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공간을 쓰다" 첫 번째 에세이
모든 것은 '질투심'에서 시작된 듯합니다. 인간에게 가장 가까이 존재하는 '창의적인 공간'은 '집'House이었고, 휴식과 평온함이 있는 나만의 '둥지'는 남달라야 했으며, 동시에 창의적이었으면 했습니다. 저는 그런 공간을 가져본 적이 없습니다. 그렇군요. '결핍'과 '소유욕'이 호기심의 근원이라면 조금 부끄럽기는 하지만 그래도 괜찮습니다. 그 질투심이 이 글을 쓰게 했으니까요.
'오늘 공간을 쓰다'를 처음 생각하면서 갖게 된 '내 안의 질문들'입니다.
하나. 내가 살고 싶은 공간은 어떤 모습일까?
둘. 내가 함께 일하고 싶은 공간은 어떤 사용성을 가지고 있어야 할까?
셋. 내가 다른 사람들과 함께 하고 싶은 공간은 어떤 가치를 담아야 할까?
넷. 내 가족의 안식처는 어떤 면이 고려되어야 할까?
다섯. 나의 공간과 타인의 공간은 어떻게 연결되어야 할까?
여섯. 나의 공간은 어떻게 타인으로부터 보호받아야 할까?
일곱. 나의 공간은 어떻게 포용성과 확장성을 동시에 가질 수 있을까?
이 질문 속에는 '나'와 '공간'이 어떻게 이어져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이 담겨 있다고 생각합니다.
몇 해 전, 어느 휴일 딱히 할 일 없던 저는 그리드 grid가 그어져 있는 노트를 한 권 사서 평면도를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같은 자리에 꼼짝 않고 앉아 평면도를 그리기 위해 자와 연필을 이리저리 놀리며 하루 종일 몰두했지요. 제가 살고 싶었던 집의 평면도는 법칙도 체계도 없는 '선천적 졸작(拙作very poor-quality work)'이었지만, 제가 꿈꿔 왔던 공간의 프로토타입(시험모델)을 완성하기 위해 종이 위를 채우고 지우기를 반복했습니다. 그때 그렸던 노트는 제 불찰로 지금은 찾을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문득 그 평면도를 찾고 싶다는 마음에 온 집안을 구석구석 찾아보았지만 허사였습니다. 오기(傲氣obstinacy)가 생겼습니다.
다시 태어난다면 건축가로 살고 싶습니다. 누구에게나 필요하고, 각자의 이야기가 담기고, 무한의 다른 공간을 그릴 수 있는 건축가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우리 삶 속에서 가장 안전하고 평온한 곳, 집에 대한 생각을 하기 시작한 것은 아내의 책꽂이에 무심코 꽂혀 있던 일본 건축가 '안도 다다오'를 만나고 나서부터 인 듯합니다. '사용성'과 '효율성', '가성비'가 강조되는 건축물들 사이에서 그가 표현하는 '공간'은 잘 빚어진 '창'과 '틈'을 통해 번지는 '빛의 부드러움'을 느끼게 해 주었고, 마치 종교적 경외감을 일상으로 끌어 안 듯 신선하고 충격적이었습니다('충격적'이라는 표현이 과장된 것이 아닙니다). 일본의 현대 건축을 대표하는 건축가 가운데 한 명인 '안도 다다오'는 대학 교육을 받지 못한 프로 권투선수 출신의 주류에 못 끼는 별종 건축가였지만, 이런 배경 덕에 더 매력적으로 비치기도 한답니다.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 이 노랫말 때문인지, '그림 같은 집은 푸른 초원 위에 있어야 멋져 보인다'는 고정관념이 있는 것 같습니다. 요즘 세상엔 '저 푸른 초원 위'도 흔치 않을뿐더러(비싸기도), 설령 그 위에 집을 지었다 해도, 외롭고 무서워서 단지 complex로 구성해 함께 모여 살고 싶어 합니다. 서로 연결되어 외롭지 않으면서 사생활이 충분히 보호될 수 있는 공간에 대한 욕구는 4차 산업혁명 시대 고령화, 1인 가구화 등을 배경으로 앞으로 더 커질 갈 겁니다.
앞으로 이어질 '공간'에 대한 글쓰기는 저의 건축에 대한 '짧은 지식과 호기심 가득한 취향'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게 될 겁니다. 건축의 트렌드나 전문적인 용어가 난무하는 공학적인 글쓰기는 기대하지 말아 주세요. 그저 젊은 시절 내 집을 지어봐야겠다고 생각했던 때부터의 어렴풋한 기억을 더듬어 그 '짧은 지식'은 조금 더 길게, '호기심 가득한 취향'은 또 다른 호기심으로 이어지길 기대할 뿐입니다.
지금 생각으로는 제가 이어갈 공간이 글쓰기의 주요 씨앗들은 그다지 많지는 않지만 구체적입니다. 평소 제가 가지고 있는 호기심을 키워 '인생 후반기 비전'으로 삼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아직은 아는 것이 많지 않아 하나하나 배워나가야 하는 상황이지만, 그 배움의 과정 중에 이 글쓰기가 큰 도움이 될 거라고 확신합니다.
