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은 진입 전후 생각과 욕심이다.

by 황금지기


시장은 논리적이지도 않으며, 스스로 부여하는 대의명분 따위에는 관심조차 없다. 이것이 무언가 이유를 찾으려는 투자자와 제 갈 길만 가는 시장 사이의 괴리다. 투자의 성패는 아주 단순한 두 지점에서 결정된다. ‘진입 전’에 원하는 자리를 기다릴 수 있는가, 그리고 ‘진입 후’에 변화에 대응할 수 있는가.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모든 위험의 실체는 바로 내면의 ‘생각’과 ‘욕심’이다.


인생을 살면서 넘지 말아야 할 선이 있듯, 시장에서도 목숨 걸고 지켜야 할 금기가 있다. 그것은 스스로 만든 생각의 틀에 갇혀 방향성에 꽂히지 않는 것이며, 욕심에 눈멀어 시장에 기도하지 않는 것이다. 인간의 생각은 ‘가격’에 지배당하지만, 시세의 파동은 ‘관성’에 지배받는다.


긍정은 흐름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태도다. 추세가 이어지는 이유는 파동 스스로가 가진 관성 때문이다. 거대한 끌어당김의 법칙 안에서는 내 안의 긍정이 가득해야 시장의 순리를 끌어안을 수 있다.




백 번 듣는 것이 한 번 보는 것만 못하듯(百聞不如一見), 파동을 대함에 있어 백 번 생각하는 것이 한 번 현상을 마주하는 것만 못하다. 백사(百思)가 ‘불여일상(不如一象)이다. 머릿속으로 주관을 그리며 생각으로 매매하는 자의 끝은 결국 파멸인 죽을 사(死)로 귀결될 뿐이다. 사(思)와 상(象)의 받침 하나가 깨달음의 종이 한 장이다. 나쁜 습관은 종이를 두껍게 한다.


나뭇잎이 떨어지는 것은 자연의 섭리다. 잎이 떨어지면 그저 몇 번의 빗자루질이라는 수고로움을 더하면 그뿐이다. 하지만 인간은 나뭇잎이 언제 떨어질지 제멋대로 판단하려 들고, 떨어지는 잎을 보며 염려한다. 시장의 파동 또한 이와 무엇이 다르겠는가?


해석하려 들지 말고 직면하면 그뿐이다. 생각을 멈추고 오직 눈앞의 현상대로 매매하는 경험이 한 번 두 번 쌓여갈 때, 투자 인생은 바뀌기 시작할 것이다. 잎이 지면 쓸어내듯, 시세가 꺾이면 몸을 돌리는 단순한 수고로움이 상수의 비밀이다.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와 같이, 붙이는 파동에도 움찔하지 않아야 한다.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과 같이, 좌뇌의 해석과 판단이라는 그물에 걸려 방향성에 꽂히거나 가격을 보며 기도하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않아야 한다. 또한 흙탕물에 더럽혀지지 않는 연꽃처럼, 가격의 높낮이라는 인간의 욕심과 생각이 만드는 오물에 마음을 더럽히지 말아야 한다. 그렇게 지워낼 때 비로소 순수한 현상만이 남게 되며, 그 현상은 오직 무아의 상태에서만 또렷하게 드러난다.


세상의 이치는 이토록 명확하다. 첫째, 인간의 해석과 판단은 그저 하는 것일 뿐, 도움이 될 수도, 해가 될 수도 있는 그저 그런 것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둘째, 앞날은 아무도 알 수 없기에 그저 주어지는 현상에 대응하고, 변화하는 환경에 적응하며, 담담히 받아들이며 사는 것이 가장 편안한 길이라는 사실이다.


자꾸만 두려운 것은 그것을 통제하려 하기 때문이다. 세상 현상들을 해석하려 들지 않고, 그저 받아들이는 것이 가장 편안한 삶이다. 그저 와 준 오늘이 고맙기는 하여도, 다시 또 오고 마는 내일이 두려운 게 인생이지만 말이다.




병아리 눈물만큼이라도 실력이 쌓인다는 것은, 찬란한 하루하루가 겹겹이 쌓여가고 있다는 증거다. 시장에서 기법은 고작 2할에 불과하며, 나머지 8할은 마음을 다스리는 심리의 영역이다. 마음을 다루는 실력이 어찌 한순간에 늘 수 있겠는가! 낙숫물이 바위를 뚫듯, 꾸준함이 주는 힘은 심리의 한가운데를 관통하여 결국 한 사람의 인생 전체를 바꾸어 놓는다.


진정한 실력이 쌓인다는 것은 단순한 기법의 습득을 넘어, 그 기법들이 심리 안에 온전히 녹아드는 과정을 의미한다. 머리로만 알고 있던 파동의 특성이 오랜 시간 심리에 체화될 때, 그것은 본능적인 감각이 된다. 투자를 일컬어 ‘기다림의 미학’이자 ‘대응의 예술’이라 부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예술가의 눈을 가져야 참된 아름다움을 볼 수 있다.


