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싫어하는 당신에게; 동화를 읽어야 하는 이유

<동화 창작의 즐거움>, 황선미

by 서성

아이들을 싫어한다는 생각을 종종 했다.

학창시절부터 겪어온 아이들로부터의 압박감이나 미성숙한 사회성으로부터의 소외를 굳이 탓할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던 중 갑자기 동화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 한 리서치 회사에서 출판 데이터 조사를 하던 때였다. 매일같이 1년 동안 출판된 책 제목을 옮겨적으며 각종 장르의 책이란 책은 모두 접해볼 수 있었다. 익숙해지다가도 불현듯 끔찍해지는 지루함이었다. 나는 표지와 제목을 훑으면서도 그 너머 '그것들'의 내부도 낱낱이 읽어내리고 싶다는 욕망에 사로잡히고는 했다.


심지어 조만간 아무도 읽으려 하지 않을 세상에서 아이들만큼은 꾸준히 독서를 하고 있었다. 부지런히 팔리는 아동도서 중 알고 있는 제목을 목격할 때면 개인적인 추억에 잠기곤 하였다. 시험 기간에는 뭐든 하고 싶고 재밌다던데, 컴퓨터 앞에 앉아서, 퇴사하면 그림책을 써야지, 라고 생각했다. (아동 도서 출판 시장의 전망을 높게 산 점도 부정할 수는 없겠다.)


하지만 역시나 퇴사를 하고 동화를 쓰진 않았다. 다만 동화에 대한 생각은 익숙해지다가도 불현듯 강렬하게 나를 흔들곤 했다. 그래서 하루는 정말로 순수한 목적을 가지고 컴퓨터 앞에 앉았다. 그리고 이내 깨달았다.(내가 바보라는 아주 당연한 사실을?)


내 얘기를 주로 소재삼던 나에게서 나오는 동화는 단 한 줄도 그답지 않았다. 일상을 그답도록 간결하고 명쾌하게 풀어내는 것조차 단순충동 앞에서는 낯설고도 낯설었다. 처음에는 역시 아이들을 싫어해서, 아이들을 이해하기에 나는 글렀구나, 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 뒤로 곰곰이 나를 헤집어나가며 결국 미성숙이라는 종점에서 지지부진한 발걸음을 멈췄다.


나는 미성숙한 나로부터 나오는 이야기가 미성숙하기에, 내가 생각하는 미성숙한 장르로 나의 이야기를 감히 포장하였다. 결국 나는 나의 미성숙함을 인정하기까지 제자리에서 빙빙 돈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내가 미성숙하다는 것과 내 이야기가 미성숙하다는 사실이 싫었다. 그저 마음 편히 무결하게 미성숙한 존재를 열등으로 치부하는 편이 쉬웠다. 싫어하던 것을 얕잡아 보는 것은 그렇게 쉬웠다.


그런데 이 흐름의 중간 단락 쯤에서 동화에 사로잡혔던 내가 동화전문출판사에 서포터즈 지원을 했고, 붙었다. 난생처음이었다.


기분이 다시 널뛰었다. 동화를 읽는다! 하지만 나는 동화를 이해할 줄 모른다. 동화와의 교감을 전달할 재량(사실상 자격)이 없다!


그래서 도서관에서 빌렸다가 무한 연장하는 방법을 배워서 n주 동안 처박아둔 책을 꺼냈다. 내가 정말 좋아했던 작가의 동화창작론이었다. 사실 아예 안 읽은 것은 아니었다. 깔짝이던 앞부분에서 저자가 여러 논문과 이론을 인용하며 동화(사실상 어린이)에 대한 태도를 당부하는 서문이 있다. 이 책을 찾은 이유도 거기에서 읽은 내용 때문이었다.



"동심은 유치하거나 미숙한 상태의 정서가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완벽하고 오염되지 않은 우리 인간의 원초적 심성으로서 모든 어른들이 희구해 마지않는 귀중한 심성"

-<어린이를 위한 문학>, 최지훈에서 발췌된 것을 다시 한 번 발췌



나는 어쩌면 어린 시절의 나를 사랑하지 않은 걸까?

뭐랄까, 나는 정말 어느새 내가 어린이였다는 사실을 단번에 까먹어버렸다. 내가 어린이임으로써 누군가와 행복했던 적이 없다. 내가 미성숙해서 불행하던 때의 연속이었다. 불행히도, 행복한 기억보다 유통기한이 긴 쪽은 불행한 기억인 탓일 수도 있다. 어쨋든 그것들이 내 머릿속에 차곡차곡 주름져서 나는 그 주름이나 잡는 굼벵이가 된 기분이다. 더 어른스러워지고 싶었다 매향. 더 멀리멀리 어린 시절로부터 도망치고 싶었다. 그런데도 결국 나는 동심을 희구해 되돌아온 기분이다. 썩 기분이 좋지는 않다. 나를 헤집어서 이해하는 방식의 종점에는 허탈함이 항상 먼저 도착해 있다. 또 만났네.



"동화의 문체는 쉬운 것처럼 보인다.…바로 이런 점들이 동화의 문체에 대한 편견을 갖게 하고 동화를 열등한 것, 어린이만의 유치한 문학으로 여기게 한다.…가장 수월해 보이는 이 문제가 실상은 동화를 쓰려는 작가가 맨 먼저 겪게 될 어려움이자 마지막까지 긴장할 수밖에 없는 요인이 된다. 작가는 결코 어린이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109쪽



어쩌면 동화를 읽는 이번 과정은 나를 읽는 과정이 될 것이다……. 그래서 괴롭고 두려운 마음이 든다. 우리는 어디에서 다친 건지도 몰랐던 상처를 발견하고 그제서야 고통을 느끼는 경우가 있다. 그리고 상처나 병은 치료할 때 헤집어짐으로써 고통과 더욱 직면하곤 한다. 그럼에도 동시에 오랫동안 벽을 치고 살아온 추억 속으로 돌아간다는 설렘이 나를 혼란스럽게 만든다.

다행히 황선미 작가의 글을 읽음으로써 나는 내가 상실을 거슬러 올라가게 될 것임을 안다. 애써 잊었을지 몰라도 나의 현재는 과거에 기점을 두고 있다. 그리고 어차피 나는 평생 이런 상태일 테니까, 이제는 숨기지 않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



동화의 주제는 거창하지 않다.…결국 동화의 주제란 동심의 확보에 있는 것이다. -12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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