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을 벗어날 때 실력은 잘 드러난다.

by 황금지기


내일 당장 어떤 태풍이 닥칠지 모르는 것이 우리네 삶이기에, 끊임없이 자신을 낮추어야 한다. 기계 유압 분야의 최고 전문가로 평생을 살아온 80대 노인은 사고로 한쪽 팔을 잃었다. 그러나 드라이버조차 쥐기 힘든 한 손만으로도, 그는 수십 년의 경험을 통해 기계 문제의 핵심을 예리하게 꿰뚫어 보았다. 인생이란 이토록 무상하다. 영원할 것 같은 번영도 예기치 못한 지점에서 꺾이기 마련이다. 아무도 미래를 알 수 없다는 신의 완벽한 평등 앞에서, 인간이 부릴 수 있는 손쉬운 지혜는 자만하지 않는 것이다.


통제할 수 없는 외부 변수들은 지금도 호시탐탐 우리를 무너뜨릴 기회를 엿보고 있다. 벼가 익을수록 고개를 숙이는 이유는 그것이 자연의 순리이자 제대로 영글었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투자자 역시 유혹의 총구를 피해 포위망을 뚫고 계속 나아가기 위해서는 거북이처럼 더 낮게 엎드려 포복해야 한다. 시선을 타인이 아닌 오직 자신에게로 향하고 낮게 엎드리는 것, 그것이 버티는 투자의 본질이다.


시장이 좋을 때는 운에 가려 실력이 잘 드러나지 않는다. 하지만 정상이 비정상으로 기울수록 투자자의 실력은 가감 없는 알몸을 드러낸다. 손실이라는 혹독한 겨울을 지날 때 비로소 그가 진짜 실력자인지, 아니면 벌거벗은 임금님이었는지가 선명해진다.


실력은 비바람이 몰아칠 때 증명된다. 실력은 수익의 크기보다 손실의 파고를 넘는 태도에서 완성되기 때문이다.




”동전을 던져서 앞면이 나온 비율이 ‘강도’이고, 동전을 던진 횟수, 즉 표본의 수가 ‘중요도’에 해당한다…, 사람들은 통계학 이론을 따르지 않는다. 사람들은 증거의 ‘중요도’보다 ‘강도’를 훨씬 더 중시하는 경향이 있다…, 둘 다 높으면 확실하다고 볼 수 있고, 둘 다 낮으면 타당성이 부족하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나머지 두 경우에는 우리가 오판할 위험이 있다…, 사람들은 증거의 ‘중요도’보다 ‘강도’를 훨씬 더 중시하기 쉽다는 점을 명심하고, ‘중요도’를 과소평가해 오류에 빠지는 일이 없도록 유의해야 한다.“

<마이클 모부신, 통섭과 투자>


눈에 쉽게 보이는 강도는 우리를 성급하고 협소하게 만들지만, 마음으로 읽어야 하는 중요도는 우리를 전체로 안내한다. 투자가 도박보다 압도적으로 유리한 이유는 매번 판돈을 걸지 않아도 되는 진짜 자유와 누구의 눈치도 볼 필요 없는 특권이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내면의 성화를 이기지 못한 채 이성과 돈을 동시에 잃는 악순환에 빠진다. 인간의 심리는 먼 미래의 큰 보상보다 당장 눈앞의 작은 보상을 선호하도록 설계되었기 때문이다.


이 본능적 한계를 극복하는 것이 바로 깨달음의 비탈길을 오르는 첫걸음이다. 스트레스가 뇌동매매를 부르고, 마음대로 하고 싶은 욕구가 유혹을 키울 때 우리를 지켜주는 것은 여유롭고 덤덤한 심리다. 지독하게 떨쳐내기 어려운 본성을 거슬러 현상 앞에 담담해져야만 지속할 확률을 얻는다.


남다름은 반복이 주는 보상이다. 특별함은 멈추지 않고 지속해 온 시간의 결과다. 본능을 따르는 것은 평범함의 길이지만, 본능을 거스르는 반복은 특별함의 길이다.