살짝 제 호기심을 열어 보여드릴게요.
먼저, '디지털노마드Digital Nomad' 시대 필요한 누구나 쉽게 모여 일할 수 있는 '협업공간 Co-working Space'입니다. 이미 서울이나 대도시에는 'WeWork' 등 글로벌 협업공간들이 속속 들어서고 있습니다. 5년 정도만 지나도 PC방만큼이나 많은 협업공간들이 밀레니얼 세대를 불러 모으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이겠죠. 그냥 인터넷 잘 터지고(물론 중요한 항목입니다), 식음료 적당히 제공되며, 편안한 의자와 테이블만 잘 갖춰졌다고 좋은 협업공간이 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공간 안에서 건강한 커뮤니티가 형성되고, 배움과 동기부여가 가능한 많은 세미나들, 현지인과 외국인의 적절한 구성(이건 의도적으로 비율을 조절하기 힘들기에 공간문화 형성이 중요합니다), 안전한 작업환경, 가능하다면 VC(벤처캐피털:벤처투자자)들과 연결될 수 있는 '미트업 Meet Up'도 잘 준비해야 할 겁니다. 정말 꼼꼼하게 준비하고 지속적으로 '빌드업 Build Up' 시키는 것이 중요하겠다는 생각입니다.
두 번째는 '함께 운동하는 공간'입니다. 현재를 희생하고 미래의 스펙으로써의 '몸만들기 운동'이 아니라, 현재를 건강하게 즐길 수 있도록 하는 '함께 즐거운 몸 쓰기'입니다. 제가 매주 토요일 아침 '조기 운동회'라는 이름으로 운동 모임을 하고 있지만, 이는 소속된 사람들이 즐기는 폐쇄적인 동호회 형태가 아니라, SNS에서 누구라도 관심이 있다면 참여의사를 밝히고 함께 할 수 있는 '열린 운동 캠페인' 같은 것이라고 보면 쉬울 것 같습니다. 사실 우리 삶의 영역, 생활의 영역은 엄밀히 분리되어 있지 않습니다. 식생활, 집에서의 시간, 회사 업무, 건강 챙김, 여가생활 즐기기 등 이 모두가 서로 연결되어 있고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을 모두가 알고 있습니다. '건강 챙김'을 단순히 '자기관리' 차원에서 바라보는 것은 지난 세대의 이야기입니다. 이제는 하루 24시간 속 우리 삶에서 동등한 가치를 가지는 '돌아오지 않는 현재의 명확한 가치'로 여겨야 하지 않을까요?
세 번째 호기심은 '1인 가구'입니다. 돌이켜 보면 저도 대학교에 입학하면서 '1인 가구' 대열에 동참했네요. 이후로 결혼하기 전까지 쭈욱 '1인 가구'로 살아왔습니다. 요즘은 '1인 가구'가 급격하게 늘고 있는 추세라고 합니다. 하지만, 우리 주거환경은 '3명 이상의 가족'을 중심으로 대부분 형성되어 있습니다. '1인 가구'가 들어가 살만한 곳은 '오피스텔'이나 '원룸', '고시원' 등으로 정말 제한적이지 않나요? 한 번은 방송국으로 현장교육을 나온 대학생들에게 어떻게 살고 있냐고 물었던 적이 있습니다. 제가 대학생이었던 시절과 이야기는 크게 다르지 않음에 무척 놀랐던 기억이 있습니다. 여전히 '1인 가구'의 주거환경은 우리 사회에서 '배려'받지 못하고 있고, 이를 해결하려는 '사회적 고민'도 턱없이 부족한 상황입니다.
앞으로 공간에 대한 저의 호기심이 어느 방향으로, 또 얼마나 전진할지는 모를 일입니다. 다만 한 걸음 더 나아가거나, 방향을 돌린다면 그때도 이런 글쓰기를 통해 독자 여러분과 열린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앞으로 이어질 '오늘 공간을 쓰다'는 건축설계를 업으로 하는 '전문적? 인 지인' 고영목 건축사((주)라온건축사사무소 대표/ 충북대학교 건축학과 겸임교수)의 자문을 받거나, 공동 저작 형태로 진행될 예정입니다. 저는 살고 싶은 집에 대한 일상의 생각과 호기심을 정리해 나갈 것이고, '고영목 건축사'는 풍부한 현장의 경험과 안목, 대학 강단에서 보여준 것처럼 친근하고 쉽게 '공간'에 대한 생각을 구체화시켜줄 거라고 기대합니다.
사설이 길었군요.
자! 이제 '오늘 공간을 쓰다'의 첫 발을 내딛어 볼까요?
다음 에세이에서는 비 건축학도인 제게 '공간 스승'이 되어 주었던 '책'들에 대한 이야기가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