대응이 자유로워져야 기다림 또한 자유로워진다. 자유로움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기법이 심리에 녹아드는 충분한 시간과 지독한 반복이 필수적이다. 진정한 미를 발견하기 위해 예술가가 수많은 수고로움을 기꺼이 바쳤듯, 때로는 아쉬워하고 때로는 후회할지라도, 대응할 때 다시 기다림, 즉 기회를 마주할 자격을 얻는다.



산수유는 다만 어른거리는 꽃의 그림자로서 피어난다. 그러나 이 그림자 속에는 빛이 가득하다. 빛은 이 그림자 속에 오글오글 모여서 들끓는다. 산수유는 존재로서의 중량감이 전혀 없다. 꽃송이는 보이지 않고, 꽃의 어렴풋한 기운만 파스텔처럼 산야에 번져 있다. 산수유가 언제 지는 것인지는 눈치채기 어렵다. 그 그림자 같은 꽃은 다른 모든 꽃이 피어나기 전에, 노을이 스러지듯이 문득 종적을 감춘다.

<김훈, 자전거 여행>


‘일을 제대로 하지 않으면서 타인의 보람을 뺏고 싶지 않았다’라고 말할 수 있는 삶의 여유를 이제는 즐기고 싶다. 한때는 시장에서 가장 강렬하고 아름답게 피어나는 주인공이 되고 싶었지만, 이제야 곁에 머무는 이들에게 전해질 은은한 향기 정도면 충분하겠다는 겸손을 배운다. 투자의 철이 들어가는 모양이다. 내 삶의 향기가 타인에게 평온함을 줄 수 있는 은은한 산수유를 닮아가기를 기대해 본다.


잘려 나갈 줄 알면서도 다시 무성해지려 애쓰는 저 은행나무의 생명력이 경이롭다. 여름날의 무성함이 결국 제 몸을 도려내게 한 가로수의 운명임을 받아들이듯, 투자자 역시 수익의 절정 뒤에 찾아오는 필연적인 조정과 손실을 덤덤히 수용해야 한다. 은행나무는 잘림을 두려워하지 않고 다시 가지를 뻗칠 준비를 하며, 남은 몸통 하나로 시린 겨울을 견뎌낸다. 무성함에 도취하지 않고, 잘려 나간 빈자리에서 다시 시작할 용기를 품는 나무의 대견함—그것이 바로 시장의 풍파 속에서도 꺾이지 않는 투자의 본질이다.


시세 또한 오고 갈 뿐이다. 화려한 폭발 뒤에는 반드시 고요한 사라짐이 있으며, 상수는 그 사라짐의 타이밍을 아쉬워하지 않고 산수유처럼 흔적 없이 물러날 줄 안다.




하늘에 구름이 끼면 비가 올 수 있음을 알고, 햇살이 가득하면 그 온기를 느끼면 그뿐이다. 먹구름이 하늘을 덮어도 그 너머에는 여전히 태양이 빛나고 있으며, 태양이 비추는 순간에도 구름은 유유히 지나간다. 이것이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모습이다.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는 것이 세상사 이치다. 하지만 투자하면 눈앞의 구름을 보면 구름에 매몰되고 태양이 비치면 태양에 꽂힌다.


생각에 사로잡히면 그 생각에 꽂히고, 선택을 내리면 그 선택에 꽂히게 된다. 이것이 비극의 시작이다. 현상은 변하며, 이 변화는 시장의 생리다. 투자의 성패는 현상을 편견 없이 바라보는 단순함이나 변화의 흐름에 맞춰 몸을 굽힐 줄 아는 유연함에 달려 있다.


투자의 비극은 변하는 현상에 마음이 고착되는 데서 시작된다. 현상의 흐름에 몸을 맡겨라. 현상에 꽂히지 마라. 먹구름이 오면 비를 대비하고, 다시 햇살이 나면 즐기면 그뿐이다. 변하는 날씨처럼 마음도 고정된 '상태'가 아니라 흐르는 '변화' 그 자체여야 한다.




매매의 길은 명료하다. 저점이 높아지며 신호가 나오면 진입하여 앞고점을 이정표로 삼고, 고점이 낮아지며 신호가 나오면 진입하여 앞저점을 기준점으로 두면 된다. 시장은 늘 파동을 그리며 나아가기에, 한 파동이 완성된 끝자락에 나타나는 신호를 믿고 진입하면 된다. 앞고점을 돌파하는지, 앞저점을 붕괴하는지 그저 지켜보며 현상이 이끄는 대로 대응하면 된다.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시장은 인간의 본성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거대한 영화관이다. 당신이 그 영화의 주인공이 되든 영원한 조연으로 남든 그것은 당신의 선택이지만, 명심해야 한다. 시장이라는 거대한 우주 안에서 우리의 선택은 나비나 벌의 미세한 날갯짓에 불과하다.


