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한 언변보다 상대에게 열려 있는 태도가 진정한 소통을 결정하듯, 투자의 성공 또한 화려한 기법보다는 시장을 향해 열려 있는 여유로운 마음, 그리고 시장을 이기려 들지 않는 덤덤한 태도에서 결정된다. 대개의 인간은 시장을 얕잡아보고 자신을 과대평가하며, 성공에 빨리 도달할 수 있을 것만 같은 망상에 취하곤 한다. 누구나 목적지를 향한 최단 거리인 '직선'을 꿈꾸지만, 투자의 본질은 오르락내리락하는 파동의 곡선을 견뎌내야 하는 인고의 과정이다.
성급함이 그려낸 직선은 오직 자신만의 공상 속에만 존재할 뿐이지만, 곡선은 버팀을 전제로 하기에 지극히 현실적이고 정직하다. 직선만을 고집하는 성급한 마음은 파동의 굴곡을 받아들이지 못하며, 그 결과 인생의 궤적은 우상향이 아닌 우하향으로 가팔라지게 된다. 욕심이 성급함을 낳고, 성급함이 다시 욕심을 부추기는 굴레 속에서 다수는 여전히 생존본능의 노예로 머문다. 마음을 비운 만큼 돈이 채워지는 것이 시장의 이치이며, 감정과 생각이 개입할수록 확률의 세계는 복잡하게 꼬일 뿐이다. 타고난 직선의 고집을 유연하게 구부려 곡선의 파동에 몸을 실어야 하지만, 지독한 본성은 빳빳하게 쳐든 고개를 숙이지 못한 채 오늘도 애꿎은 원칙만을 부러뜨리고 만다.
비워낸 마음이 빈자리가 비로소 부를 채운다. 직선의 오만을 꺾고 곡선의 지혜를 채워야 한다. 성급한 직선은 원칙을 부러뜨리지만, 유연한 곡선은 목적지에 닿게 한다.
‘인간은 변하지 않는다’라는 명제는 거대한 장벽과도 같다. 그럼에도 길을 찾고 노력할 수밖에 없는 것, 평범함을 넘어선 비범함이 아니고서는 모두가 나가떨어질 수밖에 없는 숱한 실패의 반복을 견뎌내는 것, 그것이 투자의 본질이다. 투자를 지속한다는 것의 진정한 의미는 심리라는 어려운 숙제를 안고, 앞에 놓인 카드를 한 장씩 뒤집으며 끝까지 버티는 극복의 과정에 있다. 이 길이 이토록 어렵기에 이겨낸 대가는 클 수밖에 없으며, 한 번뿐인 인생에서 자기 극복을 반복하며 나아가는 것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값진 선물이다. 과정의 고독만 이겨낼 수 있다면, 이 길은 뚜벅이처럼 묵묵히 걸어가 볼 만한 충분한 가치가 있다.
본성과 그 본성이 빚어낸 습관들은 인생이라는 강물을 막아서는 걸림돌이 되고, 어느덧 견고한 댐이 되어 흐르고자 하는 열망을 가두어 버린다. 스스로 의도치 않게 쌓아 올린 감정의 댐을 허물지 못한 채, 같은 자리를 맴돌며 정체되곤 한다. 지금의 삶을 건너 다음 단계로 나아가고 싶은 자는, 현재 자신의 행위 그 정중앙을 꿰뚫는 날카로운 통찰로 내면 깊숙이 들어가야 한다. 내 안의 감정이 만든 장애물을 직시하고 지나가야만 한다. 투자의 여정에서 마주하는 수많은 감정의 파고를 정해진 원칙으로 버티며 하나씩 건너가는 것, 그것이야말로 투자라는 행위가 주는 진정한 가치다.
당신을 가로막은 것은 스스로 쌓아 올린 감정의 댐이다. 감정의 댐을 관통하라, 원칙은 그 댐을 허물고 다시 인생을 흐르게 할 유일한 도구다.
