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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이 서 말이라도 경험으로 꿰어야 보배다.

by 황금지기

아무리 좋은 지식이라도 경험으로 꿰어 쓸모를 만들어야 생존을 위해 실수를 다루는 보배가 된다. 무모함과 대범함을 가르는 선은 원칙에 대한 의지이며, 지켜가는 시간의 합이자 객관적 시선이다. ‘미래의 나’는 ‘현재의 나’ 그가 한 행동의 결과, 이 선이 굵어진다는 건 지혜로워졌다는 의미가 된다. 경청하듯 흐름에 순응하면서, 원칙을 지키면서 단순해져야 단단해지고, 단단해져야 그만큼 단순해진다. 원칙을 지키겠다는 다짐만큼 무게를 가지는 기법은 없으며 심리에 치중할수록 객관적 시선으로 숲을 보게 된다.




‘애써 지어내지 말라! 우선은 보는 법을 배우는 것이 목표다. 그런 다음 연필이나 펜으로 눈에 보이는 대상을 묘사하라.’

<예술가가 되는 법 – 제리 살츠>

기초를 다지는 건 단순한 이론을 포함하여 보는 법을 배우는 과정이다. 그다음 기술을 익히다 보면 제대로 그릴 수 있는 것처럼, 인내심을 가지고 그려지는 파동을 아이처럼 바라보는 게 우선이다. 있는 그대로 바라보다 보면 (바라보는 그 자체가 무아다) 기술에 깊이가 더해지게 되면서 지식은 비로소 지혜로 향한다. 투자자는 누구나 요란스럽게 추구하는 지식의 단계를 넘어 누구나 쉽게 닿을 수 없는 지속 가능성을 담보하는 지혜로 천천히 또박또박 가야 한다. 아는 것과 그것을 행동하는 것은 완전히 별개이며, 지식이 서 말이라도 경험으로 꿰어야 지혜가 된다. 지혜롭지 못하고서는 버텨나갈 방법이 없다. 아무리 좋은 지식이라도 경험으로 꿰어 쓸모 있게 만들어놓아야 비로소 가치를 더하는 법이다. 지식은 떠벌리기 좋아하고 성급하면서도 탐욕적 성격이 강하면서 복잡하지만, 지혜는 단순하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지식은 다수의 몫이지만, 지혜는 부처럼 소수의 몫이다.




시장에서의 무모함은 끝이 보이지 않는 터널 속 무능함으로 이어지고, 대범함은 대단함으로 터널을 벗어나 세상과 마주하게 한다. 투자자에게 있어 무모함과 대범함을 가르는 선은 원칙에 대한 의지이며 원칙을 지켜가는 시간의 합이다. 시간이 더해질수록 가르는 선은 굵어진다. 어떤 대상에 마음이 쏠려 매달리는 걸 의미하는 집착(執着)하는 마음이 인간의 본성이고, 원칙을 지키기 위해서는 집착하는 마음을 내려놓아야만 하기에 좀처럼 지켜지지 않는 것이다. 투자의 왕도는 원칙을 지키는 것이고, 원칙을 지킨다는 건 방하착(放下着) 즉 집착하는 마음을 내려놓는 것이기에 투자는 온갖 번뇌와 갈등, 스트레스, 원망 등으로 엉키게 되는 인생사 실타래를 풀어내는 도구와도 같다. 집착하는 마음을 내려놓는 훈련이 바로 투자라고 여기면 편하다. 그려지는 파동이 보물선의 위치를 표시한 지도라면 나침반은 자신만의 철학, 즉 인문학적 소양의 깊이다. 깊이 들어갈수록 심연의 고요함에 여유로워지고, 길이를 더해갈수록 나침반은 선명해지고 단순함에 명료해진다. 아무리 훌륭한 기법도 각자의 심리에 녹아들지 못하면 한낱 복잡함일 뿐인 것을, 그렇게 투자의 신은 자신을 스스로 돕는 자를 도울 뿐인 것을, 자신을 돕는다는 게 자기 성찰인 것을 그렇게 투자는 끊임없이 자신을 되돌아보게 해 주는 고마운 도구다.




