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에서 글감 찾기

보고, 듣고, 느끼는 모든 것의 기록

by 꿈꾸는오월

글이 안 써진다.


피할 수 없는 순간이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써야 하는 순간. 같이 쓴다는 것은, 내가 쓰고 싶은 주제에 대해서만 쓸 수 없다는 것이다. 혼자 쓰는 글이 아닌, 공동의 과제니까. 모르는 주제, 말하기 어려운 것들에 대해서도 결국은 써야 한다. 굉장한 도전이자 좋은 기회란 것도 너무 잘 알지만, 어려움과 막막함은 어쩔 수 없다. 동시에, 혼자 글을 써오면서 얼마나 자기 편향적인 글만 써 왔는지도 깨닫게 된다. 아는 것 혹은 익숙한 주제만 써오던 글을 지나, 혼자여서 몰랐던 것들, 혹은 알면서도 피해왔던 것들이 여실히 그 모습을 드러낸다. 이상하게도 그런 막막함은 자유가 주어졌을 때 더 크게 다가왔다. 글의 주제가 구체적이지 않은 무언가일 때, 오히려 더 어렵게 느껴졌다. 확장성 있는 테두리만 주어지니 방향성을 잡기도 어려웠고, 그 안에서 나만의 것을 쓰는 것에 확신이 서지 않았다. 이것저것 떠올려 보지만 마음에 딱히 들지도 않는다. 자유가 주어져도 틀에 갇힌 생각들만 하는 나 자신을 보면서 반성과 자책도 잠깐 했다. 홀로 공상을 끝낼 즈음에는, 아무런 생각조차 남지 않는 지경에 이르렀다. 결국, 오늘도 망망대해에서 뱅글뱅글 돌기만 했다.


이번 글의 주제는 자유 주제였다. 조건을 달자면, 커피를 마시며 하는 생각들 정도. 나머지는 모두 자유다. 어떤 구조나 형식도 환영. 내 안의 생각이든, 혹은 커피에 관련한 것들도 가능. 그냥 막연하게 떠오르는 것들도 모두 가능! 모든 것이 허용된다는 우주 같은 확장성에 압도됐다. 우선 단어를 찬찬히 살펴본다. 커피가 눈에 먼저 들어왔다. 커피. 매일 마시는 것, 어디서 마실까, 언제 마실까, 누구와 마실까. 정해지지 않은 주제에 쉽사리 생각이 떠오르지 않는다. 무엇을 써야 할지 감이 오지 않았다. 다행히 자유 주제에 막연한 생각만 떠오른다는 옆사람의 말이 위로가 되었다. 그래도 어쩌나, 위로는 위로일 뿐. 우리에겐 마감 기한이 존재한다.



검색을 해보기로 했다.

"글이 안 써질 때".


아, 똑똑한 AI는 수십 가지 해결책을 읊어준다.


"우선, 오감을 자극해라. 환경을 바꾸거나 부담감을 줄여라. 글쓰기 루틴을 만들거나 필사를 해봐라..."


너도 알고 나도 아는 내용이지만 AI가 그렇게 말하시니 신뢰도가 오른다. AI의 분부 받들어 오감자극과 함께 환경변화를 주려고 집을 나서 카페로 향했다. 상쾌한 카페, 원두향에 무언가 잘 써질 것 같은 좋은 예감이 든다. 역시, 인간이란 의지보단 환경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는 것을 이렇게 또 실감한다.


좋은 글을 읽거나 필사해 보라는 것이 떠올라, 사놓고 미뤄둔 책을 집어 들었다. 책은 또 왜 이렇게 재미있는지. 글을 써야 하는데 책에 몰입하게 된다. 이래서 시험기간엔 벽만 쳐다봐도 재미있다는 말이 괜한 말이 아니다. 책을 가장 재미있게 읽고 싶으면, 시험기간, 혹은 전날 밤에 읽으시길. 일탈이라는 심리전에 더불어 몰입도가 끝내준다. 책 한 권 뚝딱! 읽고, 바로 시험장 가기도 가능하다.


결국 책장을 덮었다. ‘일기 써 보듯 써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일기를 어려워하는 내 모습이 문득 낯설지 않다. 초등학교 때 방학숙제로 일기를 몰아 쓰던 내 모습을 여기서 또 발견하다니. 그때도 어찌나 쓰기가 어려웠던지. 기억도 나지 않는 것들에 과거에 대한 글쓰기, 날짜는 뒤죽박죽. 그래서 당시 내가 했던 잔머리는, 날씨만 기록하거나 신문 오려놓기, 혹은 달력에 간단한 단어만 써놓고 복기해 보는 것이었다. 그 잔머리는 지금의 캘린더, 사진첩, 그리고 영수증을 확인하는 것으로만 바뀌었을 뿐인 것 같다. 휴대폰의 달력이나 사진첩을 보면서 이 사진을 찍을 땐 어땠는지,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떠올린다. 혹은 영수증을 보지만, 항상 마지막은 티끌 모아 태산이란 것만 깨달을 뿐.


마지막으로, AI가 추천한, 생각나는 대로 적어보기로 한다. 의식의 흐름대로 써보고자 했으나 의식이 흐르지 않는다. 정체된 내 의식은 AI가 생각지도 못한 영역임에 틀림없다. 인간이 AI보다 나은 순간인가, 혹은 떨어지는 순간인가.


그러다 '보이거나 듣는 대로', 사관처럼 글을 적어보기로 했다.

눈과 귀를 열어 돌아보니 많은 것들이 보이고 들린다. 매장에 잔잔히 흐르는 재즈 피아노, 공간을 가득 채운 원두향. 저 쪽 테이블엔 소개팅을 하는 것 같은 어색한 남녀가 있고, 또 반가운 친구들과 정답게 담소를 나누는 사람들도 있다. 나처럼 혼자 와서 조용히 독서하는 사람도, 노트북에 열중해 작업을 하고 있는 사람들도 있다.

대뇌로 들어온 모든 시청각 정보를 손으로 받아 적고 있으니, 행간 사이로 생각들이 피어오른다. 어느 순간, 묘사 끝에 생각을 적고 있다. 써보고 싶은 주제가 떠올랐고, 작게나마 쓰기를 시작했다.


일상의 모든 것들이 글의 재료가 될 수 있다.

그 말은 절대 거짓이 아니다. 알면서도 몰랐던 것들일 뿐. 내가 보는 것, 듣는 것을 우선 적어 내려가는, 일상에서 글감을 찾는 좋은 방법을 발견한 것 같다.

매일 같은 일상이어도, 그 속에 하나쯤은 다른 게 있을 테니까. 자주 오는 카페도, 인테리어와 사장님은 변하지 않지만(!), 매번 드나드는 사람들이 다르고, 매번 마시는 커피의 종류도 다를 수 있으니까. 일상 속 작은 다름을 찾아보는 것, 기계 같은 일상에도 매일이 같지 않음을, 오늘의 하루는 내일과 또 다를 수 있음에 기대가 되는 것 같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