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윤호 Jun 30. 2022

[에세이] 편돌이 일화 : 방황하는 우리의 아픔에 대해

20210309

  한 손님이 나에게 박카스를 건넸다. 가끔 있는 일이다. 자정이 다 되는 어스름한 시간에 일하는 나를 위해 한낱 동정을 부리는 이 중 하나일 테다. 기분은 나쁘지 않다. 오히려 가뭄의 단비 같다는 느낌을 받는다. 박카스를 준 손님은 잠깐 나갔다 다시 들어와 대뜸 자신이 가진 돈에 관해 이야기하였다. 술에 취한 꽐라였지만 나와 비슷한 또래에 갈색 동공을 가졌다. 그의 눈망울에는 슬픔이 가득했다. 그는 나의 눈을 보았다.

  "나는 사람 눈을 보면 알아."

  대뜸 황당한 이야기를 하는 나는 그를 보며 고개를 갸우뚱했다.

  "아니... 내 이야기를 들어줄 거 같다고."

  어이없어 피식 웃을 뿐 했다. 아마도 아무나 붙잡고 한숨 토하는 취객일 테다. 그가 보기에 나는 쉽게 다가갈 수 있는 흔한 편의점 알바생. 그러나 나는 그에게 딱히 거부감이 없었다. 무엇보다 심심했다. 그래서 나의 시간을 박카스 한 병과 교환하기로 했다.


  자기는 강남의 건물주 아들이어서 누워만 있어도 월 몇천만 원은 번다하였다. 하루 몇백만 원씩 소비한 자신의 통장 내역도 보여주었다, 대뜸. 그러나 자기를 인정해주는 사람은 없고 다들 자신을 이용해 먹는 사람밖에 없다고 하였다.

  당황스러운 이야기였지만 그의 흔들리는 눈동자는 혼란스레 충혈됐다. 동정받은 나였지만, 오히려 나는 그가 너무 안타까워 더 이야기를 들어보기로 하였다. 모두가 궁금해하는 건물주의 삶, 노동 없이도 살 수 있는 그들의 삶. 그는 울분 섞인 목소리로 참혹한 이야기를 소리쳤다.

  "다 밟을 거야. 다 밟을 거야... 나를 밟은 사람들, 나를 무시한 사람들 돈으로 다 누를 거야!"

  그는 사기당한 이야기, 협박당한 이야기, 더 돈이 많은 사람들에 피해당한 이야기 등 온갖 설움을 다 얘기했다. 울분에 차있는 그는 광기 어려 짐승처럼 으르렁거렸다.


  나는 울분을 한참 듣다가, 지쳐서 잠깐 말을 멈추던 그에게 물었다.

  "돈에 잡아먹힌 건 아닌가요?"

  그는 찡그리며 말했다.

  "돈을 이용하는 것뿐이야."

  "주변에 돈을 드러내기에 '자신이 아닌 돈을 좇는 사람'만 꼬인 게 아닐까요?"

  "돈을 드러내지 않아도 그놈들은 나를 이용해 먹는다고!"

  그리고 그는 한숨을 푸욱 쉬며 말을 덧붙였다.

  "세상에 믿을 거 하나 없어. 의심하고 또 의심해야 해. 의심해야 한다고!"

  그러고는 자신은 '진짜'인 사람을 찾을 거라고 말했다. 돈에 흔들리지 않고 자기 자신을 봐줄 수 있는 사람.


  난 내 주변 시민단체 활동가들의 삶에 대해 잠깐 이야기했다. 돈 없이 신념으로도 할 수 있는 게 있다고.

그러더니 그는 말했다.

  "그거 다 부질없어. 돈이면 다 할 수 있어. 네가 갑자기 1,000만 원이 생기면 뭐를 할 거야?"

  나는 단호하게 대답했다.

  "저는 공부부터 다시 할래요. 공부할 시간도 없고 스스로 부족한 게 너무 많..."

  그는 당황하여 내 말을 끊었다.

