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타지 하나 없이 말이 안 되는 이야기

<82년생 김지영>

by 서성

연도로 쓰여진 목차조차 간결하다. 무슨 대설처럼 단조로이 기록되는 김지영 씨의 역사.


나의 편협한 독서 속에서 대개 소설들은 공상의 정도를 두고 나뉘어진다. 현실과 붙어있으면서도 어디까지 현실과 떨어졌다 돌아오는지의 차이를 각각 가지고 있다. 나도 판타지를 즐긴다. 하지만 요즈음 들어서는 공상이 환상을 좇고 있지 않나? 라는 생각이 든다.


그냥 아주 가까이에서 예를 들자면, 오징어 게임은 현실의 비참함과 저질인생을 잔혹한 인간 본성으로 유도한다. 하지만, 그것이 정말 인간 본성인가? 인물들이 잔혹한 인간 본성으로 끌려가는 배경에는 의도되고 조작된 세계관이 있다.(이에 관한 설명은 위근우 기자의 9/28 인스타 피드를 보면 명쾌해진다.)


공상을 하면, 다시 현실로 돌아와야 한다. 왜냐하면 공상을 하는 이유는 현실을 더 선명하고 압축적으로 보여주기 위함인 까닭이다.


소설. 작은 말에 현실이나 인간을 보여주기가 쉽겠는가? 대상의 특성을 증폭시키기 위한 장치가 필요한 법이다. 다만, 내 생각은 그 장치가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바이다. 현실을 논하기 위해 환상을 부풀리다 어느새 환상이 만들어낸 세계만을 묘사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 점에서, 근래 읽은 작품 중 <82년생 김지영>은 순식간에 읽혔다. 소설이라고 부를 수 있나, 싶을 정도로 현실과 맞닿아 이리저리 찌부러져 있었다. 여성에 대한 부당한 차별에 합당한 주석까지 달아서 서술하는 점이 그러하다. 어쩌면 현실을 이야기하자는 소설의 근본적 목표를 절대적으로 이룬 결과일지도 모른다.




소설을 읽은 감상을 말하자면... 소름이 돋았다. 아마 이 글을 읽은 젊은이들은 소름이 돋았을 것이다. IMF나 체벌이 있는 학창 시절 같이, 경험해보지 못한 과거는 지나간 역사처럼 쉬이 읽혀 받아들였지만 김지영 씨가 겪는 대학, 대학 졸업 이후, 회사, 회사 이후, 결혼, 결혼 이후의 삶은... 내가 서있는 곳 이상의 삶을 적나라하게 마주시킨다. 그것들에게는 일종의 타격감이 있다.


각자 다를지라도 어느 시점부터, 김지영 씨와 우리 사이의 동질감을 근거로 하는 분노는 점점 몸을 부풀린다.

이때까지 싸워준 이들 덕분에 우리가 겪지 못한, 체감치 못한 차별이 있었을지라도, 그것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우리는 결혼 의사가 없을지라도 '아이를 키울 사람'이라고 사회로부터 멋대로 지정되어 낮은 임금을 받게 될 것이다. 그렇게 살게 하고, 살아온 사람들로부터 압박받을 것이다. 결코 이해되지 못할 것이다.


태어날 때부터 미움받고 차별받는 존재의 마음을 그 외 존재들이 어떻게 이해할까? 여자로 태어나서 미안하다고 말해야할지 갈등해본 적 있나?


중학교 생물 시간의 충격을 아직도 잊을 수 없다. 성별은 남성에 의해 결정된다. 여성에게는 X성염색체밖에 없다. 불완전 염색체로 불완전 존재를 만들어내는 것은 남성이다. 나는 현실과 미디어에서 익히 듣고 봐온 모체에 대한 멸시를 답습해 성별의 결정이 모종의 여성 결함으로부터 온다고 무의적으로 생각해왔다. 이후 그냥 궁금했다. 왜 여성은 같이 만든 것도 아닌 성별에 대해 죄책감을 얻어야 하는가? 왜 그들은 여성을 질책하고, 눈치주는가? 무엇이 우리를 이렇게 만들었는가?


정말로 무엇이 우리를 이렇게 만들었는가. 김지영 씨가 자꾸 '목소리를 삼키는(183쪽)' 것처럼 나도 목구멍이 먹먹하다. <82년생 김지영>이 양산해내는 먹먹한 질문들은 반박의 여지란 제공하지 않는다. 우리는 이제 막 질문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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