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칙을 실천하지 못하는 건 집착을 놓아버리지 못하는 마음이 큰 탓, 예측할수록 탁해지고 바라볼수록 맑아진다. 집착하지 않아야 보이지 않는 원리가 보이면서 섬세해지고 맑아진다. 한 번의 그것으로 손실은 눈덩이처럼 커지게 되므로 자신의 마음속 깊이를 가늠할 줄 알아야 한다. 투자는 인간 본연의 생각에서 벗어나려는 노력을 멈추지 않는 지적 도전이기에 누구나 변하고자 하지만, 주관이 주인 행세하는 게으름 때문에 아무나 변할 수는 없다. 정제되면서 장인의 손길로 압축되는 지혜가 바로 덤덤함이다.
데이트레이딩 관점에서는 특히 변한다는 걸 인정해야 전날에 이은 큰 흐름을 보면서 파동을 그리게 되고, 파동을 그리면서 변화를 인지하게 되면서 (받아들이게 되면서) 진정한 투자를 하게 된다. 전날에 이은 큰 흐름을 보면서 파동을 그리는 이유는 유리한 방향으로 행위를 제한함으로써 기회보다는 위험을 줄이기 위함이다. 변한다는 걸 인정해야 위험을 줄일 수 있지만, 대부분은 변화를 제대로 보지도 못할뿐더러 변화를 인정하지 않는 투기 즉 생각의, 생각을 위한, 생각에 의한 투기 행위를 투자로 착각한다. 투자자에게 있어 흐름의 변화에 대한 순응 의지가 없이는 인생의 변화도 없다. 존재하는 모든 건 변하며, 갈 것은 반드시 가고 올 것은 반드시 온다는 통찰이 깊어질수록 (물이 깊을수록 고요하듯) 감정의 메아리나 아우성 같은 숱한 소음들은 수면 아래로 가라앉게 되면서 변하는 흐름 따라 마음도 고요해진다. 깊은 물이 잔잔한 것처럼 통찰이 깊어질수록 편안해진다. ‘예측할수록 탁해지고, 바라볼수록 맑아지더라’
쌀 때 매수하고, 비쌀 때 매도한다는 건 지극히 당연한 얘기이고, 손실이 나면 짧게 자르고 다음을 기약하고, 이익이 나면 길게 가져가거나 챙긴다는 것도 너무나 당연한 얘기지만 당연한 게 언제나 가장 어렵다. 기다린다는 것과 나와서 다시 기다린다는 것의 반복, 원에서의 반복을 위해 스스로 그린 동그라미 그 원이 원칙이다. 원칙이란 원 안에서 실천되지 않는 그 어떤 다짐이나 글들은 이미 죽은 것이다. 실천하지 못하는 건 게으름 탓이 크겠지만, 원칙에서는 집착을 놓아버리지 못하는 마음이 더 큰 탓이다. 글이 단단해졌다는 건 더 많이 버려졌다는 걸 의미한다. 마음도, 글도 버리면서 단단해지는 법이다. 단단해졌다는 건 단순해졌다는 것이며, 단순해지기 위해서는 마음에서 정제하고 버려야 한다. 원칙을 논함에 있어 버려야 할 것 대부분은 자기 생각이다.
안목이 없는 사람에게는 모든 것이 예민한 것으로 보이지만, 안목이 뛰어난 사람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원리가 보이기 때문에 모든 것이 섬세하게 보인다.
<글은 어떻게 삶이 되는가>
시장에서 꽃길은 남들이 가지 않는 뒤안길에 있기에 모두가 같이 바라보는 현재 가격이란 대상 안에서 자신에게만 보이는 다른 걸 찾아내기 위해서는 체계적인 훈련이, 인문학적 소양이, 원칙을 지켜가는 과정이 절실하다. 이러한 과정을 치열하게 견뎌내기 위해서도, 결과를 받아들이는 심리를 위해서도 사색이 가장 절실할 수밖에 없다. 현재 가격의 움직임에 예민하면 원칙은 감정이란 파도에 휩쓸릴 수밖에 없다. 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이 그려가는 파동의 보이지 않는 원리가 보여야 섬세해지게 된다. 섬세해지기 위해서는 오랜 시간이 필요하고, 섬세해졌다는 건 감각이 다져졌다는 것이자 한 분야의 장인이 되었다는 걸 의미한다.
