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각은 여물어가다 불현듯 찾아온다.

by 황금지기


안나 카레니나가 기차역에서 남편의 귀를 보고 ‘참 못생겼네’라고 생각한 그 찰나의 이미지, 그 사소한 ‘꽂힘’이 그녀의 전 생애를 뒤흔들었다. 이것이 바로 인간이다. 이토록 단순한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그 단순함의 진리에 귀의하지 못하게 방해하는 것이 바로 인간 감정의 기복이며, 한계다. 파동을 그리겠다는 숱한 맹세가 사소한 움직임 하나에 너무나도 쉽게 무너지는 것 또한 안나의 꽂힘과 다를 바 없다.


상수는 이러한 태생적 한계들을 경험으로 깨달은 자다. 시간의 유한성, 요동치는 감정, 끊임없이 충동질하는 희망이라는 이름의 메아리, 그리고 자신의 부끄러운 진실을 감추려는 위선과 환상이 인간의 민낯임을 인정하라. 우리는 매일 감정이라는 숙제와 마주하며, 희망에 매달려 고문받는 존재들이다. 이 희망을 극복하기 위해선 여유로움이 필수이며, 그 여유를 가졌을 때 행운은 여신의 미소로 화답한다.


감각은 복잡한 생각을 통해 완성되지 않는다. 감각은 복기와 반복으로 서서히 여물다, 때가 차면 어느 순간 불현듯 찾아오는 선물 같은 것이다. 최선의 대응이란 확률적 우위의 흐름이면 술에 취하듯이 그 순간을 즐기는 것이다. 순간의 진실은 오직 여유로운 자의 눈에만 보인다. 여유로움의 그릇은 워낙 커서 시장 전체를 담고도 남음이 있기 때문이다.




“소용없는 짓이야. 나는 알베르틴을 가장 잊을 수 없는 여자 중 하나라고 생각하려 했으나 소용없는 짓이었다. 사람들이 그 모델이 남자였다고 내게 은밀히 알려 준 이후로는 그 쓸데없는 정보가 컴퓨터 소프트웨어에 침투한 바이러스처럼 내 머릿속에 콕 박혀 버리는 바람에 어쩔 수 없었다. 한 남성이 나와 알베르틴 사이에 슬그머니 끼어든 이후로 알베르틴의 이미지는 뒤죽박죽이 된다. 그녀의 여성성이 파손되어, 내가 그녀의 아름다운 가슴을 감상하는 순간, 그 가슴은 평평하게 되어버리고, 고운 얼굴 위에 때때로 콧수염이 생기기도 하니 말이다.”

<밀란 쿤데라, 커튼>


모든 투자자는 인간의 본성이 그러하기에, 특정한 정보나 생각에 꽂혀버리면 이성과 의지와는 상관없이 파동의 본질은 훼손되고 만다. "오를 수밖에 없다"라는 생각이나 "반드시 반등한다"라는 확신이 머릿속에 침투하는 순간, 파동은 뒤죽박죽이 된다.


막연한 기대에 기반한 주관이 개입되는 순간, 시장이 그리는 실제 파동이 아니라 소망하는 파동을 그리기 시작한다. 하락의 전조는 ‘저가 매수의 기회’로 둔갑하고, 무너지는 지지선은 ‘속임수’로 왜곡된다. 결국 주관과 시장 사이의 괴리는 돌이킬 수 없을 만큼 커지며, 계좌는 그 벌어진 틈새로 속절없이 무너져 내린다. 일단 특정한 생각에 마음을 빼앗기는 순간, 인간의 뇌는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믿고 싶은 것만 믿는 확증 편향의 비참한 노예가 될 뿐이다.


생각은 파동을 왜곡하는 바이러스다. 투자의 성패는 얼마나 많은 정보를 움켜쥐고 있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그 정보와 생각에서 벗어나 있는 그대로 파동을 보느냐에 달려 있다.




인간은 본디 가벼운 존재다. 그렇기에 계획을 세우고 그것을 실천해야 하는 무거움은 본능적으로 거부감을 일으키며, 늘 작심삼일의 끝나기 마련이다. 투자자들 또한 원칙이라는 이 무거움을 감당하지 못해 손절을 외면하고, 결국 상식이 통하지 않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되어버리고 만다. 하지만 투자자가 이 필연을 견뎌내어 진정한 자유에 이른다면, 그 삶은 그 자체로 얼마나 찬란하고 위대하겠는가!