MBTI 성격 성향에서 S(현실·감각)와 T(논리·사고) 성향을 보였다면 투자자로서 유리하고 강인한(Strong) 상태라 할 수 있으나, F(감정) 성향이 짙다면 낙제점 ‘F’처럼 부서지기 쉬운(Fragile) 상태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또한 N(직관)이 의미하는 바는 순간적인 직감에 의존하기에 훈련되지 않은 상태에서는 비합리적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 가공되지 않은 직감에 체계적인 실전 훈련이 더해질 때, 그것은 최고의 인식능력인 '직관'으로 거듭난다.
어떤 성향을 타고났든, 체계적인 훈련을 통해 직감과 감각이 조화를 이루면 '직관적'인 존재가 되고, 인문학적 소양을 통해 이성과 감정이 조화를 이루면 '통찰적'인 존재가 된다. 인간의 성장이란 결국 자신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가는 것이며, 자기 안에서 변화시키는 노력을 의미한다. 투자자로서 유리한 자질을 타고났을지라도, 시장이 요구하는 감각을 갖추기 위해서는 반드시 과정의 터널을 지나야 한다. 체계적인 훈련은 감각적으로 '직관'하기 위함이요, 인문학적 소양은 이성적으로 '통찰'하기 위함이다.
훈련된 직감은 직관하고, 정제된 이성은 통찰한다. 기질은 주어지는 것이지만, 통찰은 만들어 가는 것이다. 훈련 없는 직감은 독이 되고, 소양 없는 이성은 머릿속 계산기에 불과하다.
“수영하는 법을 모르는 사람이 물에 빠지면 온몸에 힘을 주고 허우적대기 마련이다. 하지만 이런 행동은 오히려 사람을 곤경에 빠뜨린다. 긴장한 채 버둥거릴수록 물을 먹고 수면 아래로 더 가라앉기 마련이다. 이때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은 온몸에 힘을 빼고 몸의 부력을 이용해 스스로 떠오르기를 기다리는 것이다.”
<백영옥, 힘과 쉼>
투자하는 법을 제대로 익히지 못한 투자자 역시 손실이 나면 온 신경을 곤두세우고 본전을 찾으려 어물전의 물고기처럼 남은 힘과 돈을 다해 바둥거린다. 하지만 그렇게 힘이 들어갈수록 뇌동과 추격이라는 늪은 더 가팔라지고, 더 깊은 절망 속으로 빠져들 뿐이다. 원칙을 잊은 채 버둥거릴수록 손실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미래는 닿을 수 없는 ‘희망의 달’로만 비쳐 심리는 바닥에서 암울하게 헤매게 된다.
이때 투자자가 취할 수 있는 최선은, 비록 어렵고 고통스럽더라도 손실을 과감히 잘라버리는 것이다. 본전 회복에 집착하기보다, 시간이 주는 망각의 힘을 빌려 마음의 여유로움을 되찾기를 기다려야 한다. 내 생각대로 되어야 한다는 오만한 착각에서 벗어나, 반복적인 실천을 통해 손실을 기꺼이 감당하는 법을 익힐 때 투자의 진정한 의미를 알게 된다. 손실을 짧게 잘라내야만 불행과의 평행선이 멀찌감치 직선으로 유지되며, 그 안전한 거리 위에서 행복을 꿈꿀 수 있다.
감정이 발버둥을 멈추어야 비로소 떠오른다, 움켜쥐려 할수록 모래알처럼 빠져나가고, 손을 펼 때 평온이 찾아온다. 빳빳하게 들어간 마음의 힘을 빼고 시장이 주는 부력에 몸을 맡긴다면 평온하게 떠오를 것이다.
“우리는 습관 덩어리일 뿐이다…, 습관 전문가들에 의하면 성공은 좋은 습관의 연쇄 반응이다…, 탁월함보다 꾸준함이다. 시작보다 지속하는 능력이 뛰어난 사람들은 상황을 전환하는 정신적 습관이 있다. 지겨움을 편안함으로, 반복을 익숙함으로 바꿔 부르는 것이다. 가령 외국어를 잘하기 위한 핵심은 반복이다. 운동도 그렇다. 이런 반복은 엄청난 고통과 지겨움을 유발한다. 하지만 임계점을 넘으면 그것은 익숙함으로 변환한다.
