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고 쓰는 시간
지니가 있다면, 소원 하나는 꼭 이렇게 빌고 싶다.
"글을 빨리, 잘 쓰게 해 주세요."
글을 빨리 잘 쓰는 법은 세상에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빨리 잘 써 내려가고 싶다. 특히나, 독립출판을 준비하면서 마감에 쫓기니 더 그런 것 같다.
10주란 시간 안에 글 쓰기부터 편집, 디자인까지 하는 것이 쉽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했는 제, 정말 쉽지 않다.
중간에 주제도 바꿨고, 써둔 원고가 많지 않아서 시간은 더 촉박했다. 지금 썼던 것보다 '조금만' 시간을 더 할애하고, 부지런히 쓰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전혀 아니었다.
돌이켜보니, 나는 늘 자유롭게만 써 왔던 것 같다. 일기처럼, 어떤 일이 있거나 혹은 생각이 떠오를 때는 몇 장을 내리 쓰기도 하고, 어떤 날은 한 문장도 쓰지 않기도 하고. 글을 쓰겠다며 마음먹고 카페에 가서도 잘 써내려 가지지 않을 때는 딴짓만 하다 온 적도 많았다.
글은 나에게 숙제가 아니라 쉼이었고, 누군가 읽지 않아도 괜찮은 것이었으니까. 처음 엔솔로지를 만들었던 때도 그랬다. 그건 '팔지 않는', 그저 글의 묶음으로 낸 책이었다. 그래서 편집에 대한 압박도 없었고, 함께 내는 책이라 부담도 없었다.
하지만, 독립'출판'은 다르다.
책을 만든다는 것은, 글을 쓴다는 그 이상을 필요로 했다. 이제 이 글은 누군가에게 '돈을 주고 사는 책'으로 다가간다. 이 사실이 주는 무게감이 생각보다 컸다. 글의 성격이 바뀌면서, 왠지 모를 압박감이 심해졌다.
전 보다 내 글에 대한 자기 검열도 심해졌다. 내가 쓴 글의 단어나 문장이, 누군가에게 잘못 가 닿으면 어떡하지, 너무 개인적인 감정이라 불편하지 않을까. 불안과 걱정은 나를 자주 멈춰 세웠다. 그런 고민 사이에도 시간은 재깍재깍 흘러가고만 있었다.
조금씩 미루기 시작했다. 여느 때처럼.
어떤 오전은 글이 잘 써졌다. 또 어떤 오후는 써지지 않았다. 그럴 때면 습관처럼 또 뒤로 미뤘었는데, 정말 데드라인이 다가오니 그럴 수가 없었다.
처음엔 내 책을 만든다는 설렘과 조금의 긴장뿐이었다. 마감 기한이 있는 원고를 완성한다는 말이 멋있게 더 들리고, 무언가 진짜 작가가 된 느낌이었으니까.
그런데 이제 데드라인에 가까워올수록, 설렘은 불안이 됐다.
오늘은 꼭 써야지 다짐하면서 노트북을 열었지만, 빈 화면에 커서만 깜박거릴 뿐.
조금씩 미루다 보니, 써야 할 원고가 점점 더 불어났다. 글이 아닌 기한, 그 숫자만 남아버린.
더 이상 지체할 수 없다는 생각과 일정의 압박감은 나를 더 조급하게 만들었다.
그때, 체감했다. 내 마음대로 자유롭게 써 왔던 글과 책임을 지고 쓰는 글은 다르다는 것을. 이 글은 단순한 나의 감정이 아닌, 책이라는 물성을 가져야 하는 것이었다.
"데드라인이 최고의 영감"이라는 말을 어디선가 들은 적이 있다.
중간 즈음엔 데드라인 때문에 모든 것을 부족하게, 망칠 것만 같았는데, 쓰면서 데드라인이 나를 끝까지 써보게 하는 장치임을 깨달았다. 기한이 정해진, 그리고 책으로 만들어야 할 글들을 쓰면서 힘들었지만 점점 더 성장의 흔적이 쌓여가는 것이 보였다.
이제 영감이 오지 않아도, 앉아서 그냥 써 내려가는 것을 배웠다.
마음이 내킬 때만 쓰는 것이 아니라, 그저 써보는 경험.
손가락으로 써 내려가는 이 반복된 노동의 끝에 나는 안도감을 찾았다. 그리고 매일 같이 잘할 수 없다는 것도 알게 됐다. 데드라인이 없었다면, 여전히 내킬 때만 쓰고, 혹은 '언젠가'라는 말만 반복했을지도 모른다.
물론 여전히 글을 쓰고, 마감을 지키고, 매일 써 내려가는 일이 쉽지는 않다.
하지만 매일 앉아 조금씩이라도 글을 쓰는 재미를 느끼고 있다. 여전히 완벽한 문장도 한 번에 휘리릭 쓰지 못하고, 시간에 쫓겨 쓰기도, 혹은 다음날 글을 다시 읽으면서 좌절도 하지만.
요즘은 그런 생각을 한다.
다음 데드라인이 있다면, 나는 오히려 '돈을 주고서라도' 그 시간을 사고 싶다고. 마감은 더 이상 끝이 아닌, 한 문장과 글의 마침표를 찍는 순간이니까.
오늘도 시작점에 다시 앉아 다음 문장을 써 내려간다. 여전히 느리고, 문장도 어긋나지만.
집중해야겠다 다짐하면서, 매일 수업시간 끝에 듣는 한마디를 생각한다.
하루를 한 달처럼, 파이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