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월 1일
이 노래를 들었던 이유는 헤어진 첫사랑, 옛사랑 때문이 아니었다. 아빠가 생각나고 엄마가 생각나서였다. 아빠에 대한 마음을 정리하고 놓기까지 걸린 시간들이 스쳐갔다. 다 두고 오려고 바다 끝에 갔어도 결국 도로 가져왔을 것 같은, 나보다 더 힘든 시간을 보내왔을 엄마를 생각했다. 처음 들을 때부터 그랬다.
장례 후 우리는 바로 삶에 복귀해 살아내야 했다. 슬픔 때문에 손을 놓고 중단할 수 없었다. 생계를 위해 일어서야 했고 학교에 다녀야 했으며 전보다 더 잘 살아야 할 것 같은 부담과 오기가 생겼다. 꾸역꾸역 버텨냈다.
슬픔을 크기와 격에 맞게 마주하고 대우한 뒤 보내줄 시간이 필요했을 텐데 그걸 잘하지 못했다. 전과 같이 삶을 살아내는 것이 마음을 붙잡는 길이라고 어린 나이에 믿었나 보다.
그때의 나에게는 충분한 위로가 없었다. “누나 아빠 죽었다며.” 잘 모르는 동네 아이에게 들은 이 말을 시작으로 집 밖으로 나오면 느껴지는 시선과 수군거림이 있었다. 위로가 아닌 동정과 연민이 싫어서 일부러 더 찾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남겨진 우리라도 서로를 잘 위로하면 좋았을 텐데 할 줄 몰랐다. 각자 속으로 삼키고 삭이며 살았다. 왜 그렇게 생각하냐고. 약속이나 한 듯 그 뒤로는 아무도 아빠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으니까. 서로의 마음을 묻지도 않았고 서로가 보는 앞에서는 울지 않았으니까.
2026년 시작이다. 힘들었던 시간들도 돌아보니 다 지나갔다. 시간은 지금도 여전히 성실하게 흐르고 있다. 지난 2025년의 감정과 마음쯤이야 그보다는 빨리 정리될 거라 생각한다. 이렇게 또 한 살을 먹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