시장은 오만하게 방향을 맞추려 드는 자들과 무모하게 정답만을 쫓는 자들을 용납하지 않으며, 끊임없이 절망의 계곡으로 밀어 넣는다. 시장이 돕는 유일한 존재는 따로 있다. 아무렇지도 않게 손실을 받아들이는 내면의 자유를 얻은 자, 손실이라는 불쾌한 감정으로부터 해방되어 상쾌함을 느끼며 오로지 흐름에 순응하는 자뿐이다.


원칙에 익숙해져야 비상이 시작된다. 손절이 고통스러운 것은 그것을 실패라는 가벼운 감정으로 읽기 때문이다. 손절을 원칙으로 받아들이면, 마음은 불쾌함에서 해방되어 상쾌한 자유를 맛보게 된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성(性)과 부(富), 그리고 권력(權力)에 매료될 수밖에 없는 존재다. 에덴동산을 떠났을 때부터, 인간은 막연한 것이 아닌 손에 잡히는 구체적인 것을 갈구하는 현실적인 동물이 되었다. 그리하여 우리가 쏟아붓는 노력에 대한 대가 대부분은 이 구체적인 욕망의 결실로 수렴된다.


물론 우리는 인문학적 소양과 깊은 사유를 통해, 순간과 평범한 일상, 그리고 그저 살아 있음이 주는 찬란하고도 단순한 행복을 꼭꼭 씹어 삼키려 노력한다. 그 사유의 과정으로 발버둥 치지만, 부와 같은 원초적 욕망 앞에서 솟구치는 성급함과 탐욕을 누르기란 참으로 쉽지 않은 일이다. 부를 향해 나아가되, 그 과정에서 일상의 찬란함을 놓치지 않는 여유—그것이 바로 사유하는 투자자만이 누릴 수 있는 진정한 풍요다.


욕망은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다스리는 것이다. 인문학을 공부하고 사유를 멈추지 않는 이유는 성인이 되기 위함이 아니다. 부(富)만 쫓는 그 맹목적인 발걸음에 여유로움이라는 무게를 더하기 위함이다.




“모든 예측은 틀리게 마련이며 그것은 인간에게 주어진 몇 안 되는 확실성 가운데 하나이다.”

<밀란 쿤데라, 향수>


“그는 매우 고상한 정신 영역에 살고 있었고 무척 오만해서 이토록 사소하고 비천하며 불쾌하고 무시할 만한 적을 심각하게 생각할 수 없었다.” 이 문장은 투자의 대전제가 되어야 한다. 우리는 때로 분석이 너무나 고상한 영역에 속해 있다고 착각한 나머지, 손절이라는 사소하고 비천해 보이는 적을 무시하며 오만하게 버틴다. 하지만 지지선이 무너지면 지적 수준이 아무리 높다 한들 이유 없이 요동치는 시장의 무자비한 발길질 앞에서는 무력할 뿐이다. 미래는 누구도 알 수 없기에, '손실을 짧게 자르는 비천함'만이 생존의 유일한 확실성이다.


투자는 심리와 동의어이며, 투자의 성공은 단순함과 동의어다. 그 누구도 시장의 내일을 모른다는 대전제를 겸허히 수용하라. 잃지 않는 것을 최우선으로 삼아야 비로소 곳간이 채워지기 시작한다. 예상과 시장의 흐름이 반대로 갈 때, 그 어긋남에 똑같은 가중치를 두고 기계적으로 대비해야만 흔들리지 않는 심리적 기틀이 마련된다. 시장은 잔인한 꼬리로 물량을 털어내고, 지독한 박스권으로 인내심을 갉아먹는다. 이 모든 변동성이 심리를 파괴하기 위해 정교하게 설계된 장치임을 마지막 순간까지 잊지 마라.


고귀한 예측보다 비천한 대응이 백번 낫다. 손실을 짧게 자르지 못한 채 시장의 횡포에 몸을 맡기고 있는 모든 시간은, 인생에서 가장 허망한 시간 낭비로 귀결될 뿐이다.




