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야 한다, 살아남아야 한다
재택근무 1개월 차: 2021년 2월, 본격 재택근무 라이프를 시작하다.
간절히 원했던 이직에 성공했다. 새로 다니게 된 회사는 코로나 확산 방지를 위해 재택근무가 매우 활성화된 곳이라 일반적으로 75%의 직원은 재택을 권고한다. 정부의 사회적 거리두기 지침이 상향될 경우에는 90% 재택근무로 변경된다.
내가 속한 팀은 작은 팀이기에 직접 만나 브레인스토밍을 하거나 팀워크를 위한 일련의 액티비티가 크게 필요 없다. 어떻게 보면 업무 외적으로는 엮일 일이 없어 담백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삭막한 느낌이다. 이전 회사에서도 종종 재택을 했기에 큰 거부감 없이 그럭저럭 적응을 잘했다. 오전 근무시간이 되면 이메일과 메신저를 켜고 팀원들에게 인사하고, 점심시간이 되면 알아서 식사하고 다시 업무를 시작했다.
입사 후 3개월은 정신없이 흘러갔다. 입사하는 시점에 회사에 큰 프로젝트가 진행되고 있었고, 입사하자마자 (경력직이 으레 그렇듯) 업무에 투입되어 긴장 가득한 나날을 보냈다.
재택근무 4개월 차: 성인이 된 이후 '외로움'이란 단어를 가장 많이 사용했다.
이성보다 감성은 한 박자 느린 법이다. 회사 업무 스타일에 적응을 할수록 마음 한 구석의 빈 공간은 더욱 커졌다. 업무 패턴이 몸에 배고 나니 시간의 공백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아주 사소한 것들로 채워졌었던 작은 공백들이 너무 큰 존재로 다가왔다. 아침에 일어나 나갈 준비를 하는 시간, 지하철 역까지 걸어가는 시간, 회사에 도착해 커피를 한잔 사와 자리에 앉는 시간, 오후 4시쯤 정신이 몽롱해질 때쯤 동료와 함께 마카롱을 하나씩 사서 먹던 시간... 이 시간들을 오롯이 혼자 보내게 되었다.
고요한 방구석에서 일을 한참 하다가 문득문득 외롭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상과 단절된 것 같았고, 온라인으로만 맺어진 직장 동료와의 관계는 유리잔처럼 차갑고 얇게 느껴졌다. 한편으로는 왜 할머니 할아버지가 집에 식구들이 놀러 오면 그렇게 반가워하시고, 며칠 전부터 맞이할 준비를 하시는지 공감이 갔다. 하루 종일 해가 뜨고 지는 동안 하염없이 왜 TV 앞에서만 머무셨는지도 어렴풋이 이해가 되었다.
오랜만에 만난 전 직장 동료와의 식사가 너무 신났고, 그동안 별일도 없었으면서 소소한 것들부터 미주알고주알 떠들어댔다. 그 와중에 내가 했던 얘기가 있다. 재택근무를 하며 가장 크게 느낀 건, 노후 준비의 중요성이라는 것이다. 내가 말한 노후 준비는 돈이 아니었다. 노년의 삶에 접어들었을 때 시간을 잘 보내는 방법을 의미했다. 지금부터라도 나의 노년의 시간을 그려보고, 조금씩 조금씩 그 시간을 값지게 보낼 방법을 찾을 거라고 했다. 언어 공부가 되었든, 그림이 되었든 지금부터 준비하면 앞으로 20년 후에는 누구보다 노련한 장기 하나쯤은 가지게 되지 않을까.
재택근무 10개월 차: 짜증을 냈고, 결단했고, 활기를 찾았다
이전 직장에서 나는 소위 말하는 '관종'이었다. 사람들 앞에 서고, 이목을 사로잡아야 하는 그런 종류의 업무에 종사하고 있기도 하지만 나 역시도 관심받는 걸 매우 즐겨했다. 퇴사 날, 동료들로부터 도착한 메시지에도 밝고 당당한 모습이 보기 좋았다는 말을 가장 많이 들었다. 그렇다. 나는 남 앞에서고, 동료와의 상호작용에서 가장 큰 에너지를 얻었다. 내 아이디어의 원천은 동료들이었고, 안식처도 동료들이었다.
