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운은 실력과 동일선상에 있다.

by 황금지기


그나마 기술적 분석으로 성공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철저히 기계적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특정 기법에서 절대적인 정답을 찾으려 하거나, 자신의 지적 우월성에 기대어 시장을 예단하는 것은 미친 짓에 불과하다. 감정의 개입 여지를 완벽히 제거할수록 매매는 기계적으로 변하며, 주관이 무너져 내린 토대 위에서라야 비로소 완벽한 기계적 반복이 시작된다. 주관의 여지가 남아 있는 만큼 매매는 불안정하다고 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세상사의 절반은 행운이고 나머지 절반은 실력이라고 믿는 것이 마음 편하다. 행운은 실력과 동일선상에서 작용하며, 행운은 실력 너머에 존재한다. 즉, 탄탄한 실력이 바탕이 되어야만 비로소 행운도 제 역할을 할 수 있는 법이다. 인생과 매매에서 운의 비중이 50%임을 내면으로 깊이 인정하고 받아들이면, 정체성이 변하기 시작한다. 바라보는 시야가 넓어지고 겸손해지며, 비대했던 자의식이 해체된다. 그렇게 군중과 구별되는 소수의 길로 들어서게 되고 성공 방정식은 완성된다.


주관이라는 소음을 무시하는 것은 그 어떤 지표보다 강력한 기술이다. 기계적 매매의 핵심은 기법의 완성이 아니라 주관의 완벽한 파괴에 있다. 쌓아 올린 그 겸손함의 크기가, 결국 어리석은 군중 사이의 거리가 될 것이다.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에서는 우리의 존재를 이렇게 묘사한다. 지구상의 인구를 1원짜리 동전으로 치환하면 77억 개, 무게로는 5천 톤 정도라고 한다. 그 정도면 우리가 고개를 돌리면 흔히 볼 수 있는 커다란 산 하나와 맞먹는 부피다. 1원짜리에 불과한 내가 죽기 살기로 기를 쓰고 살고 있지만, 저렇게 쌓여 있는 1원짜리 산에서 1원짜리인 나를 찾을 수나 있겠는가? 1원짜리가 참 요란하게도 산다.


투자자가 뇌동매매의 늪에 빠지는 이유는 거대한 산을 바라보며 1원짜리에 불과한 자신의 존재를 성찰할 수 있는 인문학적 소양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더 큰 문제는 그 부족함조차 인지하지 못해 지루함조차 견디지 못하는 데 있다. 많은 이들이 목표를 이루지 못하는 이유가 무언가 큰 잘못을 저질러서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실패의 진정한 원인은 잘못 그 자체가 아니라 지루함에 있다. 성공을 향한 여정에서 가장 큰 위협은 실패가 아니라,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지루함을 견디지 못하는 인간의 본성이다.


요란함을 멈추고, 지루함을 견뎌야 한다. 1원짜리 동전 같은 내가 시장을 이기겠다고 매달리는 것만큼 요란하고 부질없는 일은 없다. 지루함을 이기지 못하는 약점은 시장은 지독하게 파고든다.




“거인의 어깨 위에 서면 돈의 길이 보인다. 몇 년간의 고생 끝에, 돈과 시간을 낭비한 끝에 깨달은 결론이 이미 경제학자들의 책에 나온 몇 줄 조언에 불과했다는 걸 뒤늦게 알게 되면 그제야 자신이 얼마나 바보짓을 했는지 깨닫고 후회하지 않겠는가? 원리도 모른 채 열심히만 하면 빨리 망할 뿐이다.”

<브라운 스톤, 부의 인문학>


선인들의 선례를 배우지도, 받아들이지도 못했던 인문학적 소양 부족의 시절, 그저 요란한 1원짜리 인간일 뿐이었다. 자신과 거대한 숲인 시장의 관계를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지피지기(知彼知己)'의 눈이 없었기에, 장기투자라는 기본 원리를 망각한 채 자만과 독선으로 시장을 이기려 들었다. 오아시스를 찾아 헤매듯 인생을 지독하게 낭비한 후에야 깨달았다. 세상에 비법 따위는 존재하지 않으며, 오직 '이겨놓고 치는 것(근거 있는 진입과 원칙의 기계적 반복)'만이 유일한 길임을.