투자자의 내면에서는 원칙과 희망이 한 치의 양보도 없이 충돌하며 무한 대치를 벌인다. 이 지독한 사투를 끝내는 유일한 길은 지독한 복기와 무한한 반복, 그리고 실전에서의 처절한 자기 투쟁을 통해 원칙을 하나의 ‘신호체계’처럼 완벽히 습관화하는 것이다. 거리에서 누군가 강요하지 않아도 빨간불에 멈춰 서고 파란불에 발을 내딛듯, 나만의 매매 규칙이 나의 세계에서 가장 일반적이고 당연한 상식이 되어야 한다.


아무리 단순하고 훌륭한 기법이라 할지라도 그것이 성공의 열쇠가 되기 위해서는, 규칙이 머릿속 논리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몸에 새겨진 본능적 신호체계가 되어야 한다. 정해진 원칙대로 고독하게 기다려 진입하고, 냉정하게 자르며, 적기에 수익을 챙기고, 유연하게 방향을 갈아타는 그 모든 행위의 유기적인 합이 곧 당신의 진짜 실력이다. 실력은 원칙을 지키려 애쓰는 고통이 사라지고, 그 모든 과정이 숨 쉬듯 당연해질 때 비로소 완성의 궤도에 진입한다.


원칙은 신호에 즉각 반응하는 것이다. 원칙을 지키기 위해 의지력을 쥐어짜야 한다면 아직 하수다. 상수는 원칙을 지키는 데 에너지를 많이 쓰지 않는다. 그저 신호에 따라 몸을 움직일 뿐이다.




개인의 원칙은 시장의 거대한 흐름 속에서 늘 '박스 구간'이라는 장벽과 맞닥뜨린다. 시장의 파동은 대부분 이 지루하고 고통스러운 박스로 이루어져 있으며, 추세보다 박스 안에 머무는 시간이 훨씬 길다. 큰돈은 이 박스를 강력한 무기로 삼아 개인들이 원칙을 포기하고 도박적 사고에 빠지게 만든다.


박스 구간은 철저히 심리를 파괴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돌파할 것처럼 상단에 붙여 개인들을 흥분시켜 추격 매수하게 만들고, 무너질 것처럼 하단에 붙여 공포에 질려 손절하게 만든다. 시각적인 환상에 속아 상단에서 매수하고 하단에서 매도하는 악순환은 큰돈이 의도한 필승 전략이다. 하지만 상수는 안다. 두려워하는 박스 하단과 열광하는 상단에서 남들과 다르게 행동해야 한다는 사실을.


박스는 심리를 파괴하는 큰돈의 설계다. 큰돈은 인내심을 시험하며 가벼운 본성을 끝없이 자극한다. 박스권에서 '갈 것 같다'라는 시각적 예감은 대부분 독이 든 성배다. 박스 구간에서 여유로울 때 큰돈이 파 놓은 늪지대를 건너 그들의 무기를 수익으로 바꾸는 반전의 주인공이 될 것이다.




확률적 사고의 비밀은 멀리 있지 않다. 그것은 바로 박스 안에 있다. “파동은 곧 박스다. 그러므로 수익은 챙기면서 가야 한다.” 이 명제는 확률적으로 접근하는 투자자에게는 흔들림 없는 절대 진리와도 같다. 그러나 다수는 박스를 뚫고 날아갈 것이라는 막연한 기도에 기대어, 누구나 하기 쉬운 가벼운 선택을 반복한다. ‘챙기고 자르며’ 가야 하는 파동의 이치를 머리로는 알면서도, 욕심이 눈을 가려 결국 큰돈이 쳐놓은 박스의 덫에 걸려들고 만다.


우리가 박스라는 대치 구도를 반드시 이해해야 하는 이유는, ‘박스가 곧 추세를 잉태하기 위한 산통’이기 때문이다. 이 사실을 깨달아야만 지독한 흔들림에도 평정심을 유지할 수 있다. 시장은 박스 상·하단에서 당장이라도 터질 듯 시세를 붙여 심리를 뒤흔들고, 추격을 유도하며 끝내 당신의 원칙을 파괴하려 든다.


시세 이후 횡보 또는 조정이다. 한 방을 꿈꾸는 욕심, 조급한 추격, 뇌동매매가 승리할 수 없는 이유는 파동의 본질이 박스에 있기 때문이다.




