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calise, Op. 34 No. 14
1. 꿈을 꿨다. 피투성이가 된 큰고모가 들것에 실려 오고 있었다. 처참한 모습을 차마 볼 수 없어 고개를 숙이고 울기만 했다. 그때 누가 오른쪽에 앉아 나를 살포시 안았다. 큰고모였다. 들것에 그대로 고모는 누워있었는데 내 옆에 또 고모였다.
“고모 먼저 갈게, 우리 OO이 잘 돌봐줘.”
장애가 있는 둘째 딸이 아닌 동생과 엄마를 돌봤던 첫째 딸의 이름이었다. 목소리와 분위기가 낯설지 않았다. 꿈속에서조차 익숙하다고 느끼는 순간 장면은 아빠의 장례로 바뀌었다.
내가 어릴 때는 집에서 장례를 치렀다. 정신없이, 아니 모두가 정신을 놓아버린 첫날이 지나갔다. 안방은 빈소가 되었고 거실에는 아빠의 남자 형제들이 누웠다. 오빠 방에서는 엄마가 혼자 쉬셨고 여자 형제들과 작은 엄마들은 내 방에 다닥다닥 누워 잠을 잤다.
부스럭 소리에 잠을 깼다.
“고모 어디가?”
장마가 막 시작된 계절이라 인정사정없이 모질게 비가 쏟아지는 새벽이었다. 어둠 속에서 희미하게 비치는 회색빛이 있었고 움직이는 큰고모의 실루엣을 봤다.
“고모 집에 얼른 갔다 올게. 갔다 금방 올게 아가. 얼른 더 자. 누워.”
나를 억지로 눕히고 손으로 얼굴과 머리를 쓰다듬으며 토닥이셨다. 울음을 삼키는 목소리였고 쓰다듬는 손을 떼지 못하고 쓰다듬고 또 쓰다듬어 주셨다. 꿈이지만 고모의 목소리가 그날 같았다. 생생했다. 그날처럼 울음을 삼키고 나를 안심시키며 마지막 부탁을 했다.
잠에서 깼다. 깨자마자 온몸이 떨렸다. 무서웠다. 주위의 사람들이 곧 떠날 것 같았다. 눈물이 쏟아졌다. 잠들지 못하다가 야속하게도 알람이 울릴 무렵에 잠이 들었다.
2. 요즘 사람들이 떠나는 꿈을 종종 꾼다. 지난 몇 달간의 마음은 외로움도 질투도 허무도 아닌 불안이었던 것 같다. 죽음이든 관계의 단절이든 각각의 이유들로 영원한 것은 없다. 안정을 경험하며 착각했다.
• 세르게이 라흐마니노프(Сергей Рахманинов | Sergei Rachmaninov)가 1912년에 작곡한 성악곡 13곡(Op.34)에 덧붙여진 작품으로 1915년에 작곡되었다. 다른 성악곡 13곡에는 모두 러시아어 가사가 달려있었던 것에 반해 이 곡은 보칼리제라는 곡의 형식에 맞추어 가사가 없다.
• 연주 : 미샤 마이스키 Mischa Maisky
1948년 1월 10일 출생 (78세). 1966년 차이코프스키 콩쿠르에서 우승. 당시 심사위원인 20세기 첼로의 거장 므스티슬라프 로스트로포비치의 눈에 띄어 1966년부터 1970년까지 모스크바 음악원에서 가르침을 받았다. 장한나의 스승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