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지고 있지도 않고 필요하지도 않은 것을 위해서, 가지고 있고 필요한 것을 절대 위험에 빠뜨리지 말아야 한다”라는 선인들의 선례를 따라야 한다. 투자의 세계에서 위험을 명확히 인지하고 최소화하는 것, 즉 잃지 않는 것보다 중요한 가치는 존재할 수 없다. 투자자가 수행해야 할 본질적인 임무는, 묵묵히 기다리다가 확실한 기회가 포착될 때 그 기회를 냉철하게 활용하는 것임을 가슴에 새겨야 한다.
항상 손안의 한 마리 새(투자 원금)가 숲속의 불확실한 새들보다 낫다는 평범하지만, 위대한 진리를 잊지 말라. 수익의 크기가 아니라 원금을 보존하는 일을 최우선의 가치로 삼아야 한다. 시시때때로 솟구쳐 오르는 성급함이 부추기는 탐욕을 잠재우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이라는 지루함을 기꺼이 참아내야 한다.
지루함은 원금을 지켜주는 보험이다. 지루함은 원칙이 작동하고 있다는 증거다. 많은 이들이 '무언가를 해야 한다'라는 강박에 숲으로 뛰어들다 길을 잃는다. 상수는 숲속의 새들이 날아올 때까지 기다릴 줄 아는 사람이다.
“차에 함께 타고 있는 여자 한 명이 전화번호부에 있는 여자 다섯보다 낫다.” 워런 버핏의 이 명언은 투자의 본질이 화려한 가능성이 아닌 ‘확실한 실재’에 있음을 꿰뚫는다. 투자자는 늘 만족할 줄 알아야 욕을 당하지 않는다는 지족불욕(知足不辱)의 자세를 견지해야 한다. 또한 그칠 때를 알아야 위태롭지 않다는 지지불태(知止不殆)의 가르침에 따라 멈출 줄 알아야 한다. 투자의 세계에서 가장 선행되어야 할 대전제는 '반드시 잃지 않아야 한다'라는 것이다. 「현명한 투자자의 인문학」을 통해 얻은 몇 가지 통찰로 조금 현명해진 느낌이 들었다.
첫째는 예측이 무의미할 만큼의 충분한 규칙성을 발견할 것. 둘째는 오랜 수련을 통해 그 규칙성을 나만의 원칙으로 정립할 것. 셋째는 조급함을 버리고 매매 횟수를 최소화할 것. 넷째는 감정의 동요를 막기 위해 평가 주기를 최소화할 것이다.
이러한 엄격한 절차를 통과할 때 투자자의 시야는 확장되며, 그 너머의 통찰을 활용해 진정한 성공을 거머쥘 수 있다. 인문학적 소양을 쌓아 선인들의 지혜를 내면화하고, 끊임없는 연습으로 자기 확신을 다져 인간의 지독한 본성인 '군중심리'를 극복해 내야 하니, 투자는 가히 고귀하고도 어려운 수행의 길이라 할 만하다.
한 번의 원칙 사수가 몇 번의 예측 성공보다 백번 낫다. 차에 타지 않은 다섯 명의 여인은 환상일 뿐이지만, 오늘 지켜낸 하나의 원칙은 실재하는 자산이다. 만족할 줄 모르는 탐욕은 자신을 벼랑으로 밀어 넣을 뿐이다.
투자의 세계에 발을 딛는 순간, '심리 회계(Mental Accounting)'라는 진단을 받게 된다. 이는 확률의 세계를 완전히 떠나기 전까지는 결코 치유될 수 없는, 오직 인정하고 공존해야만 하는 치명적인 병이다. 투자자는 시장을 떠나는 그날까지 '도박꾼의 파산'이라는 위험을 짊어지고 가야 한다. 어떤 일도 일어날 수 있는 이 확률의 전장에서는 '이만큼 얻을 수 있다면' 당연히 '그만큼 잃을 수도 있음'을 겸허히 받아들여야 한다. 시장에서의 수익과 현실에서 땀 흘려 번 돈의 격차를 지우고, 그 무게를 똑같이 귀하게 여기는 태도야말로 투자자가 갖춰야 할 덕목이다.