<백영옥, 힘과 쉼>
천성을 바꾸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나, 습관을 만드는 것은 그보다는 훨씬 수월한 영역이다. 현재의 습관이 곧 그 사람의 미래를 말해 준다. 투자에서 좋은 습관을 빚어내지 못한 자는 끝내 미련 덩어리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한다. 원칙을 반복해 지키는 행위는 깨달음의 비탈길을 오르는 과정이며, 의식적 에너지를 쓰지 않아도 저절로 기준을 지키게 되는 단계에 이르면 그것이 바로 지속가능성의 고원에서의 매매다. 그 고원에서의 매매는 누구나 알고 있지만 아무나 캘 수 없는 다이아몬드를 채굴하는 보람찬 과정과 같다.
투자 일생 전체를 좌우할 단 하나의 '핵심 습관(Keystone Habit)'은 진화론적 편향이 쉽게 감정을 재단하게 되는 손실 상태(Red Zone)에서 빨리 벗어나는 것이다. 무엇을 '하겠다'라는 의욕보다 무엇을 '하지 않겠다'라는 절제에 초점을 맞추는 편이 지극히 현명하다. 원칙에 따른 매매 기법보다 더 중요한 본질은, 하나가 어긋났을 때 전체가 무너지는 것을 막기 위해 손실 상태에서 기대를 버리고 짧게 자르는 단호함이다. 재차 자리가 만들어질 때까지 아무것도 하지 않겠다는 그 마음의 단호함, 그것이 바로 투자를 근본부터 뒤바꿀 단 한 가지 핵심 습관이다.
단호함이 투자 세계 전체를 재편할 것이다. 무엇을 하려 애쓰기보다, 하지 않아야 할 것을 멈추는 데 집중해야 한다 ‘손실에서 즉시 벗어나기'라는 핵심 습관 하나가 정착되면, 나머지 원칙들은 자석처럼 자연스럽게 당신의 일상에 달라붙을 것이다.
깊은 사색과 넓은 통섭, 체계적인 훈련과 인문학적 소양으로 올곧고 가치 있는 원칙을 세우는 것. 그 자체로 이미 복의 절반, 즉 운이 작동할 수 있는 최적의 환경을 조성한 것이기에 삶이 반등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매매의 전 과정을 되풀이하며 음미하고 반추하다 보면, 마침내 인생의 거대한 반전이 일어나게 된다.
투자자로서 인생의 반전을 꿈꾼다면,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아무나 지속하지 못하는 ‘원칙의 반복’을 수행해야 한다. 반복 없이는 반전도 없는 법이다. 원하는 소중한 가치를 얻기 위해, 그리고 제멋대로 흐르려는 마음의 방종을 막기 위해 스스로 선포한 칙령이 바로 원칙이다. 데이트레이딩에서 ‘시간과 손실을 짧게 가져감으로써 위험을 효과적으로 통제한다’라는 명제는 위험에 맞서기 위해 스스로 세운 엄격한 칙령이다. 마음이 움직이는 대로, 하고 싶은 대로 행하고 싶은 욕구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같다. 그러나 시장에서 마음대로 행하는 것은 그 자체로 방종이며, 원칙을 부러뜨리는 최대의 위험이다.
방종을 꺾는 칙령이 인생의 반전을 만든다. 방종은 파멸의 지름길이지만, 반복은 인생 반전의 유일한 사다리다. 자신을 옥죄는 규칙이 역설적으로 자유롭게 하고, 그 좁은 길을 묵묵히 반복할 때 운은 깃들 것이다.
“신이시여, 제가 바꿀 수 없는 것은 받아들일 수 있는 평온을 주옵시고, 제가 바꿀 수 있는 것은 바꿀 수 있는 용기를 주옵시고, 그 둘을 구별할 수 있는 지혜를 주옵소서.” 니부어의 이 간절한 기도는 투자의 시작점에서 우리가 갖추어야 할 태도가 무엇인지를 명확히 가르쳐 준다. 투자의 제1원칙은 크게 잃지 않는 습관, 즉 원칙을 수호하는 기본기를 강철처럼 다지는 일이다.