”주가가 내재가치가 이미 반영되어 있는 편이라서, 기대 이상으로 좋은 실적이 발표되더라도 주가는 별로 상승하지 않는다. 그러나 시장의 기대를 충족하지 못하면 주가는 급락한다. 기대를 충족할 확률이 높지만, 기댓값은 마이너스다.“

<마이클 모부신, 통섭과 투자>


투자자는 단순히 맞힐 확률에 매몰되지 않고, (이익 확률 × 예상 이익)에서 (손실 확률 × 예상 손실)을 뺀 ‘기댓값’을 최선의 셈법으로 삼아야 한다. 아무리 유리한 방향의 파동이라도 이격이 과도하게 벌어지면 기댓값은 급격히 낮아지며, 이는 곧 조정의 위험이 이익의 기회를 압도함을 의미한다.


자본주의 파동은 우상향하지만, 그 내부의 등락은 확률의 법칙을 따른다. “등락의 관점에서 반토막 우량주는 확률적이고, 추세의 관점에서는 가는 방향에 관성이 작용한다는 것 또한 확률적이다.” 기대수익 > 위험이란 공식대로 매매하기 위해서는 종목과 섹터라는 좁은 시야를 벗어나 지수와 심리라는 거시적인 관점에 치중해야 한다. 지엽적인 수상전에 집착하는 것은 실수의 여지가 크고 위험을 간과하기 쉽지만, 지수와 심리를 읽어 전체적인 ‘두터움’을 지향하는 포석은 투자자에게 커다란 여유의 공간을 제공한다.


파동의 진행 정도와 기댓값은 반비례한다. 현상이 눈에 확연히 들어올 정도로 선명해졌을 때, 역설적으로 기댓값은 바닥을 치고 위험은 최고조에 달한다. 대중의 눈에 선명해진 자리는 이미 초기 진입의 기회가 사라진 곳이다. 보이지 않는 손이 움직이는 시장에서 대다수의 수상전에 휘말리지 않고 살아남는 비결은, 선명함의 유혹을 뿌리치고 기댓값이 높은 초기 구간을 선점하거나 그렇지 못했다면 과감히 보내 줄 아는 절제에 있다.


선명할수록 위험은 커지고, 기댓값은 진행 정도와 반비례한다. 지수와 심리의 두터움을 지향하는 포석을 항상 염두에 두는 투자자는 마이너스 기댓값의 함정을 피하고 여유로운 승자의 길로 들어선다.




”주식시장을 복잡계로 보는 투자자는 두 가지 인식의 함정에 빠지지 말아야 한다. 첫 번째 함정은 모든 결과에 대해 원인을 계속 탐색하는 행위다. 작은 변화들이 큰 변화를 유발할 수 있다. 이런 임계점이 존재한다는 것이 복잡계의 전형적 특성이다. 따라서 원인과 결과가 언제나 쉽게 연결되는 것은 아니다…, 두 번째 함정은 시장 자체를 이해하려 하기보다 개별 종목에 집착하는 행동이다…, 시장을 이해하려면 시장이 복잡계라는 점을 알아야 한다.“

<마이클 모부신, 통섭과 투자>


저자는 ‘이질적인 개별 요소를 분석하는 것만으로는 복잡계의 전체적인 성질과 특징을 이해할 수 없다. 이런 시스템들은 비선형적이며, 부분의 합이 전체와 같지도 않다. 따라서 원인과 결과를 간단하게 설명할 수 없다’라고 강조한다. 시장은 인간이 다 알 수도, 완벽히 통제할 수도 없는 거대한 유기체임을 인정하는 것에서 진정한 투자가 시작된다.