성공은 운(Luck)과 실력(Skill)의 합이며, 그 결정체가 바로 감각이다. 감각은 어느 날 갑자기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무수한 파동을 들여다보고 또 들여다보아야 비로소 감각의 싹이 돋고, 어느 순간 만개한다. 복기와 반복, 그리고 올바른 경험이 켜켜이 쌓여 일궈낸 합이 곧 감각이기에, 우리는 시장을 오래도록 응시해야 한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듯, 시장도 오래 보아야 예쁘다.
시장은 이해와 공존의 대상이다. 심리회계가 유혹할 때마다, 현실의 땀방울을 떠올리며 그 무게를 맞추어 가야 한다. 조급함을 버리고 시장을 오래도록 바라보라. 시장은 예쁜 파동을 가득히 피워낼 것이다.
“봄비 내리는 논두렁에 어느덧 깊은 상념만이 싸늘한 현실을 잊고 끝내 어느 한 놈인가 웅크린 채 뛰기 위해 폭풍 속에 소낙비를 맞으며 소리 없이 염주를 굴리고 있었다”라는 시인의 문장처럼, 오랜만에 마주한 도서관의 공기 속에는 여전히 소리 없이 원칙의 염주를 굴리는 수행자의 적막함이 흐른다. 투자의 세계에는 존재하지 않는 세 가지가 있다. 바로 공짜, 비밀, 그리고 정답이다. 치열한 감성노동 없는 공짜 점심은 없으며, 부자로 만들어 줄 비밀스러운 기법 또한 존재하지 않는다. 무엇보다 이 시장에 영원한 정답이란 결코 있을 수 없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오랜 세월 전해 내려온 격언들을 가슴에 새기며 묵묵히 제 자리를 지키는 것뿐이다. ‘손실은 짧게, 이익은 길게’, ‘저점 매수와 고점 매도’, 그리고 ‘파동은 반드시 등락한다’라는 단순한 염불을 외우며 도약을 위해 몸을 낮추고 웅크리는 것이다.
투자는 기법의 습득에 앞서, 태도의 수양이다. 폭풍 속에서도 염주를 놓지 않는 그 수행만이, 정답 없는 세계에서 생존으로 인도하는 유일한 길이다. 정답과 비밀을 찾아 숲을 헤매는 이들은 결국 폭풍 속에 길을 잃지만, 자신의 논두렁에서 원칙의 염주를 굴리는 이는 도약의 기회를 잡을 것이다.
“체스와 달리 투자는 포커 게임과 비슷합니다.” 찰리 멍거의 말처럼 투자의 성패는 부분적으로 ‘운’이라는 변수에 의해 결정된다. 때로는 나쁜 과정이 운 좋게 달콤한 수익을 안겨주기도 하고, 완벽한 과정이 혹독한 손실로 귀결되기도 한다. 그러므로 현명한 투자자는 결코 결과라는 신기루에 현혹되지 않고, 오직 ‘과정’의 정당성으로 자신의 투자를 엄격히 평가해야 한다. 투자자가 갖추어야 할 첫 번째 덕목은 근거 있는 진입 그 자체에 만족하며 모든 결과를 시장의 처분에 온전히 맡기는 경지다. 그리고 그러한 올바른 과정을 지치지 않고 무한히 반복하는 강인함이 두 번째이자 전부다. 느리지만 명료하고, 소소하지만 평온한 그 마음 하나면 충분하다.
주어진 환경이 사회주의라면 그 규범을 따르고, 자본주의라면 또 그 체제의 문법을 따르는 것이 합리적인 인간의 태도다. 환경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받아들일 수 있어야 진정한 극복도 시작된다. 그러므로 시장에 머무는 자는 합리적이라고 증명된 선인들의 선례, 즉 '절대 규칙'을 따라야만 한다. 시장의 군중은 시장을 이겨서 정복하겠다는 망상에서 깨어나야 한다.
극복해야 할 대상은 요동치는 자신의 본성이다. 수익은 시장을 굴복시킨 대가가 아니라, 자신의 감정을 굴복시킨 보상이다. 멍거가 포커 게임에 비유한 이유는 결과라는 운에 일희일비하지 말고 오직 베팅의 근거에만 집중하라는 뜻이다.
내 생각이 옳다는 그 단단한 확신부터 내려놓아야 한다. 먼저 마음을 비우고 시장의 흐름에 온전히 맡기는 자세가 바탕이 될 때, 복리의 토대가 되는 반복하는 마음이 싹을 틔워 우람한 거목으로 자라나게 된다. 시장을 멋지게 추종해 보겠다는 시도는 나중의 일이다. 지금은 시장에 맡기는 여유롭고 덤덤한 이타적 마음으로 누적의 토대를 닦는 것이 우선이다.