등락 과정에서 최고점이 낮아졌다는 건 수요가 줄고 있다는, 최저점이 높아졌다는 건 수요가 늘고 있다는 강력한 근거가 된다. 기본 중의 기본인 수요의 측면에서 고점이 낮아지거나, 저점이 높아지는 자리에서 확률 주사위를 조심스럽게 던져가기 위해 파동을 그리는 건 대단히 유용하다. 투자는 확률을 고려하여 베팅하는 행위이며, 기다리면 돈을 벌기 쉬운 투자 환경이 만들어지게 되는 법이다. 즉 금리가 인상될 때보다 금리가 인하될 때 주식에 투자하는 게 유리한다는 것이고, 앞고점과 앞저점으로 파동을 그리면서 주사위를 던지는 이유도 이와 같다. 알면서도 대부분이 제때 던지고 거두어들이지 못하기에 지식보다는 확률의 세계를 이해하고 바라볼 수 있는 관점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시장에서 원칙으로 정한 무언가를 믿고 그냥 정한 길을 따라가 보는 것이 진정성이고, 원칙으로 세운 걸 지키면서 키워가는 과정에서 자신만의 수를 찾아가는 과정의 진정성이 투자자가 그토록 찾아 헤매던 무언가다. 원칙으로 정한 선을 아무리 진하게 긋고, 형광펜으로 새기고, 밑줄을 그어도 생각이란 안경을 끼게 되면 안개가 그러하듯이 흐려지다 마음에서 원칙은 지워지게 된다. 생각으로 자욱한 안개 속 가끔 두리번거리다 보면 선 위에 웅크리고 있는 원칙을 보게 되지만, 그를 일으켜 세우기에는 생각이 너무나도 짙다. 한 번의 나태함이나 집착, 자만심이나 오만으로도 손실은 눈덩이처럼 자신에게로 향하는 경우가 흔한 곳이 시장이다. 인간의 뇌 구조, 본성, 본능이 투자자를 끊임없이 속이고, 기만하고, 앞장서려 하겠지만, 대부분이 그러하기에 남들보다 좀 더 효율적인 통찰이면 충분하다.
헤밍웨이는 한때 자신의 글쓰기를 빙산에 비유하면서 “보이는 것의 8분의 7은 물밑에 있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모두의 눈에 보이는 8분의 1만 본 것이 아니라, 나머지 8분의 7까지도 보기 위해 분투한 세월이 그에게 글이라는 선물을 준 셈이다. 본 것은 경험으로 쌓였고, 경험은 그에게 신앙과도 같은 존재였다.
<글은 어떻게 삶이 되는가>
모두의 눈에 보이는 고작 8분의 1의 현재 가격의 움직임이 아니라 나머지 8분의 7을 보기 위해 보낸 사투의 대가가 수익이다. 제대로 볼 수 있어야 가질 수 있다. (제대로 본다는 건 「어린 왕자」가 얘기했듯 마음으로 본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마음으로 제대로 본다는 건 8분의 7에 해당하는 횡으로 이어지는 큰 흐름을 본다는 것에 그 흐름에 반응할 자신의 마음을 종으로 (마음속 깊이를) 본다는 걸 포함하는 말이다.