이런 나에게 재택근무는 참 많은 변화를 가져다주었다. 덜 움직일수록 움직이기 싫었고, 새로운 도전이 두려웠다. 사소한 것에도 결정을 내리기 어려웠고 작은 것에도 상처받았다. 거울을 보았을 때 내 얼굴이 생기 있어 보이기는 커녕 피로하고 짜증이 묻어나 보였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확 짜증이 몰려왔다.
"누가 뭐라 하지도 않는데 난 왜 이렇게 눈치를 보고 있지? 왜 이렇게 궁상맞게 작은 것에 돈을 아끼지?" 나를 제일 귀하게 여기고, 응원해야 할 사람은 바로 난데 지금은 왜 가장 무심한 사람이 된 걸까 생각에 머리가 띵했다. 그래서 그동안 미뤄왔던 것들을 하나씩 꺼내보았다. 나를 가장 즐겁게 만들었던 것, 하고 싶었던 것, 끊어내고 싶지만 결심을 미뤄왔던 것들을 하나씩 해결하기 시작했다.
첫째, 인스타그램을 삭제했다. 다른 사람의 인생을 들여다보고 싶을 땐 내 마음도 튼튼해야 한다. 타인의 삶을 그것 그대로 바라볼 수 있을 때 SNS은 나에게 즐거움을 가져다준다. 하지만 나는 그렇지 않았다. 지인들의 행복한 삶들이 그렇게 아름답게 보이지 않았다. 꾸며진 모습처럼 보였고(사실 그러면 어떠한가), 어울리지 않는 옷을 입고 사는 것처럼 비쳤다. 인스타그램을 삭제하니, 나를 괴롭혔던 작은 소음들이 사라졌다. 가장 만족스러운 결정이었다.
둘째, 다니던 영어학원을 중단했다. 영어 공부 습관을 들이고 스피킹 실력을 향상하기 위해 1년짜리 수강권을 등록했지만, 투자한 시간에 비해 실력이 향상되지 않았다. 교육 커리큘럼, 교재, 그리고 스피킹 연습 방법 등 나와 맞지 않는 점이 많았지만 다 내 노력의 부족이라 생각하며 꾸역꾸역 다니고 있던 터였다. 장기 등록이 대부분 그렇듯 금전적 손해가 있었지만, 과감하게 그만두고 1:1 영어 과외 선생님을 구했다. 결론은 훨씬 능률이 좋다.
셋째, 필라테스를 다시 시작했다. 4년 정도 쉬지 않고 해왔던 필라테스를 이직을 하며 그만뒀다. 회사 근처의 센터에 꽤 오랜 기간 다녔는데, 우리 동네에는 그만한 센터를 찾기 어려워 헬스장만 근근이 나가고 있었다. 많은 종류의 운동을 해본건 아니지만, 나에게 필라테스는 언제나 최고의 운동이었다. 재미있었고, 운동 효과도 극명하게 나타났다. 무엇보다 동작을 꽤 잘해서 선생님들과 소통이 잘 되었던 것 같다. 나의 즐거움을 찾는 게 우선이기에 나는 동네에 새로 오픈한 필라테스 센터에 가 한숨에 등록까지 마쳤다. 지난 10개월간의 공백 때문에 나의 필라테스 실력은 초보자의 실력으로 돌아갔지만, 조금씩 향상되는 내 모습을 관찰하는 것도 꽤 즐거울 것 같다.
2021년 마지막 달: 내 삶의 기록을 시작했다.
한 해를 돌아보며 무기력에 흘려보냈던 내 지난 시간에 아쉬움을 느꼈다. 하지만 동시에 그 시간들은 분명 나에게 배움과 변화를 가져다주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브런치를 시작함으로써, 2021년 미루었던 결심을 비로소 시작하게 되었다. 대단하지 않지만 조금씩 남겨 둔 내 자취가 미래에 어떤 가치를 발할지 누가 알 수 있을까. 무엇이든 하는 게 안 하는 것보다 낫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