논리로 시장을 굴복시키려 파고들수록 생각은 엉키고, 생각이 엉킬수록 투자자가 실제로 통제할 수 있는 심리적 영토는 좁아질 뿐이다. 물속에서 살아남으려는 자가 뜨기 위해 허우적거릴수록 깊이 가라앉듯, 투자 역시 흐름을 타기 위해선 먼저 몸에서 힘을 빼는 법을 배워야 한다. 감정이 개입할수록 원하지 않는 곳에 과도한 힘을 주게 되고, 그 뻣뻣한 긴장은 시장의 유연한 파동과 불협화음을 내며 파멸의 전조가 된다.


단순함은 복잡함의 끝에서 더 이상 뺄 것이 없는 도달점이다. 시장의 본질을 꿰뚫어 볼 만큼 치열하게 사선을 넘나든 자는 역설적으로 지속해서 고요하다. 그 평온함이 복잡계를 이기는 유일한 무기다.




공자는 ‘진정한 관계는 자기 자신과의 관계에서부터 시작된다’라고 했다. 나를 다스린 후에야 비로소 타인을 다스릴 수 있다는 수기치인(修己治人)의 원리는 투자의 세계에서도 엄격히 적용된다. 자기 자신조차 이해하지 못한다면, 그보다 훨씬 복잡한 시장을 이해하려 드는 것은 무모한 욕심이다. 투자자는 반드시 자신의 뒤에 서 있는 그림자를 마주해야 한다. 그 어두운 내면의 그림자를 정면으로 응시할 때 진정한 성장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누군가를 진정으로 지켜준다는 것은 앞에서 방패가 되어 가로막는 것이 아니라, 뒤에 서서 묵묵히 밀어주는 것이다. 자신을 대할 때도 마찬가지다. 그림자 속 화초처럼 과잉보호해서는 안 된다. 앞에서 요란하게 위로하기보다는 뒤에서 조용히 공감해 주며, 자신을 지켜주는 가장 단단한 그림자가 되어야 한다. 글을 쓰는 반복적인 행위는 바로 이 그림자와 대화하며 마음을 단단하게 하는 고귀한 훈련이다. 나를 알아가는 것보다 마음을 더 단단하게 해 줄 비법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치장하기 바쁜 ‘생각하는 나’는 언제나 앞서 나가려 하지만, 고요한 ‘바라보는 나’는 그림자가 되어 뒤에서 현상을 있는 그대로 관찰하라고 속삭인다. 세상 그 누구도 완벽한 내 편이 되어줄 수 없으나, 죽음마저 함께할 나의 그림자만큼은 배신하지 않는다.


그림자와 마주하는 것은 가장 든든한 아군을 얻는 결합이다. 자주 고개를 돌려 그 그림자와 마주할수록 투자자는 현명해지고, 그 현명함은 시장의 파동 속에서 흔들리지 않는 뿌리가 된다.




투자의 시선은 이중적이어야 한다. 이익은 멀리 보아 그 결실을 기다릴 줄 알아야 하고, 손실은 가까이 보아 그 상처가 깊어지기 전에 다스려야 한다. 큰 흐름을 보아야 성공의 문에 닿을 수 있고, 작은 손실의 징후에 민감해야 시장에서 도태되지 않는다. 본래 취약한 인간의 마음은 손실이 임계점을 넘는 순간 감정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이성을 잃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나치게 멀리만 보면 손실 통제력이 무뎌지고, 너무 가까이만 보면 이익의 싹을 일찍 잘라 버리게 된다. 결국 투자의 성패는 직사각형의 거시적 흐름과 동그라미의 미시적 흐름을 조화롭게 엮어내는 '투자하는 마음'에 달려 있다.


파동을 억지로 이해하려 애쓰지 마라. 대신 파동 그 자체를 있는 그대로 존중하라. 존중한다는 것은 내 판단을 앞세우지 않고 시장이 그려내는 궤적을 겸허히 받아들이겠다는 선언이다. 파동은 인간의 지성으로 다 헤아릴 수 없는 불확실성을 먹고 자라기에, 머리로 분석할 대상이 아니라 마음으로 수용해야 할 대상이다. 치열한 학습을 통해 겨우 알 수 있는 것은 주가의 위치라는 대략적인 윤곽과 유리한 방향성뿐이다. 하지만 감정이 앞서면 이 유일하고도 소중한 등불마저 꺼져버리고 만다.