막연한 기대를 품는 것은 자신의 영혼을 속이는 일이다. 많은 투자자가 작은 밥공기 하나 제대로 빚지 못한 채, 늘 소쿠리만큼의 수확을 바라는 탐욕에 방황을 거듭한다. 수익이 나지 않는다고 현상과 싸울 방법이 있겠는가? 거센 강물을 거슬러 오를 수 없듯, 현상이 흐르는 대로 그저 묵묵히 따라가는 것 외에 다른 길은 없다.



처음 출렁이는 배를 타면 누구나 뱃멀미를 겪기 마련이다. 타고난 체질로 하지 않는 소수도 있겠으나, 대부분은 몸을 맡기며 익숙해지는 시간을 견뎌야 한다. 흔들림이 일상이 될 때, 투자자는 비로소 배 위에서 중심을 잡고 고기를 잡을 수 있는 어부가 된다. 성급히 성과를 탐해서는 안 된다. 그저 그 출렁임에 익숙해지면서 서서히 익어가야 한다.


시장의 질서는 냉혹한 8:2의 법칙으로 움직인다. 대다수 투자자는 자그마한 지식만으로 자신이 상위 2할에 속한다는 위험한 착각에 빠진다. 애초에 자신이 똑똑하다는 자만심이 없었다면 이 험난한 시장에 발을 들이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명심해야 한다. 지금 뇌동매매를 반복하고 있다면, 당신은 여전히 갈 길 먼 8할의 무리에 속해 있을 뿐이다. 특별하다고 믿는 그 이기적인 마음이야말로 뇌동의 가장 강력한 영양분이다.


나를 앞세우는 마음이 사라질 때 시장은 길을 보여준다. 올바른 자리를 기다리고 결과를 겸허히 받아들이는 긍정적인 태도는, 나를 내려놓는 '이타적인 마음'의 토양 위에서만 비로소 꽃피울 수 있다. 타인보다 우월하다는 오만을 버리고, 거대한 시장의 흐름에 순응하며, 그 결과가 이익이든 손실이든 고요히 수용하는 이타심이 필요하다.




햇볕이 이렇게도 따스할 수가! 겨울의 한복판에서 봄을 만끽하는 지금, 서 있는 이곳이 바로 지중해가 아닌가! 이 순간의 평화로움이 너무나 감미로워 당장이라도 춤을 추고 싶다. 사람이 살아간다는 것은 '사람'이라는 나무로 빽빽이 들어찬 숲길을 산책하는 일과 같다. 삶의 의미를 깨닫게 해 준 것은 겉으로 보이는 삶의 넓이가 아니라, 내면으로 파고드는 깊이였다.


삶이 이토록 아름다운 이유는 높고 낮음이 있어도 영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영원할 수 없기에 소유하려는 욕심을 내려놓고, 오직 이 순간만을 온전히 즐길 수밖에 없는 것 아니겠는가! 세상에 '기필(期必)'은 없으며 '영원' 또한 존재하지 않는다. 결코 닿을 수 없는 기필을 향해 손을 뻗고, 마치 영원할 것처럼 살아가는 찰나들의 합이 곧 인생이다. 그러니 우리는 조바심과의 싸움에서 한발 물러나 여유로워져야 하며, 필연적으로 뒤따르는 아쉬움과 후회에도 덤덤해져야 한다.


살아간다는 것 자체가 아쉬움이고 후회다. 어차피 후회가 남는 것이 인생이라면, 이 순간의 햇살을 놓치지 않는 것이 가장 현명한 삶이다. 투자자에게 현상이 햇살이다.




기필(期必)이라고 지랄하는 동안 파동은 기어코 제 갈 길을 가고 있었다. 투자가 목숨을 건 전쟁인 줄도 모르고, 장난스럽게 인생을 허송세월하던 때가 있었다. 한참이 지나서야 이곳이 전쟁터임을 깨달았다. 그 전쟁터에서조차 현상을 고요히 관조할 수 있게 되자, 어느새 전쟁은 평화로운 일상이 되었고 지독했던 긴장감은 평범함으로 다가왔다.


놀이터 전체가 다 내 것인 줄 알았던 때가 있었다. 하지만 이제야 깨닫는다. 그네를 타는 그 찰나, 미끄럼틀을 타고 내려오는 그 순간만이 진정 나의 세상이었음을. 투자도 삶도 그렇게 찰나의 순간에 집중하며 익어가는 것이다. 시장의 파동이 일상처럼 편안해지기를, 그 흔들림에 내 몸이 완전히 익숙해지기를 바라며 오늘도 파동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주관을 비워낸 자리에 객관을 채워 넣으며 익어간다. 다양한 지식에 대한 탐욕이 얼마나 부질없는가를 뼈저리게 느껴야 한다. 수만 가지를 겉핥기로 아는 것보다, 단 하나를 알더라도 제대로 알아야 내 것이 되고, 굳어버린 영혼을 깨우는 도끼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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