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을 마시지 않으면 대화가 안 되나요

일단 쓰기 프로젝트 Ep.2

by 오생



결혼 8년 차, 아직 아이는 없다. 긴 시간 상의한 끝에 아마도 딩크부부의 길을 걸을 것 같다. 그러니 우리는 천년만년 영원히 뜨거운 사랑은 아니어도, 따뜻한 온도로 서로를 품으며 청장년, 중년, 노년의 길을 둘이 잘 걸어가야 한다.



이런 우리 둘의 사이에 찬 물을 끼얹는 일이라면 그것은 단연 음주문제이다. 남편이 술 자체를 즐기는 사람은 아니다. 게다가 주량도 소주 1병~1병 반 정도로 그리 세지도 않다. 다만, 젊다면 젊은 나이에 회사에서 꽤 중요한 직책을 맡게 되었으며, 그로 인해 끊이지 않는 거래처와의 식사와 술자리가 이어질 뿐이다.



안타깝지만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베트남에 진출한 한국기업의 회식이나 술자리 문화는 이상하게도 마치 우리나라 90~00년대처럼 예스럽다. 아직 주 6일 근무인 회사가 많아서일까. 모든 기업이, 모든 회사가 그렇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대체로 남성 주재원이 많은 환경이다 보니 가족이 모두 이주하지 않고, 단기/장기 출장으로 혼자만 타지생활을 하는 경우에는 회사 사람들과 또는 업체 사람들과 만나서 저녁식사, 술 한잔이 낙이 되는 경우가 있다.



사업을 해보지 않아서, 남자가 아니라서, 가장이 아니라서, 여러 이유로 비난받을지도 모르는 의견이지만 업무 얘기, 회사와 회사 간의 거래, 실무자들의 대화에 꼭 술이 필요한가? 술 한두 잔이 분위기를 푸는데도 도움이 되고 조금 더 편안한 상태가 되면 이런저런 정을 쌓으며 거래에도 도움이 되고 한다는 건 알겠다. 그런데 꼭, 고주망태가 되도록, 코가 삐뚤어지도록 마셔야 하는 건가?



매번 그런 것은 아니지만 종종 잔뜩 취해서 들어오는 남편을 보면 속상하기도 하고 어이가 없다. 도대체 왜 본인 주량을 넘기면서 술을 마셔야 하는지, 자제라는 건 모르는 건지, 술을 마셨으면 물이라도 좀 마시던가, 안주라도 먹던가, 왜 주는 대로 받아마시고 취해서 오는 건지 당최 이해가 되질 않는다. 남편의 절제력, 판단력 부족을 탓해야 하는 것을 알면서도 술을 꼭 곁들여야 하는 저녁식사 자리가 생기는 것 자체가 달갑지 않다. 개개인의 건강상태라는 것은 모두 제각기이고 같은 술을 마셔도 어제 다르고 오늘 다른 법인데, 왜 남편은 조절이라는 걸 할 줄 모르는 걸까.


어제도 저녁식사에 간다고 했던 남편은 두어 시간 만에 만취해서 그랩(공유택시어플)도 못 부를 정도라 여기저기 전화를 했다고 했다. 당연히 나에게도 연락을 했었는데, 내가 씻으러 간다고 연락을 남겨두고 얼마 지나지 않은 때라 부재중 전화가 여럿 들어와 있는 걸 샤워하고 나와서야 발견했다. 그 사이 통화한 어떤 분이 그랩을 불러줬다고 한다. 세상에, 평소에 자주 쓰는 어플이고 즐겨찾기 주소가 되어 있을 집으로 가는 차도 못 부를 정도면 도대체 얼마나 마신건지, 아침에 일어나 나름의 해장을 한 남편에게 얼마나 마셨는지 물어봤더니 모르겠단다. 급하게 마셔서 많이 취한 것 같다고 한다.



심지어 어젯밤 탄 그랩은 차도 아니고 오토바이였고, 1층에 도착해서 돈을 내야 하는데 얼마를 내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나한테 전화가 왔다. 내가 불러준 것도 아닌데 얼마인지 알 턱이 있나. 어찌어찌 요금을 낸 건지 집에 들어와서 씻고 자긴 했지만 많이 충격적이었다. 오늘 아침 제발 주는 대로 받아마시지 말고 조절 좀 하라고 잔소리를 잔뜩 하고 나왔는데도 답답한 마음이 한가득이다.



술 없이 저녁식사하고 또는 점심회식으로 바뀌는 날이 베트남에 오긴 올까. 문화가 바뀌길 바라는 것보다 남편에게 정신 차리라고 말하는 게 더 빠르겠지! 아무쪼록.. 일선에서 열심히 일하시는 우리네 남편들 중에 술 안 좋아하시고 잘 못 드시는 분들을 위해 이런 부어라 마셔라 식사 문화는 조금 지양되면 좋겠다. 술만 마셨다 하면 '왜 내 마음을 몰라주니' 메들리를 부르는 남편 오래 같이 등 따습게 살고 싶은 마음에 브런치를 일기장 삼아 남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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