파동은 함께 굽이치며 흘러가야 할 강물이다. 파동이라는 강물을 존중하며 그 흐름에 몸을 실을 때, 시장은 저항 없는 부의 항로를 펼쳐 보일 것이다.




어떤 일이든 숙련될수록 만족도는 높아지기 마련이다. 그러나 '잘함'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절대적인 시간이 필요함에도, 마음만 앞선 성급함은 늘 문제의 문어발을 사방으로 뻗게 만든다. 추락하는 것에는 날개가 없다는 말처럼, 심리가 한 번 흔들리면 하나의 문제는 순식간에 열 개의 혼란으로 번져나간다. 추락의 공포에 감정마저 더해지면 속절없이 바닥으로 곤두박질칠 뿐이다.


진정한 만족은 자신이 투자한 시간의 깊이와 경험의 두께에 비례한다. 그러므로 지금 당장 흔들릴지라도 끝내 버텨내며 시간을 쌓아가는 것만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이다. 생각은 찰나에 변할 수 있지만, 그 생각을 행동으로 증명해야 하는 몸이 변하는 데는 인고의 시간이 필요하다. 하지만 그 힘든 과정을 뚫고 어려운 경험을 거듭해 낸다면, 그 결과에 만족하지 않기가 오히려 더 어려울 것이다. 신은 인간에게 ‘한 번 더’라는 카드를 영원히 허락하지 않았다. 인생은 되감을 수 없는 후회와 아쉬움의 연속이기에, 지금 만족할 만한 최선을 운명에 선물하지 않는다면 원하는 미래의 선물 또한 결코 받을 수 없다.


만족은 버텨내는 시간으로 만개한다. 후회는 누구나 할 수 있는 평범한 선택이지만, 만족은 그 고통스러운 과정을 통과한 자만이 누릴 수 있는 비범한 몫이다. 인생은 그렇게 아무나 만족할 수 없도록 정교하게 설계되어 있다.




”친구여, 자네에게 말해 두겠는데 나는 감수성이 벅차올라 더 이상 주체하기 힘들어질 때 이런 사람들을 보면 속 시끄러운 온갖 것이 전부 잦아들곤 한다네. 행복한 마음으로 평온함 속에서 자신이 처한 협소한 범주의 생활을 꿋꿋이 해나가며 하루, 또 하루를 근근이 버티며 사는 사람들, 그리고 낙엽이 떨어지는 것을 보면 겨울이 오리라는 것 외엔 아무 생각도 하지 않는 그런 사람들을 보면 말일세.“

<괴테,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투자자의 마음 또한 현재의 계좌 형편이 어떠하든, 시장의 소음이 어떠하든 그저 주어진 하루하루의 원칙을 묵묵히 채워가면 그뿐이다. 인생과 투자의 여정에서 길이 막히는 것은 예기치 못한 불행이 아니라 성장을 위한 필연적인 과정이다. 진정한 비극은 막다른 길을 만난 사실이 아니라, 그 앞에서 주저앉아 신세를 한탄하거나 ‘다시 시작할 용기’를 내지 못하는 굳어버린 마음에 있다.


시장에서 저지르는 치명적인 실수는 오판한 행동 그 자체보다, 그 실수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지 못하는 비뚤어진 마음에서 비롯된다. 마음에서 비롯되는 실수가 진짜 실수다. 마음이 비뚤어져 있으면 실수는 그저 고통스러운 실패의 반복일 뿐, 다음 단계로 나아가는 실천의 증거가 되지 못한다. 투자의 핵심은 내가 틀렸음을 감지한 순간, 과감히 돌아설 줄 아는 ‘결단의 용기’에 있다. 잘못을 정직하게 인정하고 덤덤히 발길을 돌려 다시 원칙의 반복 궤도로 복귀할 수 있다면, 그 어떤 막다른 길도 더 이상 당신을 가두는 절벽이 되지 못한다.