투자의 대가는 좌뇌의 논리가 허물어진 폐허 위에서 태어난다. 인간의 본성인 ‘손실 회피와 보전 효과 편향’은 시장의 절대 규칙인 ‘손실은 짧게, 이익은 길게’와 정면으로 충돌한다. 죽을 때까지 인간이기에 이 굴레를 벗어나기 위해 적어도 세 가지는 명심해야 한다.
첫째, 주관적 개입은 설령 결과가 좋을지라도 마음을 불편하게 만들며, 그 불편함은 심리적 흔들림으로 이어져 원칙의 반복을 가로막는다. 수시로 변하는 감정을 극복하며 시장보다 더 나은 결과를 만들겠다는 욕심은 결국 시간과 자본을 쓰레기통 속에 버리는 행위와 같다. 둘째, 선인들이 증명한 유일한 성공 공식은 복리를 기반으로 한 장기투자다. 본성을 극복하며 이를 실천하는 방법은 매매 횟수와 평가 주기를 줄이는 것이다. 데이트레이딩도 영원회귀의 원칙을 세워 장기적 관점으로 반복한다면 그것이 바로 장기투자의 본질이다. 셋째, 잦은 개입으로 더 나은 성과를 낼 수 있다는 이기심과 시장을 이길 수 있다는 자만은 소중한 복리의 나날들을 허망하게 앗아갈 것이다.
옳아야 함을 놓아야 비로소 옳은 것이 보인다. 좌뇌가 속삭이는 핑계들을 제단에 바치고, 원칙 앞에 무릎을 꿇어야 한다. 주관이라는 소음이 잦아든 그 고요한 폐허 위에서만, 원칙이라는 거목은 하늘을 향해 가지를 뻗을 수 있다.
내 생각 그 자체를 중시하는 마음을 이제는 내려놓아야 한다. 투자자는 비대한 자의식을 해체하고 정체성을 새로이 정립해야 한다. 유전자의 오작동을 극복하기 위해, 오직 근거 있는 진입과 결과를 받아들이며 반복하는 마음이라는 자신의 몫만을 남긴 채 통제할 수 없는 것들은 시장의 영역으로 넘겨야 한다. 주관이라는 자의식을 비워낼 때 새로운 지혜를 채울 수 있다.
글로는 너무나 쉽게 '시장에 맡기고 반복하라'고 쓰지만, 이는 현재의 자의식이 진보에서 보수로 전향하는 것보다 몇 배나 고통스러운 일이다. 그것은 마치 모태로부터 이어온 종교적 신념을 깨뜨리고 주관에서 객관으로 개종하는 것과 같다. 그렇게 시간이 더해지고 나면, 우리는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또 다른 세계에서 전혀 다른 나 자신과 마주하게 될 것이다.
생각해 보면, 이토록 눈부신 노란 국화꽃 한 송이를 피우기 위해 천둥에 내려치던 아픈 세월을 먹구름 속에서 그렇게 울면서 애태웠나 보다. 그 노란 꽃잎이 피려고 오랜 세월 무서리가 내렸고, 이렇게 나이가 들었고 차마 잠들지 못한 채 숱한 밤을 지새웠나 보다.
자의식이 무너진 자리에서 원칙은 단단하게 피어난다. 나를 버리고 시장의 법도를 따르는 개종은 더 크고 단단한 나로 나아가는 길이다. 아팠던 천둥과 무서리는 모두 이 한 송이 꽃을 피우기 위한 우주의 섭리였음을 이제야 깨닫는다.
한 번의 원칙 준수가 천 번이 되고, 만 번이 되어 쌓이면서 한 사람의 인생이 완성된다. 오늘 하루를 온전히 원칙 안에서 살아내면, 천일과 만일이 온전해지는 법이다. 시세가 더 갈지 멈출지는 오직 시장의 마음이다.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원칙을 반복하겠다’라는 의지뿐이다. 투자의 본질은 결국 ‘반복하는 마음’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올바름을 반복하는 매 순간은 복리의 나날들이다. 흔히 말하는 주식의 장기투자와 마찬가지로, 데이트레이딩 또한 기계적으로 원칙을 반복해 나가는 관점의 장기투자 외에는 정답이 없다. 자식에게 기법이 아닌, 이 장기적 관점을 물려줄 수 있을 만큼 단련해야 한다. 그것은 적어도 백 년은 족히 살 나무의 씨앗을 심어 물려주는 일과 같다. 좋은 주식을 골라 장기 투자하는 것이 비결이라는 단순한 공식처럼, 올바른 원칙을 골라 평생 반복하는 것만이 투자의 비결이다.