“하나만 아는 사람이 신념을 가지면 제일 무섭다”라는 말을 뼈저린 경험으로 새겼다. 교육받지 않으면 직관에 따라 지구가 평평하다고 믿기 쉽고 태양이 지구를 돈다고 믿기 쉽듯 본능에만 따르면 시장의 진실을 볼 수 없다. 배워야 한다는 그 평범한 문장 앞에 깊이 고개를 숙인다.


소양 없는 노력은 빨리 망하는 지름길일 뿐이다. 본능적 직관은 우리를 속이지만, 거인은 그 너머를 배우라고 명령한다. 평평해 보이는 땅이 사실은 둥글듯, 화려해 보이는 기법은 단순한 원칙의 반복일 뿐이다.




“케인스는 인간의 본성은 근시안적이라고 보았다. 케인스는 인간은 멀리 있는 이득일수록 더 높은 비율로 할인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이러한 인간의 본성 때문에 단기투자보다 장기투자가 유리하다고 케인스는 판단했다. 그래서 그는 상당량의 주식을 비가 올 때나 안 올 때나 몇 년 동안 꾸준히 보유할 수 있어야 투자에서 성공할 수 있다고 믿었다.”

<브라운 스톤, 부의 인문학>


인간의 본능은 눈앞의 작은 이익에 매몰되도록 설계되어 있다. 하지만 데이트레이딩을 선택한 투자자라 할지라도, 검증된 원칙이라는 단단한 틀 안에서 기계적으로 반복하는 것만이 성공으로 가는 유일한 길이다. 이는 보유 시간의 길이를 떠나 원칙을 지키는 기간이라는 측면에서 장기투자와 그 궤를 같이한다. 등락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원칙을 보유하는 심리적 장기투자 외에 다른 길은 찾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가격이 아니라 원칙을 매매해야 한다. 케인스가 말한 보유는 단지 주식을 쥐고 있는 행위가 아니라, 본능의 유혹을 견디며 신념을 지키는 인내의 다른 이름이다. 데이트레이딩은 주식 대신 원칙을 보유하는 것이다.



“20%에 해당하는 소수의 종목에서 전체 투자 수익의 80%를 얻고, 반면에 80%에 해당하는 종목에서는 전체 투자 수익의 20%만을 얻는다. 어떻게 투자해야 하나? 5종목 정도로 분산 투자하고, 그중에서 수익이 난 종목의 경우는 추세가 꺾일 때까지 지속해서 보유해야 한다. (중략) 피터 린치 역시도 이렇게 주장했다. 그는 “꽃을 꺾고 잡초에 물을 주는 어리석은 행동은 하지 말라”라고 조언했다.“

<브라운 스톤, 부의 인문학>


손실을 짧게 자르는 것은 투자의 기본 중의 기본이자, 워런 버핏의 절대 원칙인 '돈을 잃지 않는 법'을 실천하는 유일한 길이다. 그러나 단순히 잃지 않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결국 이익을 길게 가져가는 결단이 있어야만 비로소 부의 계단에 올라설 수 있다. 투자 시장은 소수의 거대한 수익이 전체 성과를 결정한다. 즉, 꼬리가 전체를 좌우하는 것이 이 시장의 일반 법칙이다.


손실이라는 잡초에 주는 물은 계좌를 적신다. 본능은 조금만 수익이 나도 확정 짓고 싶어(꽃을 꺾고) 하고, 손실이 나면 본전 생각에 매달리게(잡초에 물을 주는) 만든다. 하지만 부의 길은 정반대에 있다.




