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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타(利他)’는 그려지는 파동 즉 현상이다.

by 황금지기

현상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게 해 주는 마음이 이타심이며 투자는 그 마음을 일깨우는 스승이자 내면으로 향하는 여행의 안내자다. 이타심은 선량함, 선량한 만큼 지혜로워지고, 유연해진다. 속도를 늦추고, 천천히 길게 보면서 조화로움을 찾아가는 게 지혜로움이다. 투자 수익은 감성노동의 대가이므로 복잡함을 극복한 단순함은 편안함으로 향한다. 꿈꾸는 건 자유지만, 이루는 건 이성에게 주어진 신성한 의무다. 파동은 자주 등락하기에 자주 챙기면서, 지키면서, 지속해서 가야 한다. 끝날 때까지 갈 길이 멀다.




아무리 곱씹어보아도 남을 위하거나 이롭게 하는 마음을 뜻하는 이타심(利他心)은 투자자에게 있어 토양과도 같다. 사람이 남을 위한다는 건 그만큼 자기 안의 욕구를 줄인다는 의미이고, 자신에게로 향하는 욕구가 바로 생각이기에 투자자가 흐름에 자신을 맞추어가기 위해서는 욕구·생각을 비워가는 자신과의 치열한 사투가 필연적일 수밖에 없다. 투자자에게 있어 ‘이타(利他)’는 그려지는 파동 즉 현상이다. 현자들은 투자를 심리 게임이라 하고, 투자의 적은 자기 자신이라고 하지 않던가! 마음이 비워질수록 흐름과 닮아가게 되고 그렇게 ‘순응하는 나’로 완전히 비워지게 되면 비로소 본래 인간의 존재 이유인 건너가는 사람이 된다. 이타심의 과정을 거치면서 ‘너무나도 낯선 나’를 만나면서, (비우게 하는 건 이타심이지만, 채워지는 것들은 자신에게로 향하기에) 이기심으로 완성되는 게 투자 세계에서의 부의 과정 같다. ‘이기심’에서 ‘이타심’으로, 주관에서 객관으로 건너가기 위한 자신만의 노력에 대한 대가가 부다.




자신을 고찰함으로써 생기는 기쁨이 자기애 또는 자기만족이라고 불린다. 자기만족이란 인간이 자신과 자신의 활동 능력을 고찰하는 것으로부터 생기는 기쁨이다.

<에티카 – 스피노자>

스피노자는 자신을 고찰하면서 생기는 기쁨을 자기만족이라 한다. 즉 자신에 대해 만족하는 마음이 나를 사랑하는 마음이라는 말이다.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유능, 역량)과 할 수 없는 것(무능, 무력함)에 대해서 알아가면서 느끼는 기쁨이 자기만족이다. 자기만족에 이르는 길은 자신의 어둠 즉 단점이나 무능, 무기력함과 추함을 고찰하면서 자신을 제대로 이해하면 된다는 의미다. 자신을 잘 이해하기 위해 인문학적 소양이 필요한 것이고, 투자의 적은 자기 자신이기에 자신을 잘 이해할수록 삶에서의 만족도도 높아지게 되고, 투자의 질도 좋아지게 된다. 감정에 휘둘리고, 엉키고, 망가지고, 부러지는 매번 자신의 단점을 발견하는 데에 투자만 한 게 없다. 투자는 마음을 일깨우는 스승이자 내면으로 향하는 여행의 안내자다.




어떤 사람도 존재하고 행동하며 생활하는 것, 즉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것을 욕구하지 않고서는 행복하게 존재하고 선량하게 행동하며, 또한 선량하게 생활하기를 욕구할 수 없다.

<에티카 – 스피노자>

무언가에 대한 강력한 욕구가 행동의 거대한 동력이 되고, 김진명의 「카지노」에서 투자자에게 가장 중요한 덕목이라고 언급한 물과 같은 부드러움과 섬세함을 만드는 형질인 선량함을 지니도록 한다. 투자에서는 흐름에 유연하게 맞춰가는 게 가장 중요하고 그 맞춰가는 마음은 선량함에서 움트기에 무언가를 이루고자 하는 욕구의 치열한 만큼 선량해지게 된다. 선량함은 지혜로움과 맥을 같이 한다. 뒤엉킨 내면을 정돈하지 않으면 지혜로움이 깃들 곳이 없다. 인생이나 투자나 욕망의 성취 과정에서 지혜로워지기에, 성취하지 못하면 욕망의 그물에서 벗어날 수 없기에, 자신의 욕망이 이끄는 걸 성취해야만 마음이 잔잔해지기에 결국 지혜롭게 된다는 것은 (현명해진 사람이) 이기적으로 사는 게 된다. 마음 깊이 자리한 불필요한 것들을 버리고, 필요한 것들을 수시로 꺼내쓸 수 있도록 정돈된 마음 안에 깃든 지혜로운 이기심이야말로 삶에서 얻는 진정한 자기 성취다. 사람은 선량한 만큼 지혜로워지고, 투자자는 선량한 만큼 유연해진다.




