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애하는 나의 불안에게

by 꿈꾸는오월
“불안 지수가 높은 거, 알고 계세요?”

상담실 공기가 순간 정지한 듯 서늘해졌다. 마음 깊숙한 곳까지 들킨 것 같아 말문이 막혔다. 심리 상담을 시작한 지 세 번째밖에 되지 않았는데, 상담사 선생님은 내 성향과 문제를 단박에 짚어 내셨다. 사실은 첫날부터 짐작하셨다고 조심스레 덧붙이면서.


"30대가 되고 괜찮아졌다고 생각했는데, 여전한가 보네요."

멋쩍게 웃어넘기려는 찰나, 그 모습마저 꿰뚫어 보시는 선생님.

“그냥 이대로 두면 안 돼요. 높은 불안과 걱정은 스스로 주변의 환경을 어렵고 힘들게 만들 수 있어요. 예쁘게 가꿔 놓은 꽃밭을 스스로 헤집어 놓는 것처럼.”

일순간 금쪽이가 된 느낌이었다. 내가 애써 모른 척해왔던 나의 성격적 결함, 불완전성에 대한 진단은 2평 남짓한 상담실 공기를 가득 채우고도 남았다.


사실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아니, 알면서도 피해 왔던 건지 모르겠다. 불안은 오랜 시간 나의 가장 큰 원동력이었기 때문이다. 걱정, 두려움, 인정받고 싶은 욕구들은 꽤 오래전부터 내 안에서 자리 잡아 나를 만들어왔다. 시험지를 받는 순간, 세간의 걱정스러운 뉴스들, 사람들 앞에 나서야 할 때, 혹은 누군가의 무심한 말 한마디. 그런 순간마다 불안은 어김없이 발톱을 드러냈다. 마치 내 안에 내장된 센서처럼, 때마다 경보음을 울리면서. 알람은 때로 플랜 A, 혹은 최선의 것들을 만들어야 한다는 강박으로, 대개는 자책과 반성으로도 귀결됐다.


그런 불안 속에도, 이상하게 내가 바랐던 플랜 A들은 번번이 내 것이 아니었다. 심지어 대입, 취업과 같은 인생의 관문과 같은 선택 앞에서 불안에 잠식당하기 일쑤였지만, 결론은 언제나 대안, 혹은 플랜 C였다. 점점 트랙에서 벗어나기 시작한 궤도는 가까운 가족에게도 지지를 받지 못한 채 더 큰 불안으로만 뻗었다. 선택보다 수용에 가까운 것들로 번진 내 안의 불안과 채워지지 못한 인정 욕구는 씨실과 날실처럼 한데 얽혀 나를 채웠다.


취업으로 한동안 덮어두었던 불안은 30대가 되어 다시 고개를 들기 위해 시작했다. 안정감을 기대했지만, 지금의 나는 17살 진로 고민을 하던 오래전 나와 별반 다를 바 없었다. 밥벌이와는 별개로 새로운 과제들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선택이 필요한 삶의 순간들은 반복됐고, 시기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때마다 불안은 봄철 알레르기처럼 찾아왔다. 문득, 앞으로 남은 계절에도 이 알레르기를 겪을 자신이 없었다. 불안의 항원을 치료하고자 찾은 것이 심리 상담이었다.


그런데 상담을 통해 마주한 것은, 날 것의 불안과 인정욕구였다. 이렇게 쓸모없고, 참을 수 없는 존재를 없애는 법을, 전문가에게 구하고 싶었다.

“선생님, 불안을 없앨 수 있는 법이 있을까요?”

나는 조심스럽게 물었고, 선생님은 단호하지만 따뜻하게 말씀하셨다.

“불안을 없앨 수는 없어요.”

없앨 수 없다니. 작게도 만들 수 없는 이 존재를 어쩌면 좋을까.

“대신, 마주해 보세요. 왜 불안한지, 무엇이 두려운지, 혹은 무의식 안에 어떤 욕망이 숨어 있는지. 의식으로 다 알긴 어려워요. 종이에 쓰면서 머릿속을 한번 정리해 보는 게 도움이 될 거예요.”


백지를 꺼내 펜을 잡았다. 선뜻 무언가 써지지 않았다. 상투적이고 피상적인 단어들을 한참 써 내려간 후에야, 심연의 것들과 대면했다. 깊은 어둠에서 본 것은, 적군이라기보단 아군에 가까운 동지였다. 그 또한 나의 안녕을 바란다는 것을 그제야 알았다. 단지 그 목소리가 너무 커서, 혹은 너무 앞서 나를 움츠리고 작아지게 했을 뿐. 묵혀둔 대화는 길었고, 피아식별은 확실해졌다. 각자의 안녕을 바라면서, 수면으로 올라갔다. 마치 잠수병을 이겨내려는 몸짓처럼, 심연에서 수면으로 다시 올라오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그 이후로, 나는 불안을 사랑하기로 했다. 불안은 나를 무너뜨리려는 존재가 아니라, 내가 살아있음을 알리는 증거라는 것을 알게 됐으니까. 그 안의 메시를 들으려 하면서, 완벽한 사람으로 살아갈 수 없다는 사실도 받아들였다. 그 결핍과 불완전함마저 나라는 전체 중 일부로 끌어안는 일이라는 것도.


그러나 여전히 불안은 쉽지 않다. 때가 되면 어김없이 나를 찾아온다. 중요한 회의 전날, 삶의 단계를 고민해야 할 때, 결정과 선택의 순간에. 때로는 그 마음이 너무 앞서 나를 조급하게 만들고, 때로는 그 속도가 버거워 숨이 가쁘지만, 우리는 조금씩 호흡을 맞춰가는 중이다.


여전히 완전하지 않은 나는 매번 흔들리고, 두렵다. 새로운 길목에서, 예상치 못한 순간에. 그러나 그 흔들림 속에서도 한 발을 내디딜 수 있다면, 그리고 그 옆에 불안이 함께 선 것을 인정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그런 순간들이 결국 나를 조금씩 단단하게 만든다는 것을 이제는 안다.


오늘도 불안을 사랑한다.

흔들리면서도 사랑할 것 같다. 불안과 함께 더 멀리, 조금 더 단단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