수많은 투자자가 무너지는 본질적인 이유는 돈과 원칙을 지키는 이 지극히 당연한 기본을 등한시했기 때문이다. 확률의 세계인 시장에서 우리가 바꿀 수 없는 것은 외부의 흐름이다. 그 통제 불가능한 파동 앞에서는 한없이 여유로워야 한다. 반면, 우리가 바꿀 수 있는 것은 내부의 성급함과 욕심이다. 그 통제 가능한 마음의 변수 앞에서는 누구보다 덤덤하고 단호해야 한다.
인간은 본래 확률에 취약한 뇌 구조를 지니고 태어난다. 시장에 발을 들인 인간은 누구나 철부지 아이와 같으며, 인고의 시간과 실패를 거쳐야만 비로소 '제대로 된 어른' 투자자로 성장할 수 있다. 비록 시장에서 노력과 성공이 정비례하는 등식은 아닐지라도, 숱한 우연의 파고를 견뎌내는 투자 심리를 구축하기 위해 자신을 알아가는 시도는 그 자체로 숭고한 가치를 지닌다. 체계적인 훈련으로 감각을 다듬고 인문학적 소양으로 이성을 세우는 자만이 깨달음의 비탈길을 오를 수 있다. 그 비탈길의 끝에서 습관이 된 원칙을 지켜내는 것, 그것이 바로 지속가능성의 고원에 이르는 길이다. 깨달음은 곧 실천이며, 침묵 속에서 홀로 실천하는 자는 고독을 즐기며 자신을 엄격히 다스리는 신독의 경지에 이르게 된다.
지혜는 통제할 수 있는 나를 다스리는 데서 시작된다. 침묵하며 홀로 있을 때조차 원칙의 눈을 속이지 않는 신독의 마음이 당신을 승자로 만들 것이다. 자신을 이긴 자가 비로소 세상을 얻는다.
”깨달음을 얻는 고승조차 24시간 평온한 상태로 있는 게 아니다. 그 순간의 짜증과 화를 의식적으로 알아채고, 잠재우기 위해 호흡하고, 다시 평정을 찾는 반복의 반복일 뿐이다. 청소하지 않으면 먼지는 쌓인다. 마음도 그렇다. 의식적으로 노력하지 않으면 걱정과 불안, 슬픔, 분노는 먼지처럼 쌓인다. 이것이 엔트로피 법칙이다. 결국 균형이란 멈춘 상태가 아니라 맞춰지는 과정이며 우리가 걷는 길, 우리가 등에 멘 짐 무게에 따라 매 순간, 매 시기 바뀌는 건 아닐까.“
<백영옥, 힘과 쉼>
시장이 가는 방향을 매번 똑똑하게 맞추려는 시도는 인간이 달리기 시합에서 말을 이기려는 오만과 같다. 투자자는 똑똑함에 대한 의존을 내려놓고, ‘쉼’ 즉 ‘기다림’을 자신에게 이해시켜야 한다. 매번 정답을 맞히려는 열정은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을 낳고, 생각하지 않겠다는 다짐조차 또 다른 생각이 되어 우리를 괴롭히기 때문이다.
진정한 사유란 시장의 향방을 점치는 것이 아니라, ‘가는 말’의 기세를 읽고 그 갈기를 잡는 데 있다. 시장의 방향을 맞추려 바둥거리는 불필요한 힘을 뺄 때, 도도하게 흐르는 파동의 등에 살포시 올라탈 수 있는 유연함이 생긴다. 균형은 멈춘 상태가 아니라 끊임없이 맞춰가는 흐름이다. 말과 경주하기를 멈추고 말의 기세에 몸을 맡길 때, 비탈길의 숨 가쁜 고통은 사라지고 고원이 선사하는 평온한 자유를 만끽할 것이다.
흐름의 갈기를 잡아라. 항해는 당신의 힘이 아니라 바람의 힘으로 완성되는 것이다. 마음의 엔트로피를 거슬러 평온을 쟁취하는 반복적 수행만이 당신을 구해낼 것이다.