심리적으로는 가능할 것 같아도 실전에서 번번이 무너지는 이유는, ‘돈’과 ‘심리’가 동일선상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원칙이라는 큰 틀 안에서 흐름을 타고 있다면 진입 지점은 다소 투박해도 무방하다. 그러나 돈에 대한 압박이 시작되고 가격의 흔들림이 눈에 들어오면 그 사소한 파동이 당신의 전체를 송두리째 뒤흔든다. 실력을 온전히 발휘하기 위해서는 돈의 여유보다 심리의 여유가 앞서야 한다. 여기서 여유롭다는 것은 '기다릴 줄 안다'라는 것이며, '대응 후 다시 기다릴 수 있음'을 의미한다.


확률 게임의 본질은 비슷한 조건의 무한 반복에 있다. 우리가 살아가며 스쳐 지나가는 인연들과 만남과 이별을 반복하는 것이 죽음에 대한 숱한 예행연습이듯, 매매의 결과가 좋든 나쁘든 진입하고 청산하는 그 모든 과정은 성공을 향한 예행연습일 뿐이다. 일회성 도박으로의 유혹, 손실을 확정 짓지 못하게 방해하는 헛된 희망, 작은 이익에 연연하게 만드는 조급함, 그리고 실체 없는 두려움. 인간이기에 당연한 이 감정들을 극복해 내는 것이 그 어떤 화려한 기법보다 앞서야 하는 곳이 시장이다.


익숙한 것과의 결별이 성숙을 낳는다. 매매를 삶의 수많은 이별처럼 덤덤한 예행연습으로 받아들여라. 시장은 그 어떤 기교보다도, 흔들림 없는 여유를 간직한 마음 그릇에 걸맞은 보상을 담아줄 것이다. 매매는 돈을 쫓는 행위가 아니라, 나를 단련하는 과정이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는 치통을 과소평가하는 지식인의 말이다. ‘나는 느낀다. 고로 존재한다’야말로 모든 생물을 포괄하는 훨씬 일반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진실이다. 나의 자아는 사유에 의해서는 당신의 자아와 본질적으로 구분되지 않는다. 사람은 많으나 생각은 적다. 우리는 모두 서로 전달하고 차용하고 서로 상대의 생각을 훔치기도 하면서 거의 동일한 것을 생각하는 것이다. 하지만 만약 누군가가 나의 발을 밟는다면 고통을 느끼는 사람은 나 혼자다. 자아의 토대는 사유가 아니라 고통, 즉 감정 중에서 가장 기초적인 감정인 것이다.”

<밀란 쿤데라, 불멸>


사유는 집합적이며 공유될 수 있으나 고통은 오직 개별적이다. 기법은 누구나 공유하고 사용할 수 있지만, 손실이 주는 심리적 압박을 견뎌야 하는 자는 오직 나 자신뿐이다. 건강해야 심리가 굳건할 수 있고, 심리가 굳건해야 돈을 벌고 지킬 수 있다. 건강을 잃으면 나의 세상은 함도, 뇌동으로 극도의 스트레스를 주는 무모한 행위들을 그만두어야 함도 건강이 무너지면 세상 그 어떤 것도 가치를 상실하게 되고 추격이나 뇌동 같은 불안전한 행태는 심리적 고통을 가중하기 때문이다.


추격으로 심리적 압박을 자초하지 말아야 하고, 뇌동으로 극도의 스트레스를 주는 무모한 행위들을 멈춰야 한다. 건강이 무너지면 세상 그 어떤 가치도 의미를 상실하기 때문이다. 불안정한 매매 행태는 심리적 고통을 가중하며, 그 압박이 거듭되면 무너짐을 반복하게 된다. 행복으로 충만해지고 싶은가? 혹은 끝까지 살아남고 싶은가? 그렇다면 기대치를 끊임없이 낮추고, 파동이 건네는 작은 속삭임에 귀를 기울이라.


리적 압박이 거듭되어서는 버틸 재간이 없게 된다. 고통을 줄여가야 매매를 지속할 수 있다. 쿤데라의 말처럼 자아의 토대가 고통이라면, 당신을 지키는 방법은 고통의 근원인 '스트레스'를 줄어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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