시장에서 상대방을 알 수도, 알 필요도 없을뿐더러 개인투자자는 상대방이 잘해서가 아니라 자충수로 무너지는 경우가 대부분이기에 ‘얼마나 실수를 적게 하느냐!’로 승부가 결정된다. 매매 횟수에 따른 필연적 실수를 얼마나 짧게 자를 수 있느냐로 결정되는 게 개인투자자이기에 기법의 쓸모는 승부에 미치는 영향이 적을 수밖에 없다. 운과 실력의 경계가 모호한 시장에서는 실수의 경중과 장단에 따라 생존이 결정된다. 생존을 위해 실수를 다루는 법이 바로 투자 심리다. 누구나 자꾸만 반복하게 되는 ‘뇌동과 추격’은 심리의 문제이며 데이트레이딩에서 대부분의 실수는 여기에서 나오며 그 근본 원인은 (아무리 해도 절대 쉽게 고쳐지지 않는) 인간 본성 즉 뇌의 구조적 문제이다. 뇌 구조를 화학적으로 바꿀 수는 없는 노릇이니 자신을 스스로 돕는 물리적인 노력으로 줄여갈 수밖에 없기에 투자의 어려움은 인간 태생의 문제다. 인간 본질의 문제이기에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고, 자기 안의 문제이기에 체계적인 훈련과 같은 도움을 받을 수는 있겠지만, 결국 자신만이 해결할 수 있는 문제다.




나는 그들이 독서에만 열중한 워런보다 성공하지 못할 거라고 자신 있게 예견한다. 지혜를 원한다면 책상에 궁둥이를 붙이고 앉아라. 그게 지혜를 부른다. (중략) 나는 지금껏 끊임없이 독서를 하지 않는 현명한 사람은 본 적이 없다. 단 한 명도, 워런이 얼마나 책을 읽는지 알면 깜짝 놀랄 것이다. 내가 얼마나 읽는지 알아도 마찬가지고, 우리 아들은 나를 발이 달린 책이라고 놀린다.

<찰리 멍거의 말들>

육체와 똑같이 불쑥불쑥 솟아나는 터무니없는 확신이나 어느 순간 온 마음을 움켜쥐어 버리는 자만심과 같은 (마치 숲속에 수시로 끼는 안개처럼) 마음에도 때가 끼기에 매일 아침 세수하듯 머릿속도 씻어주어야 한다. 주기적으로 목욕탕에 가는 것과 같은 깊이 있는 사색이 필요하다. 그냥 걷는 게 건강을 위한 최고의 사색이라면, 그냥 책을 읽는 게 머릿속 때를 벗겨내는 최고의 방법이다.




저마다 삶은 자기 자신을 향해 가는 길이다. 시도하는 길이자, 좁고 긴 길이다. 지금껏 누구도 완전하고 온전하게 자기 자신에 이른 적은 없다. 그런데도 누구나 그 길을 끝까지 가려고 애쓴다.

<데미안>

등락하는 파동은 물줄기가 굽이치는 것처럼 끊임없이 변한다. 인간은 자연에 던져진 하나의 작은 돌처럼 자연의 한 일부에 불과하기에 투자자로서의 인간은 유리한 방향으로 그저 돌을 던지듯 반복하면서 변화에 순응할 줄 알아야만 성장하는 존재가 된다. 투자자가 지식만으로는 근접할 수 없는 투자의 세계를 제대로 받아들이는 방법은 자기 내면으로 끊임없이 걸어 들어가 주관의 껍질을 벗고 객관적 시선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이다. 투자자에게 있어 객관적 시선을 갖는다는 건 지혜로워졌다는 의미다.




너무나도 인간적이기에 감정의 부추김을 견디지 못해 막연한 기대와 혼자만의 망상, 한방·기도로 대표되는 뇌동만 하지 않으면, 너무나도 사회적이기에 나만 외톨이가 될 것 같아 붙이는 자리에서 추격만 하지 않는다면 크게 잃기도 힘들 것이고 그렇게 생존한다면 버티는 과정에서의 깨침은 시장의 운과 인연이란 걸 맺게 될 것이다. 손익과 돈이 되지 않는 시간과 상관없이 ‘원칙을 지키면서 반복하고 있는가?’ 그것만으로도 당당하게 ‘내 시작은 미약하지만’이라고 홀로 굳건할 자격이 충분하다. 그렇게 자신만의 투자 묘목이 심어지기만 하면 묘목은 시간 속에서 ‘내 나중은 창대하리라’라는 거목으로 성장할 것이다. 긍정적으로 달라진 ‘미래의 나’를 만나게 하는 건 오직 ‘현재의 나’ 그가 하는 행동이다.




어리석은 사람은 인연을 만나도 몰라보고, 보통 사람은 인연인 줄 알면서도 놓치고, 현명한 사람은 옷깃만 스쳐도 인연을 살려낸다.

<피천득>

투자의 세계에서 뜻을 가지고 치열한 자기 검정과 확신의 과정을 통해 세운 원칙이 인연인 줄 알면서도 자꾸만 부러뜨리고, 놓치고, 다시 세우기를 반복하는 게 보통의 투자자다. 현명한 사람이 인연을 살려내듯 보통의 투자자는 현명함에 이르기 위해 돈이 되지 않는 시간을 견뎌야 하는 법이다. 원칙을 지키는 건 관점을 일관성 있게 유지한다는 것이고, 일관성은 원칙이란 틀의 확대 재생산을 보장하므로 지키면서 버티는 시간만큼 지속 가능성은 담보된다. 지키면서 단순해져야 (심리가) 단단해지고, 지키면서 단단해져야 (반복이) 단순해진다. 집착·욕구·생각을 극복하면서 지킨다는 게 실로 어려운 인간의 뇌 구조, 투자는 자신에게로 떠나는 긴 여행이다.