‘귀찮다거나, 불편하다거나 더 나아가 자기 주관과 너무 동떨어져서’ 등의 이유로 법규를 지키지 않는 투자자가 과연 자신의 원칙을 제대로 지키겠는가? 악법도 법이다. 그렇게 목숨을 내놓는 것만큼은 아니어도 설령 중간에 아님을 깨달았어도 경기가 끝나기 전까지는 무슨 일이 있어도 원칙을 지켜주어야 하지만, 대부분 투자자는 너무 성급하고 욕심의 크기를 좀처럼 줄이지 못한다. 성급한 만큼 무리하게 되고, 여유롭지 못한 돈의 무게만큼 힘이 들어가는 법, 무리하거나 힘이 들어갈수록 사고의 위험이 커지는 건 상식, 실수의 여지도, 파산의 위험도 커지기에 심리는 더 쪼그라들게 되고 흔들릴수록 악수가 악수를 부르는 악순환의 수렁 속으로 더 깊이 빠져들게 된다. 아무 파동이나 보면서, 아무 생각 없이 복기하면서 반복할 수 있을 만큼의 자기희생, 희생의 크기만큼, 딱 그만큼씩 수렁에서 자신을 건져내게 된다. 속도를 늦추고, 천천히 길게 보면서 조화로움을 찾아가는 게 지혜로움이다.




투자를 불로소득으로 접근하는 인식부터 바꾸어야 한다. 너무 쉽게 접근할 수 있기에, 너무 미약한 상태로, 너도나도 작은 그릇에 커다란 꿈을 담으려는 정서적 착각들로 무작정 달려들지만, 투자는 차갑게 서 있는 운명이란 벽 앞에 당당히 마주칠 수 있어야 하는 거위의 꿈 이상의 치열한 감성노동이다. 체계적인 훈련을 견디고 인문학적 소양을 쌓으면서 사색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게 첫 번째 어려움이고, 자기 검증과 확신으로 세운 원칙은 기다릴 줄 알아야 지킬 수 있다는 게 두 번째 어려움이고, 경험이 누적되면서 기다릴 줄 알아도 맞음과 아님이 거듭되는 확률이기에 단식할 줄 알아야 반복할 수 있다는 게 세 번째 어려움이다. 투자에서의 수익은 꿈을 믿고 자신을 지켜간 고도로 정제된 감성노동의 대가다. 내면 깊숙이 보물과 같이 간직했던 꿈에서 캐내는 보물이다.




사공이 많으면 배는 산으로 간다. 투자자의 마음 안에 원래 이 감정, 저 감정들이 아우성, 원래가 사공이 너무 많은데 거기에다 내면에서 정제되지 못한 어설픈 기법들도 사공 노릇을 한다. 원칙으로 노를 저으면서 강물 따라 바다로 흘러가지 못한 채 어느 산기슭을 어슬렁거리면서, 부러진 원칙들을 회상하면서. 그렇게 다짐을 반복하면서 강기슭을 어슬렁거리는 삶이 지속해서 거듭되는 게 평범한 자들의 투자다. 손의 확신은 치열함의 결과이기에 손이 감각이 지니는 확신이 아닌 머리의 터무니없는 확신에 이끌리고 된다. 손에 확신이 없다는 건 손에 확신을 가질 만큼 원칙을 지키면서 치열하지 않았다는 증거다. 단순한 원칙을 단순하게 지켜가는 그 단순함은 치열함의 결과다. 치열한 노력 없이는 단순해질 수 없다. 복잡계인 사장에서는 단순해지지 않고서는 절대 반복할 수 없다. 투자를 기대수익과 위험의 상관관계를 이해하고 그사이 어디쯤 자신의 원칙을 세우는 일부터 시작하다 보면 시장을, 그보다 더 위험한 자신을 알기 위해서 사색해야 함을, 위험을 피하려면 기다려야 함을, 위험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단식해야 함을 알게 된다. 시장과 자신을 알아가면서, 성급함은 무뎌지고, 욕심은 비워지면서, 단순해지면서 그렇게 원칙은 뿌리를 내리게 된다. 단순해질수록 정교해진다. 복잡함을 극복한 단순함은 편안함으로 향한다. 편안함은 반복을 수월하게 한다. 기대수익과 위험은 정비례하며 시장 궁극의 위험은 변동성이고 변동성은 늘 반복된다. 실력은 위험을 알고 피하면서 즐길 줄 아는 것이기에 실력이 갖춰질수록 변동성은 위험보다는 기회 쪽으로 기울게 된다.




