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의 단맛을 이해하는 일
아빠에 관해 한 가지 확신할 수 있는 것은, 달콤한 것을 좋아한다는 것이다.
아빠는 늘 단 것을 찾았다. 식사 후에도, 혹은 차를 한 잔을 마실 때에도. 명절마다 할머니가 식혜를 한가득 만들던 이유가 ‘김서방 때문’이라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었다.
카페에 갈 때면 아빠의 음료는 언제나 바닐라 라테나 캐러멜 마끼아또였다. 거기에 달콤한 디저트 한 조각도 필수였다. 환갑이 지났는데도 매번 달콤함을 찾는다는 엄마의 잔소리도 늘 있는 풍경이었다. 그럼에도 결국, 디저트 접시를 아빠 앞으로 가져다주는 것 까지도. 동생도 아빠를 닮아 단 것을 좋아했다. 함께 카페로 갈 때면, 엄마와 나는 그저 블랙커피를, 아빠와 동생 둘이서 달콤함을 가득 쟁반에 담아 오곤 했다. 나는 얼굴은 아빠를 쏙 빼닮았는데, 이상하게 달콤함에 대한 취향은 동생에게로만 유전됐다.
아마 그래서였을까. 아빠와 나 사이는 진로 선택의 기점부터 어긋나기 시작했다. 학창 시절엔 거의 간섭하지 않던 아빠가, 대학 입시 때부터 갑자기 나타났다. 밥상에 앉은 아빠의 말은 마치 식사 사이 끼어든 단팥빵처럼 어울리지 않았다. 그때부터 우리는 믹스커피와 블랙커피처럼, 섞이지 않는 취향의 존재들이 되었다.
대학 입학 후, 물리적 거리가 아빠와 나 사이를 다시 좁히는 것 같았다. 아빠에 말에 따르면, ‘졸업과 동시에 취업’을 한다는 그 당연한 일이 나를 비껴가지 전까지는. 취업준비생, 백수가 된 딸 앞에 아빠의 불안은 나에게로 밀려왔다. 아빠가 보낸 뉴스와 기사, 취업 공고는 실시간로 메시지 창을 가득 채웠다. 그즈음 나는 아빠와의 전화 한 통이 두려웠다. 아빠는 내가 제대로 대답할 수 없는 질문들을 했으니까. 얼마 전 지원한 그곳에는 합격 통보는 언제인지, 그 회사에는 지원서를 써냈는지.
면접까지 간 회사가 있었다. 아빠는 부담스러운 응원을 보냈다. 그러면서도, 입사 후 직무 변경을 신청하라고 조언을 덧붙였다. 그 일은 ‘네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라면서. 나는 그 ‘할 수 없는 일’의 결과를 기다리는 딸이었다. 아빠의 말이 맞았는지, 결국 불합격을 했다. 불합격에 대한 좌절보다, 그 사실을 아빠에게 알려야 한다는 것이 더 두려웠다. 나의 실패를 보란 듯이 방증하는 것만 같았으니까.
고집대로 잘못된 트랙에 올라타 탈선해 버린 기차. 길어진 취업 준비, 그 ‘백수의 기간’은 아빠의 눈에 나를 그런 딸로 만들기에 충분했다. 아빠의 기대는 나에게 닿지 않았고, 나는 그 기대를 감당할 수 없다고 결론지었다.
다행히도 시간은 되지 않던 일들도 되게 만들어주었다. 우리 사이에도 시간의 세례는 찾아와서, 나는 밥벌이를 하고, 독립을 했다. 그리고 아빠와 나도 각자의 공간에서 시간을 쌓아 올렸다.
몇 년 전, 아빠가 은퇴하셨다. 우리는 작은 축하 자리를 마련했다. 아빠가 좋아하는 달콤한 케이크도 주문했다. 케이크에 적힌 30년이라는 그 세월의 숫자가 낯설었다. 고작 5년 남짓 일하며 고단함을 토로하는 내가 감히 헤아릴 수 없는 시간이었다.
문득, 아빠의 30년 세월을 단 한 번도 직접 들은 적이 없다는 것이 떠올랐다. 아빠에 관해 내가 아는 것도 대부분 엄마의 편집된 이야기였다는 것도. 딸만 둘인 집에서, 어쩌면 아빠는 혼자 외로웠을지도 모르겠단 생각도 했다. 축하의 자리였지만, 이상하게 동생과 나는 촛불을 부는 아빠의 세월 뒤에서 눈물을 흘렸다. 일을 더해야 하냐는 아빠의 농담 섞인 말에 웃었지만, 미안함의 눈물이었던 것 같다. 아빠의 세월을, 혼자 짊어졌던 밥벌이의 무게를 너무 몰랐다는 자각 때문에.
여전히 나는 달콤함을 좋아하지 않는다. 집에 갈 때면, 아빠가 권하는 상투과자에도 손사래 치기 일쑤다. 커피도 여전히 블랙커피만을 마신다. 아마 그래서, 아빠를 이해하는 데 오래 걸렸는지도 모르겠다. 엄마와는 함께한 시간도 많았고, 같은 여성으로서 탄생부터 이어진 유대가 있었지만, 아빠와는 입맛부터가 달랐으니까. 취향의 차이부터, 나는 꽤 오랜 기간 아빠를 오해해 왔을지도 모른다.
아빠의 달콤함에 대한 취향을 생각한다. 아빠는 왜 그렇게 단 것을 좋아했을까. 그저 할아버지로부터 유전된 취향일까. 아니면 어쩌면 말하지 못한, 말하지 않고 감내한 쌉싸름한 세월의 자리에 달콤함을 채우기 위해서였을까.
이상하게 달콤한 냄새가 나면 아빠가 생각난다. 설탕이 녹아드는 것처럼, 아빠의 고됨도 그렇게 사르르 녹아내렸을까.
나는 오늘도 블랙커피를 마신다.
하지만 그 쓴맛에서 문득, 아빠만의 조용한 위로였던 달콤함이 무엇이었는지 이제 조금은 알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