오늘 행하는 한 번의 원칙 준수는 영원의 절반을 채우는 시작이다. 데이트레이딩의 짧은 호흡 속에서도 백 년을 살 나무의 씨앗을 심는 마음이어야 한다. 시장의 등락은 통제할 수 없으나, 원칙을 반복하는 의지는 대를 이어 물려줄 위대한 유산이 될 것이다.
사람은 기대치가 커질수록 나쁜 사람이 되거나 어리석은 사람이 될 확률이 높아진다. 과도한 욕심은 눈을 가리고 판단을 흐리게 하기 때문이다. 기대치를 버려야 행복을 곁에 둘 수 있으며, 성공할 확률 또한 그 비워낸 공간만큼 높아지게 된다. 결과에 대한 기대를 버릴 때 이익을 챙길 수 있고, 한방과 기도, 뇌동과 추격이라는 어리석은 행위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다.
무언가를 성취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며, 그 과정이 매번 좋을 수도 없는 법이다. 그러니 눈앞의 결과에 너무 일희일비할 필요가 없다. 모든 성과는 결국 확률적 평균에 수렴하고, 결국에는 자기 그릇의 크기에 수렴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집중해야 할 본질은 명확하다. 평균의 수치를 높이기 위해 부단히 실력을 쌓아야 하며, 그 이익을 온전히 담아낼 그릇을 키우기 위해 인문학적 소양을 깊게 다져야 한다.
현상은 기대치가 줄어드는 마음에 깃든다. '반드시 벌어야 한다'라는 기대는 뇌동의 늪으로 밀어 넣지만, '원칙을 지켰다면 결과는 상관없다'라는 마음은 현상으로 인도한다.
일상에서 두 개를 주고 그 이상의 보답을 바란다면 그는 나쁜 사람이거나 어리석은 사람이다. 두 개를 주고 하나만 바라거나, 혹은 이미 내 손을 떠났음을 인정하고 기꺼이 잊어버릴 줄 아는 자가 진정한 현자다. 받기(Take)에만 급급해서는 좋은 사람이 되기 힘들고, 주고받는(Give & Take) 것에만 치중하는 이는 그저 평범한 수준에 머문다. 진정한 현자는 대가 없는 내어줌(Give)에 익숙한 이들 중에 많다. 시장은 확률 위에 서 있기에, 기꺼이 내어줄 줄 아는 자가 현명한 투자자가 된다.
같은 금액이라도 재산이 적을 때는 손익에 대한 민감도가 높지만, 재산이 불어날수록 그 민감도는 점차 무뎌진다. 대다수 투자자가 적은 돈에 지나치게 민감하게 반응하여 투자의 큰 틀을 망가뜨리는 것은 너무나도 인간적인 본성이다. 그러나 커다란 꿈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서는, 시간과 함께 작은 것들을 내어줄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 그래야만 돈이 되지 않는, 자칫 망가지기 쉬운 고통스러운 시간을 버텨낼 수 있다.
인간이기에 여유롭고 덤덤한 마음은 결국 누적 수익이라는 결과에서 나오기 마련이다. 종잣돈이 적은 초기 단계에서는 돈에 너무나 민감해지기에 이를 다스리기 위해서는 큰 노력이 필요하다. 하지만 이 고비를 넘겨 일정 단계에 도달하면 민감도는 자연히 낮아지고, 돈이 스스로 돈을 불러들이는 선순환의 구조가 완성된다.
기꺼이 내어주되, 궤도는 이탈하지 마라. 덜 민감해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본전을 철저히 지켜내야 한다. 계좌가 아직 작을 때는 적은 손실에도 심장이 요동치는 것은 인간의 본능이다. 하지만 그 본능에 굴복해 원칙을 깨면 선순환의 궤도에서 이탈하게 되고 잦아지면 영영 멀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