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고작’이란 일은 없어요. 어떠한 일이든 시간과 정성을 담으면 거기에서 자기만의 본질을 발견할 수 있어요.” 믿으세요. 자신의 시간을, 자신의 세공을, 자신의 가치를, 그리고 즐기세요. 그렇게 만들어 온 자기 본질이 주는 선물을.
<김종봉, 돈은, 너로부터다>
확률의 세계는 참으로 오묘하여 평범한 인간이 그 안에서 단단한 틀을 세우고 지켜가기란 대단히 어렵다. 이를 가능케 하려면 반드시 통과해야 하는 관문이 있다. 시간과 정성을 쏟아부으면서도 당장 돈이 되지 않는 시간을 견디는 것, 그리고 '시간은 금'이기에 그 금이 세공되면서 깎여나가는 파편들을 성장의 비용으로 기꺼이 받아들이는 시간이다. 오직 시간을 투자해 경험을 쌓아야만 얻어지는 것이 바로 투자의 감각이다.
확률 게임을 지속한다는 것은 실로 고된 일이기에, 조금만 복잡해져도 배는 산으로 향한다. 그러니 모든 과정을 단순화해야 한다. ‘반복이 수익을 만든다’라는 것이 유일한 비법이라면, 수익 그 자체가 아니라 오직 반복하기 위해 단순해져야 한다. 투자에서 수익이 반복을 끌어내기에는 그 속도가 너무나 더디지만, 단순한 반복이 가파른 우상향의 수익을 만들어 내는 속도는 상상을 초월할 만큼 빠르기 때문이다. 시세가 분출할 수 있는 시간대에만 매매하는 것, 유리한 방향으로만 배트를 휘두르는 것—이것은 반복을 수월하게 지속하기 위함이다.
반복하는 경험만이 진정한 감각을 탄생시킨다. 반복이 목적이 되면, 수익은 결과가 된다. 반복의 리듬이 몸에 익을 때 감각은 깨어나고, 수익은 비선형적인 우상향의 궤적을 그리며 따라올 것이다.
시세가 내 예측과 달라도, 혹은 나를 데리고 가지 않아도 상관없어야 한다. 진입하든 하지 않든 아쉬움과 후회는 시장이라는 바다에서 만나는 필연적인 파도일 뿐이다. 그보다 중요한 것은 시장이 늘 그 자리에서 고맙게도 등락을 반복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나만의 자리를 묵묵히 기다리는 것이다. 원칙만 굳건하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복잡함은 애매함의 다른 이름일 뿐, 특히 확률의 세계에서는 ‘단순함’ 이상 강력한 무기는 없다.
미안하다고 말하기 전에 미안한 일을 만들지 말아야 하듯, 하지 않겠다고 맹세하기 전에 지금 후회할 일을 저지르지 않는 것이 본질이다. 결심을 말하는 것은 누구나의 몫이지만, 그것을 행하는 것은 특별한 자의 영역이다. 시장은 절대 감정이 원하는 대로 쉽게 흘러가지 않는다. 오히려 내 마음이 흔들리고 본능과 반대로 움직여야 할 때, 비로소 쉬운 파동이 나온다. “못 올라가는구나!”라고 말하며 여유롭게 지켜보고, “내려가지 못하는구나!”라고 덤덤하게 인정하는 마음에는 무너질 여지가 없다.
여유로움과 덤덤함은 계좌를 지키는 가장 단단한 성벽이다. 놓쳐도 좋은 마음이 돈을 편안하게 한다. 기회는 버스처럼 다시 올 것이고, 투자자가 할 일은 그저 후회할 일을 하지 않는 것이다.
시장은 복잡계이며 오직 확률의 언어로만 존재한다. 파동은 그저 위아래로 등락할 뿐, 그 안에서 일어나는 어떠한 현상도 확률 이상의 특별한 가치를 지니지 않는다. 그러므로 투자자는 나타나는 현상에 확률 이상의 의미를 부여하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 가치를 부여하는 행위 자체가 개인의 주관적인 생각이며, 사실과는 거리가 먼 단지 가능성일 뿐이기 때문이다. 가치를 부여하는 순간 확률 게임은 자기모순에 빠지며, 이것이 곧 투자의 근원적인 어려움이 된다. 어떤 현상에도 특정한 가치를 두지 않는 상태, 즉 무아에 도달해야만 비로소 파동의 실체 그대로를 마주하며 원칙의 경계에 설 수 있다.