시장의 거대한 톱니바퀴에 맞물리고 싶은 작은 동그라미의 희망이라고나 할까. 위대한 인물들의 삶조차 세세히 살펴보면 저마다의 잘잘못이 섞여 있듯, 그저 흘러갈 뿐이다. 과거는 이미 지나간 과거이며, 미래는 그 누구도 감히 예측할 수 없다. 그럼에도 예측에 확신을 두는 자에게 시장은 가혹하다.


한 줌 흙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는 1원짜리 존재인 인간에게 세상은 각자의 작은 동그라미 하나일 뿐이다. 비록 작지만, 이치를 깨닫고 거대한 시장의 톱니바퀴에 스스로 맞물리는 작은 톱니바퀴가 되기를 자처하는 자는 부를 이룰 수 있다. 이것은 바로 작은 동그라미가 품을 수 있는 큰 희망이다. 개인의 주관으로 시장을 판단하는 것은 던져진 동전의 앞뒷면을 맞추겠다는 무모한 시도와 다를 바 없다. 투자자가 가야 할 길은 오직 시간을 이해하고, 그 시간을 X축에 놓은 채 원칙을 시도하고 반복하는 과정에 있다. 한낱 미물에 불과한 인간이 자본주의 시스템에서 성공하기 위한 가장 명쾌하고도 유일한 답은 바로 반복하는 마음이다.


엔진의 부품처럼 시장의 동력에 완벽히 맞추어 돌아가야 한다. 시장보다 똑똑하다는 착각을 버리고, 시장과 함께 회전하는 매끄러운 톱니바퀴 일부가 되어 묵묵히 돌아가야 한다.




“처음에는 자신이 습관을 만들지만, 나중에는 습관이 자신을 만든다”라는 말은 투자의 세계에서도 불변의 진리다. 처음에는 투자자의 의지로 누적 수익을 만들어 가지만, 어느 임계점을 넘어서면 그 누적 수익이 투자자의 자신감을 공고히 하는 강력한 선순환 구조를 완성하게 된다.


기다리고, 맡기고, 반복하는 마음이 습관으로 자리 잡는 과정은, 마치 소설가가 자신만의 서정주의를 걷어낸 뒤에야 비로소 진정한 작가로서의 자신을 마주하는 것과 같다. 이는 편향 덩어리인 인간의 본성, 그리고 살아온 세월만큼이나 단단해진 사고의 틀과 신념을 망치로 깨부수는 개종의 과정이다. 시장에서 주관이 꿈꾸는 화려한 것들은 단언컨대 한여름 밤의 꿈이자 신기루일 뿐이다. 그러므로 주관이라는 두꺼운 커튼을 걷어 젖히고, 객관의 빛을 향해 끊임없이 전진해야 한다.


주관이라는 커튼을 열어젖히면 흐름이 보이기 시작한다. 내가 옳다는 확신, 내가 시장을 안다는 오만은 우리를 안락한 꿈속에 가두는 장막이다. 객관이라는 대지 위에 발을 딛고 반복되는 습관이 곧 실력이다.




”오를 가능성이 내릴 가능성보다도 더 큰데도 불구하고 투자하면 안 되는 경우는 어떤 상황에서 발생하는가? X 종목(상승 확률 70%, 하락 확률 30%)이 그동안 주가가 많이 올라서 천장 근처에 도달했을 때 현재 시점에서 주가가 더 오를 확률은 높지만, 예상 추가 상승 폭이 작고 한편으로는 주가가 내릴 가능성은 작지만 만약에 주가가 내린다면 큰 폭으로 내릴 수 있는 그런 상황에서는 X 종목에 투자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런 경우엔 X 종목의 기댓값이 손실로 나타나게 된다.“

<브라운 스톤, 부의 인문학>


투자자가 무슨 일이 있어도 고점 매수를 피하고 저점 매수를 지향해야 함과 동시에, 절대로 추격해서는 안 되는 이유가 바로 이 수학적 진실에 있다. 파동은 등락한다는 관점에서 볼 때, 상승이 눈에 띄게 선명해진 시점은 이미 늦었음을 의미한다. 그 자리에서 곧바로 '쭉쭉' 뻗어나갈 확률은 낮으며, 설령 오르더라도 먹을 폭보다 잃을 폭이 압도적으로 큰 구간에 진입한 것이다. 이것이 파동과 기댓값에 대한 올바른 이해다.


