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온 친구

30일 글쓰기 챌린지 Day 17 이별

by 꿈꾸는오월

누구나 살면서 이별을 마주한다.

내가 이별의 주체이든 대상이든, 그것은 누구에게나 온다.


변한 건 사랑이 아니라 사람이라는 연인관계에서도 유년시절부터의 오랜 우정이 무색해진 친구관계, 혹은 원수는 직장에서 만난다는 직장에서의 관계들에서도.

적어도 한 번의 이별은 때론 필수적으로 온다.

나에게도 그렇게 이별한, ‘지나온 인연’이 있다. 물론 누군가에게 나도 지나온 사람 중 한 명일테다.


지나고 보니 나에게 필요했던 이별

친구들, 선배들로부터 졸업, 서른 혹은 경조사를 앞두면 필연적으로 인간관계를 돌아보게 된다는 떠도는 예언(?)을 들었다. 그 예언을 나도 피해 가지 못한다는 것을 알게 됐을 땐, 신기하게도 대학 졸업을 앞뒀을 때였다.



20대 초반, 대학교에서 만난 친구가 있다. 어쩌면 내가 많이 부족하고 미숙할 때 만난 친구 관계. 불완전한 나였지만, 그런 나를 있는 그대로 이해해 주는 유일한 존재라고 그렇게 믿었다. 그때는 친구라 든든했고 또 같이 즐거웠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며 나는 조금씩 변하고 있었다. 학년이 바뀌면서, 대인관계가 넓어지기 시작했고, 단짝처럼 둘만 지냈던 그 친구 외에도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기 시작했다.


그 무렵 친구는 내게 '굳이' 말을 자주 썼다. '굳이' 무언가를 할 이유는 없다는.

처음 친구가 나의 생각들, 도전들을 반대하고 말릴 때, 나는 친구여서 주는 조언이라 생각하고 받아들이려 했다. 그때의 친구란 세계에서 엄청난 존재감을 가진 것이었으니까. 그리고 힘들게 무언가에 도전해서 실패하는 것보다 하지 않는 것이 상처 입지 않을 거란 그 말도 일리가 있어 보였다. 수십 번의 ‘굳이’를 듣는 와중에, 그 이전의 도전했던 것들에서 소기의 성과가 나오기 시작했다.


굳이 하지 말아야겠다에서 나는 굳이 해야 한다로 바뀌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점점 시간이 지나 진로가 달라지고 또 삶의 방향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우리는 우리 사이에 균열이 생긴다는 것을 알았지만, 그 균열은 점점 맞추기 힘든 시간 때문이라 생각하고 애써 넘겨왔다. 나는 이런저런 일들로 바빠지기 시작했다. 바쁘단 핑계로 친구를 만나기도 어려워졌다.


어느 순간부터 그 친구는 내 새로운 도전과 만나는 새로운 사람들을 좋지 않게 생각했다. 지금 돌이켜보면 예전처럼 단짝으로 지내기 어려워진 일상과 시간들에 서운했던 것 같다.


우리는 더 이상 같은 것에 웃지 않았고, 같은 방식으로 분노하지 않았다. 세상을 보는 시선이 달라졌고, 무엇보다 나를 대하는 방식이 달라졌다.

하지만 친구는 그대로였다. 익숙하고 편안한, 예전의 내가 머물던 자리에서 여전히 예전 그대로의 나를 찾는 친구. 그 무렵 우리는 자주 부딪히기 시작했다. 친구는 결국 내게 내가 꿈꾸는 것들은 안될 거라고, 실패할 거라 말했고, 그에 상처받은 나는 그 친구를 모른 척 멀리 하려 했다. 친구는 예전처럼 살라고 했고, 나는 이제 그게 나답지 않다고 느꼈다.


그 친구는 나를 변했다 했고 나는 그 친구가 변하지 않는다 했다.

마치 오래된 연인을 잃은 것처럼, 자연스러운 시간으로 인한 헤어짐이 아닌 의도와 의지로 잇기 힘든 친구관계로 참 괴로웠다. 서로의 세계관이 달라졌음을 인지했을 때, 우리는 그냥 그렇게 시간이 인연의 균열을 파고들게 놔뒀고, 졸업 후 다른 시공간을 살았다. 말 한마디로 끝낸 것도 아니고, 큰 싸움도 없었지만, 더 이상 서로가 다른 차원으로 간 것이다. 그리고 서로 다른 시공간이 그 인연을 결국 잘라냈다.


그때는 나는 친구가 나를 이해하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슬펐고, 화가 났다. 친구의 속마음까지 헤아리기엔 모자랐다. 친구도 내게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한참의 시간이 지나서야 그 친구도 가정을 이루고 나름의 인생을 살고 있다는 걸 건너 건너 들었다.



친구와의 이별은 어쩌면 과거의 나를 품은 사람과의 이별이었다.

과거의 나, 더 이상 맞지 않는 생각과 감정들. 그 일부와도 나는 이별한 것 같다. 필요했던 이별이었다.

누가 나쁘거나 잘못해서가 아닌, 서로가 같은 자리에 있을 수 없었고 다른 곳을 바라봤으니까.


그때의 나와 그리고 친구를 이제는 미워하거나 그 시간을 원망하지 않는다. 그 시절의 우리는 서로에게 최선이었고, 또 우리는 즐거웠고 행복했다. 그냥 방향이 조금 달랐던 것인데, 그때의 우리가 다른 방향의 풍경을 서로 보지 못했던 것뿐이었다.

그래서 지금은 각자의 삶에서 마주하는 풍경으로 행복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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