시장이란 복잡계를 정복하는 비법은 존재하지 않는다. 오직 원칙이 수익으로 연결되는 운과 그 원칙을 고수하는 실력의 합만이 존재할 뿐이다. 파동이 고만고만한 횡보를 끝내고 어느 한쪽으로 방향을 틀어주는 것은 운의 영역이지만, 그 방향을 포착해 동행하며 운을 내 편으로 만드는 것은 오직 실력의 영역이다. 이 원칙을 지켜내기 위해 투자는 지극히 단순해야 한다. 단순할수록 지켜낼 확률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유리한 방향이란 관성을 타고 흐르는 높은 확률을 의미할 뿐, 대응이라는 전제가 없다면 그 유리함조차 허상에 불과하다.
생각을 덜어낸 자리에 수익이 채워진다. "이 파동은 이만큼 갈 거야"라는 식의 생각은 눈을 멀게 하고 오히려 원칙을 덜어낸다. 시장을 생각 속에 가두어 두고 수익을 논하는 것은 그저 생각하는 것에 불과하다.
“다음을 보지 않는다는 거예요. 오직 지금 해야 할 일에 집중한다는 거지요. 상대의 펀치를 피하고, 빈틈을 노리고, 눈앞의 상대에 어떻게 대응할지에만 집중해요.”
<김종봉, 돈은, 너로부터다>
링 위에 선 복서에게 ‘다음 라운드’는 사치일 뿐이다. 오직 지금 날아오는 주먹을 피하고 빈틈을 파고드는 것만이 생존의 유일한 길이다. 대부분 투자자는 승리하는 방법을 알아도 지금까지 살아온 관성에서 끝내 벗어나지 못한다. ‘다음에 하겠다’라는 결심이 실은 ‘다음에도 다를 것 없는’ 기대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직시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정답이 아닐지라도 스스로 경험하며 견뎌내는 것, 멈추지 않고 나아가는 그 투박한 경험만이 결국 실전에서의 쓰임을 만든다. 직접 부딪쳐 깨닫지 못한 지식은 위기의 순간에 아무런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저자의 표현처럼, 부는 차가운 머리로 계산하는 산수 문제가 아니라, 경험으로 치러내야 하는 거친 근접전이다. 아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행동으로 옮기는 것은 오직 소수만이 해낸다. 비법이란 대단한 특별함이 아니다. 그것은 끈기와 인내로 빚어낸 꾸준함의 다른 이름일 뿐이다.
부의 근육은 실전이라는 경험을 통해서만 견고해진다. 링 안에서 실전 펀치를 맞아보지 않으면 대응의 감각은 생기지 않는다. 다음이라는 유령에게 오늘의 기회를 넘겨주고서야 시장이란 링에서 버틸 방법은 없다.
“아무리 위험을 사전에 분석하고 대응한다고 하더라도 사업이란 생물체와 같아요. 끊임없이 변화하고 진화하며 전에 없던 문제들을 만들어 내지요. 이런 문제에 기민하게 대응하고 적극적으로 극복하게 만드는 건 결국 ‘해야 할 이유’예요. 백 가지의 비관도 한 가지의 신념을 이기진 못한다는 말은 이런 뜻이에요.”
<김종봉, 돈은, 너로부터다>
전장에서 승리하는 쉬운 비법은 ‘어디서 싸울지’를 내가 결정하는 것이다. 유리한 지형을 선점하고 기다릴 수 있을 때, 기다림은 단순해지고 대응은 날카로워지며 숙련의 시간은 단축된다. 단순해야 날카로울 수 있다. 시장에서 수익이 나지 않는 고단한 시간은 누구에게나 필연이지만, 그것을 끝까지 견뎌내는 자는 드물다. 누구나 나비처럼 날아 벌처럼 쏘기를 꿈꾸지만, 현실의 날갯짓은 서툴고 일순간의 기분에서 태어난 터무니없는 확신은 독이 되어 돌아온다. 우아하게 치고 빠지기를 꿈꾸다 시장이라는 벌에게 쏘여 상처 입기 일쑤인 것이 투자의 세계다.
투자자에게 있어 과거는 잊을수록, 현재는 기다릴수록, 미래는 대응할수록 좋은 법이다. 자본주의라는 거대한 바다에서 투자는 고단한 삶을 지탱해 주는 인생의 비상구다. 돈이 되지 않는 시간의 고통을 견디게 해 주는 힘은, 오랜 시간 쏟아온 정성으로 자라난 ‘해야 할 이유’에서 나온다. 아쉬움과 미련, 후회로 인해 심리에는 밤하늘 별들의 숫자만큼이나 숱한 상처가 패이겠지만, 그 자리에 딱지가 앉고 굳은살이 박이며 덤덤해지는 과정에서 비로소 감각의 싹이 튼다.
