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 나오기 전의 마지막 시간
책이 나오기 전, 마지막 시간.
우리는 책에 실릴 6편의 글을 모두 퇴고했다. 책의 디자인과 마무리 편집은 프로그램을 진행하시는 작가님께서 해 주신다.
글쓰기로 물들인 올여름의 초록빛을 닮은 표지, 그리고 이슬처럼 위에 앉은 우리의 이름들. 이대로 책이 나온다니 설레기도 하고, 아직 실감이 나지 않았다. 책의 실물을 보면 그제야 알 것 같기도 하다.
마지막으로, 작가소개란과 짧은 에필로그를 썼다.
작가소개. 곧 책의 날개에 실릴 자기소개다. ‘작가소개’라는 단어부터 괜스레 쑥스럽다. 그저 쓰는 사람으로 작가를 칭하고, 그 테두리 안에 들어가는 건 괜찮을까 싶다.
자기소개란 어떻게 이렇게 매번 이 막막한지. 때로는 어색하고, 머쓱한 자기소개. 몇 문장 안에 나라는 사람의 단편만 보일 수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 단편을 저며내기가 쉽지 않다.
첫날 자기소개를 300자 이내로 썼었는데, 다시 열어보니 고쳐야 할 부분이 많이 보인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어떻게 써야 할까. 지금의 나를 규정하는 소속, 내가 좋아하는 것들, 내가 주로 하는 생각들을 단어만 적어 내려갔다. 그리고 단어들을 묶어 문장으로 만들었다.
나조차도 나라는 사람을 어떤 페르소나로 알고 있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보여주고 싶은 것들만 쓰는 건 아닌지 하는 생각에. 또 깊어지는 생각들과 가지를 뻗는 단어들에 여기까지 하기로 하고, 문장을 완성했다. 몇 줄의 소개글로 전체를 대변할리 만무하지만, 그나마 이 글이 나라는 사람과 쓴 글에 조금은 이해의 이유가 될 수 있길 바랐다.
전체를 마무리하고, 작가님이 물었다.
“앞으로 어떤 글을 쓰고 싶으세요?”
순간 사고의 흐름이 멈췄다. 어떤 글을 쓰고 싶은 걸까. 나도 모르게 나온 대답.
“모르겠어요. 일상의 작은 것들을 제 시선으로 써 내려가고 싶은 생각도 들고, 언젠가 소설을 써보고 싶다는 바람도 있어요. 어떤 글을 써보고 싶은지는… 써봐야 알 것 같기도 해요. “
웃음으로 답변을 마무리했지만, 말하고 나니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 나도 모르게 그 순간 내 안에서 올라온 대답. 어쨌든 나는 계속 무언가를 쓰게 되리란 건 확실하다. 이 것이 끝이 아니라 계속 쓰고 싶다는 것도.
앞으로 무엇을 쓰고 싶냐는 질문은 꽤 여운이 길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그 이유에 대해 생각했으니까.
쓰고 싶은 말이 많은 사람은 언젠가 쓰게 된다.
어디선가 봤던 문장이 떠올랐다.
그저 말 많은 사람은 아니길 바라는 마음이 우선했다. 그리고 ‘쓰고 싶은 말’이란 무엇이었는지 떠올렸다.
읽기란 취미이자, 위로였다. 지칠 때, 때론 한 문장이 큰 위로가 되었다. 책은 물론, 지나가다 스친 인스타 속 글귀, 브런치에서 우연히 읽은 글 한 편, 누군가의 상태메시지에도 그런 번뜩이는 순간들이 있었다. 한 문장으로도 하루를 버틴 날, 채운 순간도 있었으니까. 내가 받은 세상의 위로와 다정함, 그 친절을 활자로 나누고 싶은 생각을 했다. 그리고 삶을 기록해놓고 싶다는 지극히 사적이고 기초적인 생각도.
기록과 나눔, 그 어떤 이유가 됐든 AI가 글쓰기 마저 대체하는 이 시대에도 내가 글을 쓰는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어쩌면 더욱 나라는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영역을 더 쓰려고 고군분투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내가 보고 느낀 것들은 나만이 쓸 수 있는 경험이라고 스스로를 위로하면서.
작가소개글과 에필로그를 마무리했다.
이제, 모든 글이 내 손을 떠났다. 여전히, 미지의 영역을 지도 없이 걸어가는 느낌이지만.
책의 실물이 나오면 또 어떨지, 이젠 기대감만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