마음의 실수가 계좌의 파멸을 부르는 법이다. 낙엽이 지면 겨울이 오듯, 원칙을 어기면 손실이 오고, 손실이 오면 멈추면 그만이다.




“우울한 기질은 완전히 게으름과 같습니다. 우리는 천성적으로 게으름을 피우는 경향이 있으니까요. 그래도 한번 그것을 떨치고 나갈 힘을 갖게 되면, 모든 일이 상쾌하게 술술 풀려나갈 겁니다. 그러면 우리는 우리의 일 속에서 진정한 즐거움을 발견하게 될 거고요.”

<괴테,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뇌동매매 역시 마음 내키는 대로 휘둘리는 '천성적 게으름'의 산물이다. 중요한 원칙을 행하지 않고 경험의 축적을 방해하는 나태함을 이겨내야만 투자는 비로소 즐거운 업이 된다. 진정한 가치는 기법이 아니라 '원칙을 지킨 경험'에 있다. 원칙을 지키지 못하는 것은 본능의 게으름에 포섭되어 있기 때문이다. 인간의 시간과 에너지는 유한하기에, 현명한 자는 중요한 것과 중요하지 않은 것을 엄격히 구분한다. 사소한 실수나 수습할 수 있는 일들에 힘을 쏟기보다, 비정상적인 극한의 상황을 견뎌내는 경험과 본질적인 가치에 에너지를 집중해야 한다.


결국 투자를 잘한다는 것은 마음이 통제할 수 있는 원칙에는 온 힘을 다하고, 통제할 수 없는 시장에는 겸허히 순응하는 것이다. 이 둘을 명확히 구분해 내는 힘이 지식이라면, 구분된 길을 따라 실제로 발을 떼는 힘이 지혜다. 인문학적 소양을 쌓는 이유는 바로 이 구분의 눈을 밝히고, 매일의 유한한 에너지를 가장 가치 있는 곳에 사용하기 위함이다. 에너지는 유한하고 시장의 유혹은 무한하다.


경험해야 알 수 있는 것 중에 진짜가 많다. 게으름을 떨치고 원칙을 수호한 시간르로 투자자의 미래는 판가름 난다.




외부 변수에 미동도 하지 않을 완벽함을 꿈꾸기에 마음은 도리어 불편의 연속이다. 이것이 완벽의 역설이다. 흔들리지 않으려 애쓸수록 마음은 더 거세게 요동친다. 자본이 격돌하는 시장에서 흔들림은 숙명이며, 오직 그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투자의 성장이란 시간이 흐를수록 흔들림의 진폭이 잦아드는 과정이다. 그 잦아듦 속에서 돈과 나 사이의 조화로운 거리를 발견하게 된다.


삶의 무게는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이어지지만, 그것을 받아들이는 마음에 따라 고통은 '이 보 전진을 위한 일 보 후퇴'가 되기도 하고, 그저 ‘힘듦’ 그 자체가 되기도 한다. 투자자가 필연적으로 마주하는 손실 또한 이와 같다. 투자자는 마음을 어떻게 규정하느냐에 따라 성장하거나, 혹은 정체하다 시장에서 사라진다. 인간의 본성은 비슷하기에 남들과 다른 길을 선택하는 '특별한 마음 먹기'는 절대 쉽지 않다.


남들이 당연하게 여기는 안주와 회피를 거부하고, 본질을 직면하여 성장의 자양분으로 삼는 것. 대다수에게는 불가능에 가까운 이 결단을 '특별함'이라 부른다. 완벽이라는 허상을 버리고 흔들림 속에서 중심을 잡는 그 유연한 의지가 결국 투자자를 완성한다.


특별함은 흔들림 속에서 나아가는 것이다. 비슷하게 생겨 먹은 인간의 본성을 거슬러 전진의 발판으로 삼는 마음, 그 한 끗의 차이가 투자의 운명을 가른다. 마음먹기로 시작된 성장은 결국 나를 제대로 아는 지혜로 귀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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