”더 오래 일한 사람일수록 자기 일을 사랑하는 사람이 더 많았다. 눈여겨봐야 할 지점은 몰입이 일어나는 데 가장 중요한 요소 역시 ‘능숙함’이라는 것이다. 달리기든 글쓰기든 춤이든 악기 연주든 능숙해질 만큼 반복하면 만족도가 상승한다. 숙련되는 과정에서 비로소 ‘해야 할 일’이 ‘할 수 있는 일’이 되고, 나아가 ‘잘하는 일’이 되는 것이다. 이것은 일을 ‘통제할 수 있다’란 자신감과 충만한 행복감으로 이어진다. 능숙함이야말로 싫어하는 일이 좋아지는 비결이다.
<백영옥, 힘과 쉼>
투자 전문가가 된다는 건 못하는 것을 잘하게 되는 과정이라기보다, 자신의 강점을 점점 더 날카롭게 다듬어 가는 과정이다. 처음부터 완벽한 투자자는 없다. 성공한 투자자들의 이면에는 처절한 시행착오와 자기 통제의 흔적들이 가득하다. 진정으로 프로가 되고 싶다면, 자신의 한계라고 믿었던 최대치에서 ‘한 번 더’ 시도해야 한다. 도저히 더 고칠 원칙이 없다고 생각될 때, 한 번 더 자신을 돌아보고 다듬는 자만이 프로가 된다.
“변화는 소나기처럼 한순간에 찾아오지 않는다. 앞이 보이지 않는 짙은 안개 속을 몇 시간이고 헤맨 듯 서서히 젖는 것이다. 그것이 내가 열정을 ‘서늘한 인내심’이라 부르는 이유다. 좋아하는 것을 하기 위해 좋아하지 않는 것을 더 많이 해 본 사람, 우리가 그들을 프로라고 부르는 이유다”라는 저자의 단언처럼 중요한 것은 변화와 성장을 믿는 태도다. 다만 시간을 이해해야 한다. 좋아하는 수익을 위해 좋아하지 않는 절제를 더 많이 감내해 본 사람, 시장은 오직 그런 사람만을 프로라고 부른다.
프로는 한 번 더 시도하는 자다. 도저히 더 참을 수 없다고 느낀 그 지점이 바로 프로와 아마추어를 가르는 ‘한 번 더’의 시작점이다.
내 광선 검은 “과거는 변한다!”란 문장이었다. 내 마법의 주문은 “현재를 어떻게 사느냐에 따라서”란 말이었고, 나의 반짝이는 루비 구두는 “그러니 미래를 바라보라”란 예언이었다. 과거는 변해, 그러니까 미래를 기억해, 지금을 살아내면서. 과거를 재해석하고 다시 쓰면 미래를 자신의 의지로 만들어 갈 수 있다. 현재를 제대로 살 때, 과거는 틀림없이 바뀐다.
<백영옥, 힘과 쉼>
지금 나를 행복하게 해 주는 것들은 사실 수년 전의 내가 미리 심어놓은 선물이다. 그것은 과거의 내가 지금의 나에게 건네는 가장 따뜻한 위로이며, 그 본질은 귀찮음과 피곤함을 무릅쓰고 나를 위해 견뎌낸 ‘수고로웠던 시간’에 있다. 진정한 위로와 성장은 과거의 내가 지금의 나를 위해 꾸준히 해왔던 것들로부터 온다. 실패마저도 미래의 나를 위한 훌륭한 교본이 된다면 그 또한 선물이다.
저자는 “과거는 변해, 미래를 기억해, 지금을 살아”라면서 우리를 격려하고 다그치면서 너무나도 사랑스럽게 거듭되는 실패나 실수는 필연이라면 위로한다. 결국 선택의 문제다. 어제의 선택으로 오늘의 내가 있고, 오늘 나의 선택으로 미래의 내가 있다는 상상의 나래를 펼쳐본다. 미래의 내가 가장 믿고 의지할 유일한 친구는 바로 ‘지금의 나’다.
원칙은 미래의 당신에게 주는 가장 귀한 선물이다. 거듭되는 실수가 필연이라면, 그 실패를 딛고 지금 원칙을 지키는 행위야말로 ‘미래의 나’에게 건네는 가장 확실한 격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