생각이 강해지면 꽂힌 생각으로만 세계를 보게 되고, 꽂힌 생각이 기준이 되면서 시야는 협소해지게 된다. 잘하다가도 한번 꽂히게 되면 뇌동의 약효는 한동안 이어지게 된다. 자주 꽂히고, 어기고, 흩어지면서 그렇게 사람이 변하지 않으면서 다른 결과를 기대하는 건 로또를 기대하는 것과 같다. 누구나 생각하지만 아무나 행동할 수는 없다. 누구나 변하고자 하지만, 아무나 변할 수는 없다. 그 아무나가 1%다. 줄이고, 줄이다 사라진 나쁜 습관만큼 길이 열린다. 글을 쓴다는 건 말을 줄이면서 압축하는 것이듯 투자하는 것도 생각을 줄이면서 원칙으로 압축하는 것이다. 생각을 줄이고 줄이면서 원칙의 동그라미 안에서 반복하면서 알아가는 것이 진정으로 투자한다는 것이다. 원칙의 원 밖에서 무언가에 홀려 기웃거리는 자신, 원 안에서 유리한 방향으로 부는 방향이 같이 가자고 몇 번을 속삭여도 원 밖에서 바람을 향해 몸 돌리고 마는 자신을 자주 목격하는 건 숙명이겠지만 줄이면서 극복해야만 하는 숙명이다. 씨름 선수가 원 밖으로 나가면 실격인 것처럼, 투자자도 원칙의 원 밖에서는 손익의 여부를 떠나 이미 자격이 없는 상태와도 같기에 그에게 희망을 기대하는 건 어리석음과 맥을 같이하게 된다. 정한 원칙에 따라 먹을 수 있는 자리와 먹을 수 없는 자리가, 맞는 자리가 그렇지 않은 자리가 교차하면서 파동은 등락한다.
아무것도 우습게 생각하지 마라. 우리가 바라보는 모든 대상에는 무게가 없다. 무게를 결정하는 건 그걸 바라보는 사람의 시선이다. 가벼운 시선은 대상까지 가볍게 만든다. 어리석은 사람은 모든 것을 우습게 생각하지만, 분별 있는 사람은 아무것도 우습게 생각하지 않는다. “이 안에 무언가 있다. 내가 천천히 하나하나 발견할 생각이다.”라는 생각으로 하루를 살면 어제와 다른 일상이 펼쳐진다. 그리고 그렇게 나온 것을 글로 쓰면 무게가 다른 글이 완성된다. 세상에서 가장 강한 사람은 힘이 센 사람이 아니라, 같은 공간에서 오랫동안 무언가 하나를 바라보면 사색에 잠길 수 있는 자다. 자신을 견딜 수 있는 자가, 세상에서 가장 강한 자다.
<글은 어떻게 삶이 되는가>
이 책의 작가는 ‘글쓰기란 결국 자신이 설정한 '생각의 틀’에서 벗어나려는 노력을 멈추지 않는 지적인 도전이다.’라고 언급했다. 투자 역시 결국 인간 본연의 생각에서 벗어나려는 노력을 멈추지 않는 지적인 도전이다. 변화를 인지하고 스스로 변하기 전에는 떼 지어 다니는 개미라서 군중이 될 수밖에, 무리가 되어 사슴처럼 투자할 수밖에 없다. 투자자는 무리에 편승하는 양 떼가 아니라 사자가 되어야 한다. 사자가 되기 위해 생각을 넘어 기다리는 법을, 그 너머의 대응하는 법을 익히고 다지는 노력을 멈추지 않아야 한다. 혁신으로 발전하는 자본주의, 높아지는 삶의 질만큼 늘어나는 돈, 필연의 인플레이션 시대 「투자는 어떻게 삶이 되는가?」 투자라는 도구를 잘 다루기를 꿈꾼다면 자문하면서 찾아가야만 하는 생의 숙제다. 천 번을 접은 사색들이 지식을 채워주는 게 아니라 원칙에 대한 의지력에 불을 지피는 마중물 같은 역할이길 소망한다.
도무지 방향을 예단하기 힘든 정글과도 같은 박스 구간에서는 호랑이를, 드넓게 펼쳐진 초원과도 같은 추세 구간에서도 사자를, 심리가 감정에 엉킨 늪지대와도 같은 뇌동 상태에서는 악어를 만날 수도, 언제 어디서든지 해로운 것들에 상처를 입을 수 있는 곳이 시장이기에 위험을 제대로 알고 통제함으로써 위험의 크기를 줄여가는 노력을 한시도 게을리해서는 안 된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주관이 주인 행세를 자꾸만 하는 건 그 게으름 때문이다. 그렇기에 투자자의 기본 중의 기본은 lower leverage(여유로운 돈으로), less isolation(추격하지 않고 원칙으로 정한 자리에서 기다리고), ex-insight(손실에 짧게 대응하는)이고 이를 위해서는 천천히 또박또박 나아갈 수 있는 여유로움 심리가 반드시 전제되어야 한다. 투자자의 가장 큰 위험은 애써 다듬어가는 객관적 시선에 매일 끼는 안개와도 같은 감정의 때이기에 시장에 떠나기 전에는 위험에서 벗어날 수 없음을 한시도 잊어서는 안 된다. 성공의 길을 실천하지 못한 채 그 선과 정확하게 평행선을 이루는 건 자꾸만, 너무 자주 그 불편한 진실을 잊어버리기 때문이다.
