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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H Oct 04. 2021

영화를 보는 이유

예술이 뭐길래

1.

아무리 발버둥 쳐도 한 사람은 한 개의 삶만 산다. 그 하나의 삶마저도 우린 붙잡지 못해서 삶에서 2번째 기회란 없고 매 순간이 현재이며 밀란 쿤데라는 이를 보고 존재의 가벼움을 얘기했다.

 einmal ist keinmal
한 번은 없었던 것과 같다

현재만 살다가 스러질 우리네 삶이 안타까웠는지 사람은 여러 번 사는 삶을 가능케했다. 어떻게? 예술을 통해서. 같은 강물에 발을 2번 담글 수는 없지만, 여러 강물에 발을 담글 수는 있다.


김종관 감독의 영화 [아무도 없는 곳]에서 소설가인 창석에게 미영이 던지는 질문은 그래서 의미심장하다.

소설은 만들어낸 얘기인데 왜 읽어요?

에피소드를 거듭하며 감독은 우리에게 그 답을 알려준다. 소설이 곧 현실이고 현실이 곧 소설이라고. 

모든 예술가는 하나의 세계를 완성시키기 위해 노력한다. 잘 만들어져서 현실과 구분할 수 없을 정도의 러 가능세계들이 탄생하면 우리의 지평은 그만큼 넓어진다.

4개의 이야기, 4개의 현실. 소설가는 여러 개의 삶을 산다


내가 소설을 읽는다, 영화를 본다, 나아가 예술을 한다는 것은 곧 끝없이 흘러가는 현재를 아쉬워하는 몸부림이다. 한 번의 생으로는 도저히 알 수가 없는 세상의 신비를 알기 위한 발버둥이고 복잡한 세상 그 비좁은 틈으로 얼굴을 들이밀고자 하는 인간의 처절한 노력이다.


2.

The Artist is Present

마리나 아브라모비치가 자신의 몸을 이용한 행위예술은 그녀를 바로 지금, 여기에 존재하게 한다. Present는 곧 Past가 되며 앞으로 올 Future도 뜻한다. (트랜스포머 4에서 비슷한 문장이 나온 것 같은데, 착각인가)

어쨌든 마리나 아브라모비치는 그녀만의 방법으로 현재를 붙잡아 대중들에게 선물한다.

이 저명한 행위예술가는 아주 자명하지만 모두가 잊고 있는 사실을 알려주고 싶었던 것 같다. 결국 모두 현재라는 사실.

예술가는 존재한다. 지금 여기

모든 것이 현재라면 과거와 미래는 없어진다. 현재의 영원한 반복.


알랭 레네의 [당신은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 또한 시제를 가로지르는 영원성의 영화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아우르는 연극과 영화와 현실. 우리는 우리가 보는 것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구분할 수 없다. 진짜와 가짜는 없으니까. 모든 가짜는 진짜에서 뻗어나간 여러 갈래 길이고 모든 진짜도 마찬가지다. 시제가 사라지는 순간 영원성은 빛을 발한다. 감독은 모든 것의 경계를 허물고 그 속에서 삶의 진리를 건져낸다. 수많은 진짜와 가짜들 중 우리는 무엇을 진짜라 믿고 살아가냐는 질문과 함께 말이다.

내가 그들을 보고 있는 것인지, 그들이 나를 보고 있는 것인지

3.

예술가는 결국 다양하고 반복하는 현재를 보여주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이다. 무수한 현재들을 모아 평행우주를 만들어내는 창조자들이다. 하나의 삶만 사는 이들을 안타까워하는 부류이며 아주아주 복잡한 세상의 틈을 벌려 기어코 우리에게 그 안에 무엇이 있는지 보여주려는 사람들이다. 이창동이 그런 감독이다. 쿤데라와 강화길이 그런 작가다. 밀양과 윤희에게, 그린 나이트가 그런 영화다.


나에게 영화를 왜 보냐는 질문은 그래서 어렵다. 쉬우면서도 어렵다. 나는 영화를 통해서 세상을 보고, 세상을 통해서 영화를 본다. 살아있으니까 영화를 보는 것이고 살아야 하니까 영화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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