  "아냐. 뭐를 할지 모른단 말이야. 모른다고..."

  그는 머리를 쥐어짜며 끓어 넘치기 시작한 주전자처럼 쇳소리를 내었다. 혼란스러움이 보였다. 그가 말한 돈의 소비처는 방향성 없이 온통 쾌락적이거나 감정적이었기 때문에 나의 대답에 꽤 당황했던 것 같다. 나는 허무주의가 가득 담긴 눈을 보았다. 왜 저렇게 공허할까? 삶을 살며 저런 눈을 본 적이 있었나? 왜 저렇게 아픔이 느껴질까? 담배 한 대를 빌렸다. 잘 피지는 않지만, 그의 내면이 더 궁금했다. 이런저런 삶에 대해 잔뜩 이야기를 들었다.


  12시가 지났다. 일일 한도가 풀렸으니 팁이라며 나에게 방금 뽑은 10만 원을 건넸다.

받지 않았다. 받을 수 없었다. 돈에 대한 믿음이 있는 그의 세상을 깨고 싶었다. 돈이면 모두 살 수 있고, 돈이면 다 된다는 그의 생각에 불을 지르고 싶었다.

  "나 서운하다"

  "서운해하세요."

  멋쩍은 그는 만원을 건넸다.

  "담배 한 갑 정도는 괜찮겠지?"

  "네, 그 정도는... 감사합니다."

  피지도 않는 담배를 받아 폈다.

  "돈으로 사지 못하는 것도 있어요."

  나 역시 헷갈리고 알 수 없는 사회에 대한 바람을 신념 있는 척 말했다.

그러자 그는 나를 안았다. 서글픈 목소리였다.

  "'진짜'를 찾았다. 배움에 나이란 건 없잖아. 너에게 많이 배웠다."

  "오늘은 술집에도, 클럽에도, 여자에도, 돈 쓰지 마시고 편히 주무세요."

  그는 고맙다며 내 전화번호를 따려고 했으나 연거푸 거절했다. 안타깝지만 그의 세계는 나와 너무 달랐다. 물론 열 번 찍어 넘어져 전화번호를 건넸지만. 그래도 그의 세계에 조금이라도 흠집을 낸 거 같아서 기뻤다. 뿌듯하였다. 기분 좋았다. 통쾌했다.


  나는 최근 시민단체 활동과 거리를 두며, 활동 중 깨달았던 신념이 틀리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든 사람은 아픔을 갖고 있다. 고통은 줄 세울 수 없다. 그저 다양한 고통이 있는 것이다.>

  간혹 '모든 사람은 아픔을 갖고 있다'라는 명제를 부정하거나, 그래도 '무시해야 할 사람이 있다'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그들의 아픔은 아픔이 아닌가? 우리가 어떻게 아픔의 상하를 나눌 수 있을까?

  "그가 틀린 말을 하고 별 이상한 소리를 해도, 들어주고 안아주고 위로해줘야 하는 것 아니야? 왜 다들 그 과정이 생략되어 있어? 그 이후에서야 우리의 생각이든 방향이든 이야기해야지."


  나는 생각의 차이로 시민단체를 떠났고, 자리 잡은 곳은 내가 원하지 않은 편의점이다. 숨 막히지만 현실이다. 아까 받았던 담배 한 갑을 버리고 아르바이트를 끝내 집에 와 누웠다. 새벽 4시쯤 동이 트기 직전이다.

  평소처럼 자기 전 스마트폰을 켰다. 스마트폰 속에는 정의를 주장하는 자들과 어딘가 분노에 차있는 시민들의 목소리가 가득하다. 나에 대해서도 상대에 대해서도 아픔을 다루지 못하는 우리가 있다. 사실 모두 다르지 않다. 그저 다른 아픔을 가지고 있다. 그럼에도 왜 세상은 아픔에 대해 잔혹할까? 기분이 싱숭생숭하여 잠이 오지 않는다.

작가의 이전글 [시] 골방 후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