듣기만 하는 게 아니라 상대방이 전달하고자 하는 말의 내용은 물론 그 내면에 깔린 동기나 정서에 귀를 기울여 듣고 이해된 바를 상대방에게 피드백해 주는 게 경청이다. 투자자에게 있어 경청은 흐름에 순응하는 것과 같다. 공장에서 관리자로 근무했을 때의 일이다. 설비로 인한 불필요한 M/H를 줄이기 위해 추가 설비를 구상하고 있을 때 어느 외국인 작업자가 기존 설비에서의 단순한 변화를 제안했고 (결과적으로는 누구나 쉽게 알 방법이었지만, 아무도 시도하지 않은) 그것으로 인해 추가 설비보다도 유용하게 생산성을 향상했던 경험을 통해 전체를 좌우할 가장 중요한 단 한 가지를, 경청을 통해 얻을 수도 있음을, 자기 고집·확신을 버릴수록 공감하게 되고 경청의 힘을 가질 수 있음을 깊이 느꼈다. 경청은 고개 숙일 줄 아는 익어감의 명백한 증거이자 타인의 경험을 통해 배움으로써 실수의 여지를 줄이는 너무나도 효율적인 삶의 비법이다. 경청도 자신의 욕구·생각을 비운다는 것이고, 타인의 리듬에 자신을 맞춘다는 의미이기에, 투자자는 자신을 비워내는 과정이 필연이기에 경청은 흐름에 순응하는 기술을 훈련하는 것과도 같다고 보아야 한다. 투자는 필연의 복잡계이기에 누군가에게서 뜻밖의 자기모순을, ‘미래의 나’를 위한 가장 중요한 한 가지를 발견할 수도 있게 된다. 경청할 수 있다면, 누군가가 진심으로 말해 줄 수 있다면 말이다.

라디오에서 들리는 이승열의 「날아」 노랫말을 경청한다. ‘거기서 멈춰 있지 마. 그곳은 네 자리가 아냐. 그대로 일어나 멀리 날아가기를. 얼마나 오래 지날지 시간은 알 수 없지만, 견딜 수 있어. 날개를 펴고 날아.’ 날개를 펴고 싶다. 그렇게 날개를 펴고 날고 싶다. 견딜 수 있다. 이제는




모건 하우절이 「불멸의 법칙」이란 책에서 변하지 않는 것들에 주목했듯 투자자는 우리 마음이 근본은 쉽게 변하지 않으면서도 수시로 변하는 마음의 모순에 주목해야 한다, 대부분의 마음은 믿을 게 못 되고 또한 투자는 어려울 수밖에 없다는 전제하에 시장에서 변하지 않는 진리인 ‘원칙을 세우고 지키면서 버티는 시간만큼 복리의 마법이 누릴 수 있다는 것’에 확신을 가지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원칙과 그것의 반복 그리고 누적되는 시간의 합으로 소수만이 건너가는 징검다리를 건너갈 수 있으므로 투자자에게 원칙이 부러지면 그걸로 매번 끝이다. 원칙이 자꾸만 부러지는 건 아직 성숙하지 못한 감정과 자주 엉키기 때문이다. 투자자에게 있어 무슨 일이 있더라도 원칙을 지키겠다는 그 다짐만큼 무게를 가지는 기법은 없다.




대개의 투자자는 똑같은 크기의 동그라미가 반 정도 겹치는 그림을 그려놓고 그 합집합이 투자라고 생각한다. 한쪽은 기법, 반대쪽은 심리라고 말이다. 하지만 시장에 머무는 시간과 비례해서 스스로 기법의 동그라미를 작게 그리게 된다. 그보다 심하게 커다란 직사각형에 기법이라고 적고 그 안에 동그라미를 아무렇지 않게 그려놓고 심리라고 적는 건 아직 사막의 신기루를 믿기 때문이다. 내공이 더해갈수록 아주 커다란 직사각형에 심리라고 적고 그 안에 작은 동그라미를 그려놓고 기법이라 적게 된다. 직사각형이 커다랄수록 상수이고, 커다란 직사각형이 바로 투자 심리다. 시장에 머무는 동안 모든 투자자는 언제나 바둑에서의 미생, 완생이 아니기에 공격보다는 수비에 치중해야 한다. 심리에 치중할수록 좀 더 멀리에서 객관적 시선으로 숲을 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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