자신만의 그 단단한 감각에서 돈은 흐르기 시작한다. 굳은살이 박인 손이 칼자루를 더 단단히 쥐듯, 상처 입은 심리가 시장의 파동을 더 덤덤히 받아낼 수 있다.
당구나 골프 같은 구기 종목에서 마지막 순간까지 공을 끝까지 보는 것이 승부의 핵심이듯, 원칙의 경계에 서기 위해서는 매매가 끝날 때까지 파동을 그리면서 손익의 파도를 온몸으로 타야 한다. ‘아직’일까, 아니면 ‘여전’한 것일까. 마음속 깊은 곳의 기대감은 여전히 파동을 지배하려 들고, 아직 잃는 것에 대한 두려움으로 막연한 기대 쪽으로 무게추가 기울고 한다. 투자자가 도달해야 할 지점은 명확하다. 판단이 틀릴 것을 두려워하는 본성을 극복하고, 아닌 것에 대해 덤덤해지는 것이다.
어떻게 하면 적의 칼끝과 같은 파동을 덤덤하게 보며 대응할 수 있을까? 그것은 오직 경험이라는 통해서만 얻어진다. 비슷한 원인은 언제나 비슷한 결과를 낳는다. 비슷한 원인은 기어이 원칙을 이기고야 마는 자연스럽게 엉키는 감정이다. 감정을 방치한다면, 결과는 과거의 실패와 다를 바 없을 것이다. 내면의 스크린에 불멸의 이미지를 각인시켜야 한다. ‘그저 파동을 바라본다. 그 율동에 온몸의 신뢰를 싣고 파도를 타는 나를 본다. 위아래로 등락하는 파동 속에서 오르락내리락하는 무아의 상태를 본다. 사자의 가슴으로 덤덤하게, 숙녀의 손길로 섬세하게 대응하는 나를 본다.
흐름에 시선이 고정되면 흔들림도 잦아든다. 공을 끝까지 보지 않으면 스윙이 망가지듯, 손익의 숫자에 눈이 팔려 파동의 흐름을 놓치면 원칙도 흔들리게 된다.
“수익은 운의 영역이기에 절대 확신할 수 없지만, 잃지 않을 실력만큼은 장담할 수 있습니다. 시장이란 거친 바다에 지금 당장 배를 띄우더라도 난파하지 않을 자신은 충만합니다. 원칙들이 가로수 등대처럼 줄지어 서서 안전한 항로를 비추고 있을 테니까요.” 투자자는 이 문장을 되뇌며 자문해야 한다. 원칙을 지켰다가 다시 빗나가기를 반복하는 어중간한 ‘반거충이’ 상태로는 비약은커녕 계단식 도약조차 기대할 수 없다. 오직 원칙으로 지렛대(Leverage)를 삼아야 한다.
가장 확실하고 빠른 길은 오직 ‘단 하나(The One Thing)’에 집중하여 레버리지를 일으키는 것이다. 그것을 행함으로써 다른 모든 일들을 쉽게 만들거나, 혹은 필요 없게 만들어 버릴 바로 그 단 하나의 길—그것이 투자자에게는 오직 원칙 준수다. 그리 높지 않은 동네 뒷산일지라도 정상에 섰을 때의 쾌감은 삶을 변화시킬 만큼 크다. 작은 산이라도 끝까지 올라 정상을 정복하는 경험을 반복하며 ‘이기는 습관’을 무의식에 새기는 것, 그것이 진정한 투자의 레버리지다.
난파하지 않는 배는 언젠가는 목적지에 당도한다. 수익의 크기를 고민하기 전에, 배가 원칙의 항로를 이탈하지 않는지 점검하라. 원칙이라는 단단한 지렛대가 준비되었을 때, 시간과 시장은 투자자의 편이 된다.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To be, or not to be).” 햄릿의 이 비장한 고뇌는 매 순간 ‘이 자리에서 버틸 것인가, 아니면 빠져나올 것인가’를 선택해야 하는 투자자의 숙명과 닮았다. 투자를 크게 조망하면 ‘시장에 머물 것인가, 떠날 것인가’의 문제이고, 미시적으로 들여다보면 ‘포지션을 보유할 것인가, 청산할 것인가’의 싸움이다. 매일 번뇌라는 거친 조류가 흐르는 바다 위에서 이 실존적 선택을 반복해야 한다.
