하지 않길, 작은 실패에 쉽게 주저앉는 사람이 되지 않길 바랐다.
사람은 작은 성취를 통해 자신을 믿게 된다. 작지만 분명한 그 성공의 기억이, 다음 도전을 가능케 한다. 반대로 처음부터 너무 큰 꿈에 도전하면, 실패가 너무 커서 쉽게 좌절해버리기도 한다. 아들에게 필요한 건 자전거를 타는 기술 그 자체가 아니라, 넘어져도 괜찮다는 감각, 그리고 조금씩 나아지는 자신을 느낄 수 있는 기회였다.
바람이 스치는 저녁 공기 속에서 나는 바랐다. 오늘 이 자전거가 아들에게 작은 성취의 시작이 되어주기를. 오늘의 넘어진 기억이 내일의 도전을 낳기를. 그리고 언젠가, 스스로 달리는 자전거 위에서 아이가 세상을 더 넓게 바라보게 되기를. 그렇게 조금씩, 더 큰 사람으로 자라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