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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H Feb 18. 2022

취향이라는 굴레

끄적끄적

아직 너무나도 어린 나이지만, 그럼에도 해를 거듭하며 알게 된 나란 사람에 대한 몇 가지 사실이 있다. 바로 나이가 들면서 취향이 점점 확고해진다는 사실.


워낙 우유부단해 어렸을 때부터 결정장애가 심했던 나로서는 무엇인가에 대해 호불호를 밝히는 일이 가장 어려웠다.근데 언젠가부터 내가 나름 확고한 대답을 할 수 있는 질문들이 늘어났다.


내가 좋아하는 음악은 인디음악, 베이스가 멋있는 밴드 음악과 아주 마이너 한 힙합 조금이야.

내가 좋아하는 영화는 독립영화, 롱테이크를 잘 찍은 영화, 로봇과 공룡이 나오는 영화야.

내가 좋아하는 작가는 카뮈와 쿤데라, 김영하와 강화길이야. 내가 좋아하는 감독은... 내가 좋아하는 음식은... 내 이상형은... 등등


이런 질문들에 술술 대답하는 나를 보며 기분이 이상했다. 좋아하는 것이 생겼다는 것은 흰 도화지에 큰 동그라미를 치는 것과 같다. 동그라미 안쪽은 10점, 그 밖은 5점. 그리고 더 많은 동그라미들.

호가 생기면 당연히 상대적인 불호들이 생긴다. 한정된 시간을 투자한다면 당연히 소홀해지겠지.

취향이 확고해진다는 것은 동그라미 개수를 늘려가는 것이고 그 테두리를 두껍게 칠하는 것일 텐데... 이 동그라미 속에 갇히면 어떡하지?라는 생각이 든 건 정말 얼마 안 됐다. 그때부터 왜인지 모를 우울감이 들었다.


친구관계도 마찬가지야. 내가 가진 한정된 자원을 쏟아야 한다면, 네가 더 좋아하는 친구와 시간을 보내는 건 당연한 거지. 친구 A가 단호하게 말한다. 나이가 들면서 생기는 자연스러운 일이야. 나랑 동갑인 A가 단언한다. 그럼 나이를 먹으면서  동그라미만 쳐가는 것이 우리네 인생이라면, 인생의 끝자락에 우리가 서있을 동그라미 크기는 가장 좁겠네? 잠깐 생각하는가 싶더니 술을 따르는 A. 그건 좀 극단적이고, 술이나 마시자. 사실 술은 아니었고 우린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는 중이긴했다.


나는 내가 서있는 영역이 점점 좁아지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  나이 드는 것도 싫은데 내 시야도 좁아진다니 맘에 안 든다. 나는 나이 들어도 도화지 위를 헤엄치고 싶다. 동그라미는 무시하고(사실 무시는 못하겠지만) 가끔은 저 밖을 바라보고 또 이리저리 헤집고 다니고 싶다.

그럴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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