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들처럼 잘 쓰고 싶다는 마음, 내려놓기
큰일 났다.
여기서 내가 제일 못 쓰는 것 같다.
어느새 6번째 시간. 10주간의 여정도 절반을 넘겼다.
오늘은, 책에 실릴 여섯 편 중 세 번째 글을 완성한 날이다. 각자의 글을 읽고 피드백으로 여는 시간. 지난주와는 또 다른 분위기다. 모두의 글이 한 주 한 주 피드백을 거치며 성장하고 있었고, 이번 주에는 마치 포텐이 터진 것 같았다. 어떤 사람은 새로운 형식으로 도전했고, 글의 전개 방식을 달리하기도 했다. 혹은 신선한 주제로 글을 써 왔다. 글의 구성도 한층 자연스러워져, 문단과 내용의 연결이 훨씬 매끄러워졌다. 확실히 지난 피드백 이후로, 완성도가 높아졌다는 느낌을 받았다. 마치 “색채가 조금 더 차갑지만, 따뜻했으면 좋겠다”는 모호한 주문을 받고도 그걸 캔버스에 구현해 낸 것 같았다. 작가님도 이번 글들이 너무 재미있어서, 중간에 피드백을 포기할 정도였다고 하셨다.
그 순간 갑자기 주눅이 들었다. 지난주까지만 해도 마냥 즐겁기만 했는데, 오늘 우뚝 선 다른 글들 앞에 내 글이 유독 작아 보였다. 피드백에도 이젠 익숙해졌고, 오히려 피드백이 반가운 지경에 이르렀지만, 성장한 다른 글 사이에 여전히 같은 문체, 같은 구성으로 써 내려간 내 글은 자가복제 같았고, 마치 피터팬처럼 성장이 멈춘 것만 같았다. 그런 생각이 스친 순간, 내가 작아지기 시작했다.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시간을 좀 더 들였어야 했나, 주말에 왜 쉬기만 했을까. 좀 더 고민해 볼걸.
다른 사람들의 글을 읽고 나니 내 글의 빈틈들이 보인다. 부자연스러운 연결, 밋밋한 제목과 첫 문장, 문단 간의 비율과 서술 방식의 단조로움. 작은 눈송이처럼 흩어졌던 의심들이 몰려오더니 큰 눈덩이를 만들어 마음에 눈사태를 불러왔다. 갑자기 자신감이 무너졌다.
각자의 감상평을 나눈 후, 다음 글에 주제에 대해 이야기도 나눴다. 다른 사람들의 주제는 왜 이렇게 재미있게 들리는지. 내 차례가 다가오자, 나도 모르게 ‘이건 다 엎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했던 두 개의 글감이 있었지만, 막상 발표하고 쓰려니 어려워서 손이 움직이지 않았다. 내가 얼어있는 동안에도 타닥타닥, 타자소리는 공간을 채웠다. 누군가는 글의 개요를 완성했고, 벌써 첫 문단을 써 내려가는 사람들도 있었다. 나는 아직도 뭘 써야 할지 감도 안 잡히는데. 내가 가져온 주제는 재개발이 시급했다. 그렇게 그날을 마무리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4일을 꼬박 묵힌 후에야, 일요일 오후 자주 가는 동네 카페로 향했다.
주말이라 북적이는 공간. 커피가 나오기까지 15분이 걸린단다. 자리로 돌아와 노트북을 켰다. 화면은 여전히 백지상태. 써놨던 주제를 보고만 있는데, 울리는 진동벨.
“커피 나왔습니다.”
벌써 15분이 지났다. 속 타는 마음에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한 모금 들이켰다. 우연히 옆 테이블에 혼자 앉은 사람에 멈춘 시선. 그는 커피 한잔을 두고, 의자에 기댄 채 책을 읽고 있었다. 그러다 갑자기 고개를 들어 창 밖을 봤다. 생각을 하는 것 같았다. 주변의 소음도 신경 쓰지 않았다. 그 사람만, 마치 외딴섬에 있는 것 같았다. 자신에게만 오롯이 집중하는 그 사람과 내 빈 화면을 번갈아 보면서, 문득 깨달았다. 나만 못 쓸 것 같은 두려움에 괜히 있어 보이고 싶어서 어렵고 무거운 주제를 골랐다는 것을. ‘남들처럼’ 잘 쓰고 싶다는 생각에 기인한 어려움은 아니었는지.
남들처럼 이 아닌, 결국 내가 잘 쓸 수 있는 나의 이야기를 주제로 다시 써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동시에, 남들처럼 잘 써야지가 아닌, 남들에게 배워서 나도 써보자는 마음을 먹었다. 그제야, 글의 재개발에 속도가 붙었다. 썼던 주제와 문장들을 과감하게 지웠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의 글을 다시 찬찬히 읽어보았다. 나는 산업스파이 마냥 다른 글들의 좋은 점들을 커닝했다. 이 글처럼 전개 방식을 새롭게 해 볼까? 조금 더 묘사하는 글을 써볼까? 나의 이야기를 타자화해서 써볼까? 하면서. 그러면서 동시에 내 이야기로 써 내려갔다. 그랬더니 한 문장, 한 문장 써지기 시작했다.
창가의 그림자 방향이 기울고 난 후, 글을 완성했다. 글을 완성하니 보였다. 아이러니하게, 나를 주눅 들게 만든 것은 나였고, 다시 나를 일으켜 세운 것은 다른 사람들의 글이었다는 것을. 타인으로부터 더 나은 것을 배우고, 동시에 내 이야기를 하면서 그 불안이 사라진 것 같다.
문득, 공동출판에 신청한 이유를 떠올렸다.
비교가 아닌 공유를 위해.
내 글을 찾아가는 이 여정에, 나는 좋은 도반들과 함께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