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 한 그릇에 담긴 사랑

by 꿈꾸는오월

“XX동 XX호 맞으시죠? 집에 계세요?”


한창 바쁜 오후, 모르는 번호로 걸려 온 전화. 시키지도 않은 택배가 왔다. 범인은 엄마다. 또 택배를 보냈다. 말도 없이. 퇴근 후 집 앞에서 마주한 건 덩그러니 놓여있는 아이스박스. 박스테이프로 칭칭 감겨, 경고장 같은 빨간색의 '파손 주의' 스티커까지 나를 반긴다. 아, 예상대로 또 먹는 걸 보냈다. 몇 시간이나 지났는지, 혹여나 상했을까 부랴부랴 옷도 갈아입지 못하고 박스부터 뜯었다. 다행히 음식은 녹지 않았지만, 양이 생각보다 꽤 많았다. 찬장에 있는 용기들을 다 꺼냈다. 용기마다 음식이 들어앉았다.


냉장고를 정리하고 있으니, 왠지 모를 지겨움이 올라왔다. 먹을 것이 넘쳐나고, 건강을 위해 소식을 찬양하는 이 시대에 엄마는 또 먹을 것을 보냈다. 대충 정리가 끝나니, 냉장고에 가득 찬 음식들은 먹어야만 끝나는 과제처럼 날 쳐다본다. 언제 또 다 먹어야 하는 건지, 바쁜 날은 집에서 요리하기도 벅찬데. 모든 것을 생략하고, 그저 잘 받았다고 엄마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이젠 안 보내도 된다는 말도 덧붙였다. 바로 전화가 왔다. 엄마는 보낸 고기는 어떻게 보관해야 하는지, 또 어떻게 조리해야 하는지 쏟아낸다. 이번이 마지막이라는, 끝나지 않는 최종화 같은 말만 덧붙이면서. 전화를 끊고 보니, 비닐, 스티로폼 쓰레기가 한가득이다. 이걸 또 언제 버려야 하나.


여전히 엄마는 서른이 훌쩍 넘은 자식의 끼니를 걱정한다. 굶고 사는 것도 아니고, 오지에 사는 딸도 아닌데. 멀리서 살아 손길이 닿지 않아 그런 걸까. 민망하게도 그런 자식은 매 끼니에 간식까지 너무 잘 먹어서 탈이다. 문제는 엄마 기준의 '제대로 된' 집밥이 아니라서 그런 건지도 모르겠다.


어쩌다 휴가로 집에 내려갈 때면 엄마의 집밥은 극에 달했다. 당신의 부엌이란 요새에서 뭐든 만들 수 있었기 때문이다. 집에 가는 날짜가 정해지면, 항상 뭘 먹고 싶은지 질문이 먼저 들어왔다. 공항 가는 길부터 여행이 시작되는 것처럼, 그 질문은 우리에게 공항이자 출국수속과 같이 먼저 치러야 하는 의례였다. 그 어떤 계절의, 어떤 음식도 엄마는 집에서 그것을 만들었다. 한 끼 사 먹으면 될 일을, 엄마는 매번 장을 봐오고, 밥을 짓고, 또 먹고 나면 산더미만 한 설거지하느라 바빴다. 집에 갈 때마다 가장 많이 본 것은 부엌의 엄마, 그리고 뒷모습이었다. ‘집밥’이란 그 고된 노동은 외려 우리가 함께할 시간을 담보로 했으니까. 어쩌다 외식을 하게 되면, 내가 돌아가는 날 새벽부터 엄마는 음식을 했다. 아침을 먹여 보내든, 도시락을 싸주든. 적어도 한 끼는 꼭 집밥을 먹어야 한다는, 마치 헌법에 쓰인 무언가를 수호하는 듯 엄마는 새벽잠도 마다하셨다.


그날따라 퇴근이 늦었다.

보고서는 반려, 팀장님께 두 시간 가까운 잔소리를 들은 날. 퇴근길 지하철에서, 문득 집에서 끓인 소고기뭇국 생각났다. 서울에서 먹을 수 없는, 경상도식 소고기뭇국. 얼큰한 국물 한 숟갈이면 이 복잡한 속이 풀릴 것만 같았다. 엄마에게 전화해 레시피를 물었다. 내심 그 전화가 반가웠나 보다. 엄마는 그건 아무것도 아니라며, 레시피를 읊어줬다. 참기름에 고춧가루, 다진 마늘을 볶아내고 국거리용 소고기 넣기. 나박 썰기한 무와 육수를 넣어 끓이다 콩나물 넣고 간 맞추면 끝. 엄마 말대로 간단해 보였는데, 우선 집에 그만큼의 재료가 없었다. 집 앞 마트에서 대충 사 들고 들어갔다. 받아 적어둔 그대로 어찌저찌 국을 끓여냈다.


기대를 안고 뜬 첫 숟가락. 그 맛이 안 난다. 무언가 빠져있다. 재료도 똑같이, 순서 하나 틀리지 않았는데. 그냥 국거리 소고기가 아닌 한우 양지를 써야 했던 걸까 재료를 탓해보다, 끓여내는 정성이 부족했던 걸까 생각도 했다. 그 순간 엄마가 끓인 소고기뭇국이 절실했다.


돌이켜보면, 나를 처음으로 먹여준 사람은 엄마였다. 태어난 순간부터 지금까지도, 나의 끼니를 걱정하는 사람. 어린 시절 하루를 시작했던 첫 장면은 부엌이었다. 아침마다 부엌에서 들려오던 칼질 소리, 찌개가 끓는 냄새가 집안에 가득 번지면 눈을 떠 식탁으로 가곤 했다. 아픈 날이면 쌀을 갈아내는 소리와 함께 죽이 올라왔다. 엄마는 뜨거우니 천천히 먹으라는 말과 함께 작은 그릇에 죽을 내어주었다. 기념일의 식탁은 또 달랐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 가득했다. 참기름 향 가득한 미역국과 색색의 잡채, 달큰한 갈비찜 냄새가 가득 찬 잔칫상에도 엄마는 늘 “많이 못 해줬네”라고 했다.


하지만 식탁이 특별했던 건 꼭 좋은 날만은 아니었다.

시험을 망친 날에도, 면접에서 떨어진 날에도, 힘든 일로 기운이 빠진 날에도 엄마의 식탁은 아무 말 없이 나를 맞아줬다. 말 대신 어김없이 올라왔던 새 밥과 따뜻한 국 한 상. 때론 엄마는 이유를 묻지도 않았다. 그냥 “밥 먹어라.” 단 세 글자의 말이었지만, 그 안엔 ‘괜찮다, 너는 충분하다’는 위로가 들어 있었다. 세상이 날 밀어내도, 식탁만큼은 늘 나를 받아주는 자리였다.


독립하고 나서야 비로소 알았다. 집밥은 단순한 끼니가 아니었다는 것을. 퇴근 후 배달 음식과 잦은 외식이 쌓일 수록 기억 속 엄마의 밥상은 더 선명해졌다. 먹는 것, 그렇게나 지겨운 일상의 그리움이 커진다.


이번 여름휴가 때 집에 가기로 했다. 그 소식을 알리니 엄마는 또, 당연하다는 듯 묻는다.

"집에 오면 뭐 해줄까? 뭐 먹고싶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