제대로 깊이 알수록 더욱 조심하게 되는 법이다. 깊이 알고 있을수록 위험을 더욱 경계하기에 초심자의 행운은 드물게 되고, 운이 자신에게 작동하도록 만드는 실력이 쌓이는 과정이 너무나도 더디기에 (돈이 되지 않는 시간을 극복하지 못하고) 아무렇게나 하게 되면서 제자리를 맴돌게 된다. 원칙을 부러뜨리지 않으면서, 알기에 두려운 마음을 애써 외면하지 않고 거듭해서 두려움을 원칙 아래서 용기로 바꾸어 나가기란 그렇게 쉬지 않기에 투자는 어려운 것이다. 투자자는 원칙이란 나무 아래서 마음이 아무리 보채어도 쉬엄쉬엄 쉬었다 가야 하지만, 대개는 마음의 성급함을 잘 다루지 못하기에 원칙 나무도 잘 자라지 않을뿐더러 절망의 계속을 벗어나려 하지만, 욕심에 이끌려 얼마 가지도 못하고 왔던 길을 되돌아 다니는 미궁에 갇히게 된다. 자꾸만 감정에 휩쓸려 스스로 갇힌 미궁을 벗어나기란, 알면서도 감정을 극복하기란 절대 쉽지 않다. 마음은 자꾸만 다음을 다짐하지만, 매번 부딪치는 냉혹한 현실 앞에서 다짐을 부러지기를 거듭한다. 그렇게 성장하지 못한 채 어쩌다 어른이 된 투자자가 차고 넘친다.




인간이 꿈꾸는 건 자유지만, 꿈을 이루는 건 이성에게 주어진 신성한 의무다. 경제적 자유를 꿈꾸는 건 자유지만, 시장에서 그 자유는 보통 방종으로 흐른다. 투자자의 자유라는 권리에는 고점 매도와 저점 매수를 위한 기다림이란 의무가 따르고, 손실을 짧게 끊어내야 하는 책임이 따른다. 의무와 책임이 정서적으로는 쉽게 다가오지만, 돈과 심리의 동일 선상에서 일렁이는 감정의 파도를 다스리기는 절대 쉽지 않다. 다 가질 수는 없는 법이고 다 먹을 수도 없는 법, 원칙마다 먹을 수 있는 자리가 정해지는 법이니 선택과 집중이어야 그나마 의무와 책임이 수월해진다. 다 좋을 수는 없는 법이니 원칙을 지킨다는 건 선택하는 것이고 나빴을 때 책임지는 것이다. 보고만 있어도 마냥 좋은, 아무리 보아도 예뻐 보이는, 그냥 같이 있으면 좋은 그런 사람을 만나고 싶다. 파동이 그랬으면 좋겠다.



“이기는 게 정의야. 이기려면 강해야 하고, 약해빠진 놈들이나 흥분하고 날뛰다가 지는 법이야.”

<영화 야수 명대사>

데이트레이딩 관점에서 시장은 자주 등락하다가 때때로 추세가 나오고 가끔 기도에 응답한다. 파동은 자주 등락하기에 자주 챙김이 버팀의 원천이 된다. 자주 성급할수록 자주, 자주 욕심낼수록 자주 엇박자가 나게 된다. 자주 진입할수록 자주 챙김이 필연이니 힘듦의 이유가 된다. 때때로 추세가 나오기에 추세만 바라보면 때때로 좋겠지만, 자주 아쉬움과 후회다. 거기에다 가끔 응답하는 한방과 기도는 무슨 말이 필요하겠는가? 그런데도 마음속 욕망의 잔재들이 만들어가는 어이없는 현실들이 너무나도 쉽게 목격된다. 자주 흥분하고, 자주 집착하면서 스스로 자멸하는 군상들, 산 중턱쯤에 멀찌감치 서서 잃지 않고 살아남는 게 시장의 정의이고, 살아남으려면 이겨놓고 쳐야 한다. 이겨놓고 치기 위해서는 기다릴 줄 알아야 하고, 흥분하고 날뛰지 않기 위해서는 단식할 줄 알아야 한다.




주님의 천사가 다시 그를 흔들면서, “일어나 먹어라. 갈 길이 멀다”라고 말하였다.

<열왕기 19.7>

신이 주신 선물인 인간의 자유의지에 책임이 따르지 않으면 방종이 되고 인간으로 사는 삶은 피폐해지는 법이다. 때론 열심히, 때론 나태해지기도 하고, 때론 잘 참다가, 때론 조급해지기도 하지만, 끝없이 이어지면서 끝나지 않을 것만 같은 인생이지만, 되돌아가고 싶은 자리에서 보면 너무나도 짧은, 챙기는 것도, 흘리는 것도 별처럼 많을 수밖에 없는 게 인생이기에 체계적인 훈련과 인문학적 소양을 통해 책임을 배워야 한다. 시장에서 책임지지 않는 자유의지는 뇌동이나 추격, 한방과 기도, 막연한 기대로 작동하기 마련이고, 이러한 방종에 대한 대가는 물론 돈이다. 투자자의 의무와 책임을 다하는, 원칙을 지켜가는 수고로운 감성노동의 대가 또한 돈이다. 자유의지에는 반드시 책임이 따르는 법, 인생사도 그러하지만, 책임을 망각하면 비참할 정도로 인생을 허비할 뿐인 곳이 바로 시장이다. 막연한 이끌림을 통제하면서 법(원칙)을 지키려는 의지 그 준법정신은 습관이 된다. 독서를 지속하는 것도, 원칙을 지속해서 지키는 것도 습관이다. 지키면서, 지속해서 가야 한다. 끝날 때까지 갈 길이 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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