기댓값을 이해하지 못한 ‘기대’는 탐욕의 다른 이름일 뿐이다. 승률 70%라는 숫자는 눈멀게 할 만큼 매혹적이지만, 일곱 번 이겨서 번 푼돈을 단 세 번의 패배로 모두 날리고도 모자라 파산에 이르게 하는 자리는 시장 어디에나 널려 있다.




”완두콩의 크기가 평균으로 회귀하는 것처럼 주식시장에도 평균에 회귀하는 힘이 작용한다는 것이다. 주가가 쌀 때 사들이고 비쌀 때 파는 즉 평균으로의 회귀에 베팅하여 큰돈을 번 투자자들이 있다. 벤저민 그레이엄, 워런 버핏 같은 가치투자자들이 그런 경우다. 때때로 아주 오랫동안 주가가 회복하지 않는 때도 있다. 또 때때로 평균은 새로운 평균으로 옮겨 갈 수 있다는 점을 주의해야 한다.“

<브라운 스톤, 부의 인문학>


‘파동은 등락한다’라는 관점이 그토록 강력한 타당성을 지니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파동은 때로 한 방향으로 쏠리는 추세의 특성을 보이기도 하지만, 시간의 긴 지평에서 보면 대부분 구간에서 좁게 횡보하거나 거칠게 등락하며 결국 자신의 중심축을 찾아 돌아온다. ‘파동은 등락한다’라는 믿음은 투자자가 직접 파동을 그려야만 하는 당위성을 제공하며, 어떤 시장 상황에서도 심리적 우위를 점하게 하는 ‘손해 볼 것 없는’ 절대적 관점이 된다. 비정상적인 과열은 냉각을 부르고, 깊은 침체는 반등의 씨앗을 품고 있다는 이 단순한 진리가 기계적 반복의 엔진이 된다.


파동은 제아무리 멀리 달아나도 결국 평균으로 회귀하려는 속성이 강하다. ‘파동은 등락한다’라는 관점이 가슴에 새겨진 자는 고점에서 서두르지 않고, 저점에서 두려워하지 않는다. 자신의 원칙을 집행하며 다음 등락을 기다릴 뿐이다.




작은 손실에도, 작은 수익에도 연연하지 않는 평온한 마음이 깃들어야 한다. 기다리고, 맡기고, 반복하는 마음으로 장기투자에 임하며, 지독한 지루함을 견디고 깨달음의 비탈길을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올라야 한다. 느리지만 느낌이 좋은, 여유롭고 덤덤한 그 길 자체에서 행복을 찾아야 한다. 무엇보다 도박적 사고를 버리고 확률적 사고로 개종하는 과정이 부를 쌓는 본질이기에, 투자는 어렵고도 어려운 법이다.


인간이란 존재는 참으로 묘하다. 좋았던 기억만을 강하게 남기고, 머릿속에 맴돌던 것들을 오래 간직하는 편향을 지녔다. 복기할 때조차 자신의 의도와 일치하는 것들만 골라 각인시키며, 마치 '다음에 이렇게만 하면 성공할 것처럼' 미래를 착각하곤 한다. 그러나 확률 게임은 일정한 원칙의 틀을 반복하되, 매번의 사건은 개별적이고 독립적인 확률을 지닌다는 사실을 절대로 잊어서는 안 된다.


확률적 사고는 결과에 일희일비하지 않는다. 지속 가능한 투자를 위해서는 투자가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온몸으로 깨쳐야 한다. 시장은 언제나 행운과 우연, 위험과 실수가 뒤섞여 흐르기에, 그 변동성을 담아낼 내면의 소양을 멈추지 않고 쌓아가야 한다. 다음을 결정하는 것은 시장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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