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에게 손이 닿으니 이렇게 모든 것이 단순해지는데,
서로 방 반대편에서 오 분 동안 언쟁을 벌이며 서 있기만 했다는 것이 놀라울 따름이었다.”
-이디스 워튼, <순수의 시대>
내 이름을 부르고 이리 오라는 손짓을 했다. 먼저 손 잡아주고 안아줬다. 뾰족하고 거대한 빙산 같은 마음이 무너지는 건 한순간이었다. 품에 안기자 바로 녹아버렸다. 속상함인지 미안함인지 고마움인지 여러 감정들이 뒤섞인 눈물을 쏟아냈고 등을 토닥여줬다. 지금껏 그래왔다.
침묵만 확장되고 있었다. 이번에는 내가 먼저 다가가야지, 달라지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줘야지 마음을 먹었으나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다짐을 하면 할수록 두려움이 뒤따랐다. 혹시라도 내민 손을 잡지 않는다면, 때늦은 노력과 서글픈 기다림의 결말이 된다면 나는 아무렇지 않은 척 고개를 끄덕이고 돌아설 수 있을까.
용기가 없었다. 손을 잡는 일이 어려운 게 아니라 먼저 손을 내미는 사람이 되기 싫다는 자존심도 살아있었다. 이미 거절당한 사람이 되어 침묵 속으로 물러나는 모습을 미리 연습하고 있었다.
너무 이르게 보았기에 알지 못했고
알고 나니 이미 너무 늦었다.
-윌리엄 셰익스피어, <로미오와 줄리엣>
때를 맞추는 일은 참 어렵다. 용기 내는 일도 참 어렵다. 손을 뻗는 일은 아직도 생각 속에서만 일어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