수익의 크기는 운에 지배되지만, 잃지 않는 것은 오로지 실력의 영역이다. 잃지 않음으로써 언젠가 찾아올 운이 작용할 수 있는 토대를 만드는 것도 실력이며, 그 기회를 기다리며 원칙을 사수하는 것 또한 실력이다. 먼 훗날, 누군가 성공의 비결을 묻는다면 단 세 마디로 답하게 될 것이다.
“나는 배웠고, 바꿨고, 지속했다.” 성공은 세 단어로 요약된다. 어제보다 검증된 원칙을 배우고, 구태의연한 관성을 바꾸며, 그 변화된 모습을 끝까지 지속하는 것이다.
앞고점과 앞저점을 기준으로 파동의 흐름을 그려내는 것은 투자에 있어 기본 중의 기본이다. 이 단단한 기본 위에 원칙으로 정한 선의 경계에 서는 것이 비로소 기술이 되며, 지지저항의 변화를 읽어내는 안목이 기교가 된다. 기본을 망각한 채 기술을 논하고 기교를 부리는 오만은 오랜 세월 모래 위에 성을 쌓겠다고 고집을 부린다. 앞고점과 앞저점을 파악하는 것이 토대(기본)이며, 원칙의 선 위에 머무는 것이 운용(기술)이고, 지지저항을 보며 유리한 방향을 선점하는 것이 숙련(기교)이다.
파동은 앞고점과 앞저점을 연결해 그려낼 때 비로소 선명해진다. 고점을 높여가는 상승 파동이라면 눌림에서 매수점을 찾고, 저점을 낮추는 하락 파동이라면 반등에서 매도점을 찾아야 한다. 이처럼 내 눈앞에 그려지는 파동의 율동에 익숙해질 때, 지루하게만 느껴지던 기다림 또한 선명해질 것이다. 파동이 흐릿하다면 그것은 아직 기본이라는 붓으로 고점과 저점을 연결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익숙해질수록 흐름은 선명해진다. 선명해야만 흔들리지 않고 기다릴 수 있다. 파동이 어디로 튈지 몰라 마음이 불안하고 조급한 이유는 단순한 기본인 전고점과 전저점을 놓치고 있기 때문이다.
“능력을 드러내는 열쇠는 반복성이다. 표본 경로가 아주 길어지면 결국 서로 닮게 된다는 뜻이다. 우리가 라스베이거스에 가서 단 한 번 룰렛에 돈을 걸어 100만 달러를 날렸다면, 원래 카지노가 유리했던 것인지 단지 내가 운이 나빴던 것인지 확인할 수가 없다. 그러나 1달러씩 100만 번을 건다면, 카지노가 유리하다는 사실을 체계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이것을 흔히 대수의 법칙이라는 표본 이론의 핵심이다.”
<나심 탈레브, 행운에 속지 마라>
결국에는 똑똑함이 꾸준함을 이길 수는 없다. 꾸준한 반복 속에서만 진정한 경험이 잉태되고, 그 경험만이 인간을 근본적으로 성장시키기 때문이다. 세상의 진짜 진리들은 오직 몸소 겪어내는 경험의 통로를 통해서만 우리에게 당도한다. 원칙의 속성은 반복에 있고, 그 반복을 가능케 하는 힘은 흔들리지 않는 심리에서 나온다. 찾아 헤매는 투자의 정수는 지루해 보이는 반복의 과정에 숨겨져 있다.
파동은 시장이라는 판 위에서 흥정하듯 끊임없이 흔들리며 피어나는 꽃이다. 아니, 더 정확하게는 흔들려야만 비로소 만개하는 꽃이다. 에너지가 적으면 작게, 많으면 크게 요동치는 만큼의 결실을 보는 것이 파동의 생리다. 시장은 털어내기 위해 반대로 움직이며 흔들어 대지만, 기억하라. 존재하는 모든 에너지는 관성을 지닌다. 그 관성의 방향을 믿고 반복하는 자만이 대수의 법칙이 선사하는 풍요로운 수확을 누릴 수 있다.
반복은 운을 실력으로 바꾼다. 단 한 번의 결과에 일희일비하는 것은 대수의 법칙을 부정하는 일이다. 원칙이 유리한 확률을 담고 있다면, 투자자가 할 일은 오직 다음 타석에 꾸준히 서는 것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