확률을 다룸에 있어 필연인 아쉬움과 미련에 안달복달 짧게 하고 빨리 잊어버리는 심리적 기술은 여유로움이란 도자기를 빚는 장인의 손길과도 같다. 시간이 지나면 방법을 아는 건 엇비슷해지겠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심리적 여유로움의 차이는 극복하기 어려울 만큼 벌어지게 되므로 선인들은 투자를 심리 게임이라 단정짓는다. 주관을 떠나 고요한 마음으로 사물을 관찰하는 걸 관조(觀照)라 하고, 자신을 관조하면서 자신을 알아가는 걸 사색(思索)이라 한다. 관조할 줄 안다는 건 생각을 놓아버릴 줄 안다는 걸 의미하고, 사색할 줄 안다는 건 필요한 지식을 내면에서 정제하여 지혜로 만들 줄 안다는 걸, 다짐한 글이나 맹세를 실천하면서 지혜로 압축할 줄 안다는 걸 의미한다. 생각이 미치지 못하는 곳에서 정제되면서 장인의 손길로 압축되는 지혜가 바로 덤덤함이다. 투자자가 매번 맞닥뜨리는 파동은 훅훅 쉽게 빠져주는 경우는 극히 드물고 대부분은 오락가락 흔들면서, 붙이고 떨 주면서 가기에, 등락하면서 느리게 가기에 여유롭지 못하다면 아무리 발버둥 쳐도 선명함은 기대할 수 없다.
“어설픈 현자들은 내가 누구인지를 알아가는 여정이 곧 삶이라고 우리를 속여왔지만, 실은 내가 누구인지를 망각해야 하는 여정이 곧 삶인지도 모른다.”
<페르난두 페소아>
위대한 작가의 말처럼 자신을 알아간다는 건 길을 잃는다는 뜻인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자신을 알아가는 건 단지 시작일 뿐이고, 자기 내면으로 뚜벅뚜벅 걸어 들어가면서 벗겨내고 또 벗겨내다 보면 남게 되는 진정한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되고 ‘진정한 나’ ‘또 다른 나’와 마주하게 된다. 그 마주함이 변화이고, 이것이 변화의 시작이다. 지식을 쌓아가는 건 흐름을 제대로 읽어가기 위함이지만, 아는 만큼 흐름을 보기 위해서는 생각이 지식의 크기만큼 개입되지 않아야 한다. 생각이 줄어드는 만큼 흐름은 선명해지기에 지식을 쌓아가는 목적은 자신을 알아가기 위함이 된다. 시장의 흐름을 읽어가는 법을 알아도 자신을 이해하지 못하면 흐름은 체화되지 못한 채 그냥 흐름으로 투자자 인생을 겉돌게 된다. 흐름에 온몸을 맡겨야 하고, 맡기기 위해서는 무아가 되어야 하고, 자신을 망각하기 위해서는 인문학적 소양이 필요하다. 시장에서의 무아란 자신이 누구인지를 앎으로써 자신을 망각할 수 있는 상태 즉 자신은 사라지고 오롯이 흐름만 남게 되는 상태를 의미한다. 투자자의 여정은 성급함과 욕심에 더하여 자신의 일체 생각을 내려놓는 과정이기에 자신을 알아가면서 자연스럽게 내려놓는, 자신을 내려놓음으로써 더 깊이 알아가는 이기의 길이자 이타로 가는 길이다. 투자자로서의 자신을 마주하는 불편함을 마다하지 않고 더 깊이, 더 진지하게 마주해야 변화가 시작된다. 올바른 투자자로 변하기 위해 자신을 마주하고 설득하는 과정을 총칭하는 말이 투자 심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